민감한 시기에 나온 영화 <댓글 부대>는 과거의 '댓글 조작' 사건을 연상시키지만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가 않다. 댓글 조작 사건은 국정원(국가정보원)과 국군 기무사령부, 경찰청, 국군 사이버 사령부 등 국가 정보 조직이 총 동원 돼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목적으로 여론을 조작한 사건이다. 2009~2012년간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며 그 결과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다. 영화 <댓글 부대>는 이 역사적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 그보다 댓글 조작이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가, 그 실체를 폭로하는 내용일 뿐이다. 총선 사전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개봉했음에도 막상 개봉 후에는 정치적 논쟁이 비껴가고 있을 만큼 영화가 非논쟁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건 그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흥행도 그다지 폭발적일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개봉 초기인 만큼 주연배우인 손석구의 흥행 몰이가 반짝하는 상황이다. 관객은 세상 일을 영화보다 잘 알고 있어서 때론 영화가 보다 직설적으로 이슈를 건드려 주기를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영화가 전(前)이든 현(現)이든 정치권력을 직접 겨냥하는 모양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대기업을 암시하는 듯 가상의 이름을 대입해 우회적으로 지명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사실상 모든 음모의 주체로 '만전'이란 이름의 가상의 대기업을 앞세운다. '감추거나 가리거나' 해서인지 영화는 다소 주눅들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 줄거리 상에 실제의 정치적 사건을 묘사하는 걸 가능한 피하려 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마치 할리우드의 수많은 해커 영화 같은 부류가 됐다.
'일베' 같은 청년 셋이 순전히 돈과 재미, 잔혹한 일진 취향을 위해 없던 얘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용돈 벌이였지만 영화 속 영화 제작자(김희원)를 만나고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들은 영화 흥행 조작에 나서고 큰 돈을 손에 쥘 뻔 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이때부터 더 큰 여론 조작 사건에 빠져 들게 된다.
그때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창경일보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이다. 임상진은 특종 욕구가 잔뜩인 인간이다. 댓글 부대 팀, 곧 만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음모 조직과 그들이 수하로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세명의 룸펜들, 각각의 닉네임이 찡뺏킹(김성철), 칫탓캇(김동휘)과 팹택(홍경)인 이들은 기자 임상진의 허세, 특종 욕심을 이용해 큰 건을 획책한다. 근데 이건 비단 임상진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정 욕구에 일단 불을 붙여 상대의 '관종' 성향을 최대한 끌어 올린 후 모든 것을 거짓이나 소설, 허위로 만들어 한번에 그 상대를 추락시키는 방식을 쓴다. 이들의 그물망은 매우 교묘하고 악의적이어서 과연 누가 그 타깃을 직접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절대 알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들 앙팡테리블 세명이 벌인 작업 중엔 이런 게 있다. 총학생회장 후보인 한 여대생이 공격 대상이 됐다. 그들은 여대생을 SNS 상에서 (좋아요를 수천 개 붙이고 댓글을 수백 개 붙이는 방식으로) 한참 띄워 올려 놓았다가 일거에 그녀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들을 폭로함으로써 나락에 떨어트린다. 여자는 결국 자살한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이 여대생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다. 진짜 타깃은 여자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벌이는 1인 피켓 시위를 중단시키려는 우회 수단으로 그의 딸을 이들 댓글부대가 공격한 것이다. 피켓 시위는 결국 중단된다.
'임상진 건'은 원래 하이패스 단말기 제작 건을 둘러싼 임상진의 기사 문제가 시발이 됐다. 한 중소업체가 연 매출 500억 원짜리 단말기 제조업체 입찰에 들어 갔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락한다. 그 업체는 40억 원의 개발비를 날리고 부도 위기에 몰린다. 업체 사장(이서환)은 테스트 심사가 조작됐다며 그 배후에 그룹 만전이 있다는 증거자료를 가지고 임상진 기자에게 제보한다. 임상진은 신문사 내부(데스크와 편집국장)의 일정한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터뜨린다. 그리고 곧 오보 파문에 휩싸인다. 만전은 임상진이 공개한 증거물이 모두 허위임을 드러낸다. 임상진은 오랜 기간 정직 생활에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기사가 오보가 아니었음을 인정받기 위해 부심한다.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나는 인물이 바로 찡뺏킹이다. 본명이 이영진이라고 하는 이 찡뺏킹은 임상진에게 당신의 기사는 오보가 아니며 모든 건 만전의 댓글부대가 만들어 낸 조작 사건이라고 폭로한다. 기자 임상진은 다시 한번 일생 일대의 특종에 도전한다.
영화 <댓글 부대>는 기자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기자 커뮤니티나 기자 시스템을 구구절절하게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임상진의 상사들, 부장 데스크(최문덕)와 편집국장 표하정(이선희) 등이 모두 만전 기업에 스카우트 되거나 그런 정황이 의심스러운 상황에 놓인 인물로 그려진다. 현재의 언론사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돼있는지, 어떻게 자본 권력의 수하에 들어가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나선다. 그러나 영화가 언론 환경보다 집중했던 것은 댓글 부대의 실체이다. 댓글 부대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있을까. 사회의 여론이 이 한줌도 안되는 대기업 내의 특수 부서 인원들에 의해, 혹은 몇 명의 악동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일까. 댓글 조작이라는 것 자체가 음모론에 불과하고 대중적 착시 현상에 불과한 것 아닐까. 영화는 이 대목에서부터 기묘한 줄타기를 시작한다.
<댓글 부대>의 기본 골격은 이런 이야기의 레전드 급 영화로 꼽히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유주얼 서스펙트>(1997)를 따라 간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흐름은 경찰서로 끌려 온 용의자 버벌(케빈 스페이시)이 형사 데이브 쿠얀(채즈 팔민테리)에게 조직의 수장 카이저 소제의 정체를 밝히는 진술로 이어진다. 버벌의 진술과 그에 따른 플래시 백으로 줄거리의 대부분이 채워지는데 영화는 관객으로하여금 그의 애기가 모두 진짜라고 믿게끔 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짜가 되려면 버벌의 진술이 모두 진짜여야 한다. 버벌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 걸까. <댓글 부대> 이야기의 상당 부분도 결국 찡뺏킹이 임상진을 만나 실제 벌어진 일을 구술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임상진은 기자이고 기자는 모든 사건에 '백 브리핑', 곧 배경지식이 필요한 바, 찡뺏킹은 그에게 하이패스 단말기 기사 오보 사건이 조작되는 과정과 그것을 알게 된 계기부터 자신들 세명이 어떻게 만났는지, 각자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이런저런 전력은 어떠 했는지 등등 전모를 '진술'한다. 임상진은 그걸 토대로 기사를 쓴다. 증거 자료도 제시한다. 그러나 찡뺏킹의 이야기가 모두 진실일까. 그가 진실을 말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안국진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의 비틀기를 통해 영화 속 진실이 무엇인지를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게 만든다. <댓글 부대>는 일종의 방 탈출 게임과 같은 영화이다. 탈출의 키는 관객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이점이다. "모든 진실은 거짓을 내포하고 있고 모든 거짓에도 약간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극중 찡뺏킹이 임상진에게 하는 구술 중에 나오는 얘기이다. 모든 거짓이 진실로 보이기 위해는 일정한 진실을 포함해야 한다. 이쯤 되면 영화가 전하는 얘기는 거짓에는 진실인 측면이 있고 진실은 거짓 위에 섰으며, 곧 진실은 거짓이고 거짓은 진실이다, 결국 세상의 진실은 그 전체를 이해하고 아우르는 자가 만드는 것이다, 정도로 요약된다.
<댓글 부대>는 지난 10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를 뒤흔든 댓글 조작, 가짜 뉴스 조작과 유포를 얘기한다. 그 실체를 밝히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알리려고 하는 것은 댓글 조작은 결국 자본주의 최대의 권력과 그 야합(관리=정치와 재벌, 언론)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그 방법이 기상천외할 만큼 뛰어난 상상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댓글 하나하나 붙이는 차원이 아니며, 철저하게 기획되고 실행되는 전투만큼 고차방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그물망에 갇히면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 <댓글 부대>가 주는 오싹한 공포감이다. 이 영화가 4월 총선 표심에 영향을 줄까? 어떤 댓글이 붙는지를 잘 살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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