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회 의원들이 세계 2차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공물을 봉납한 지 이틀만이다.
윤석열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획득한 법적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제3자변제'까지 동원하며 한일 관계에 공을 들였지만,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의 태도는 전혀 변화가 없는 셈이다.
23일 일본 <교도통신>은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 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이 이날 오전 춘계 예대제(例大祭·제사)를 맞춰 참배했다"며 "자민당과 일본 유신회에 속하는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 94명의 의원들이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TBS 방송은 이날 직접 참배한 의원이 90명이 넘고 대리로 참석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127명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 당국자의 참석과 관련, 통신은 "이바야시 다쓰노리 내각부 차관과 이와타 가즈치카 경제산업성 차관 등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방송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21일 기시다 총리는 '마사카키'라고 불리는 공물을 봉납했다. 그는 총리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에 직접 참배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공물을 봉납해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의 공물 납부는 이번이 8번째다. 취임 직후인 2021년 10월 추계예대제와 다음해인 2022년 4월 춘계 예대제, 8월 15일 세계 2차대전 및 태평양 전쟁 패전일, 10월 추계 예대제 등에 각각 공물을 봉납했던 기시다 총리는 현재까지 매년 이 시기에 공물을 봉납해왔다. 이날 정부 인사로 신도 요시타카 경제재생담당상도 참배했다.
방송은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아이사와 이치로 부회장이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전쟁의 비참함, 평화의 고귀함을 확실히 가슴에 새기겠다. 그리고 후세에 전해 간다는 것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오늘 참배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는 평화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인사들이 합사돼 있는 장소다.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의해 처형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세계 2차대전 중 발생한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있으며 전쟁에서 숨진 246만 6000여 명의 영령을 받드는 시설로, 이 중 90%에 해당하는 약 213만 명은 해당 전쟁과 관계돼 있다.
의원들의 집단 신사 참배에 대해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1일 기시다 총리 공물 봉납 당시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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