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의약분업 폐지를 원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2001년도 12월 17일 주요 일간지에 대국민 광고를 이렇게 했다. 의사들은 의약분업 전투는 졌지만, 의사 정원 350명 감축이라는 큰 전리품을 챙겼다. 그렇게 해서 의사 수는 지금까지 동결되었다.
최근 정부가 의사 증원을 밀어붙이려고 하자, 의료계 일부에서는 의약분업을 철폐하겠다고 맞대응하고 있다. 현재 국면은 전국민건강보험이 실시된 1989년부터 잠복한 한국 의료의 구조적 모순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필자는 30년 전에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을 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건강보험과 의료전달체계는 한국 의료의 두 축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한 만큼 효과가 바로 드러나는 국민건강보험과 달리, 의료전달체계는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역대 정부들은 이를 가볍게 생각했다.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국민의 의료비와 건강보험부담료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의료전달체계를 그대로 두고 의사 수를 증원한다고 해서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만족도는 별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필수의료의 난맥상은 실로 지난 30여 년간 의료전달체계의 작동 불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은 의료개혁의 출발점이다. 세계에서 전공의들의 승인을 받아야 의사를 증원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외에 없다. 그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환자를 진료한 것은 정부가 시켜서가 아니다. 한국의 대학병원과 사립병원재단이 싼 임금으로 전공의를 과도하게 채용했기 때문이다. 병원의 경영자와 보직자들은 이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전공의는 자신이 속한 병원을 향해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필자는 의과대학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이런 현실적 모순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물론, 정부도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데 대해 책임이 있다. 과도한 전공의 비율을 선진국처럼 낮출 수 있는 정교한 방법이 있는데도, 역대 정부들은 이를 방치했다. 전공의 비율의 적정 수준 유지는 한국 의료의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다.
지난 20여 년간 실시되어 온 의약분업을 개선해야 한다. 감기와 같은 경미한 질환의 경우에 의사에게 꼭 처방받아야 하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영국은 올해 초부터 7개의 경증 질환에 대해 약사가 직접 처방을 시작했다. 물론 의약학적 안전장치가 뒷받침한다. 왜 한국 정부는 약사를 의료체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미약한가. 한국 의사들이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한국 약사들도 마찬가지이다. AI 시대에 약사의 역할이 축소될 것에 대비해서, 정부는 '지역약사'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의약분업의 개선은 국민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정책이다. 의사들이 최소한 숫자의 의사 증원에도 동의하지 않으면, 경미한 질환에는 약사들과 처방 경쟁을 해야 한다.
그것도 싫다면, 정부는 해외에서 의사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조속히 강구해야 한다. 마치 1960년대에 미국이 한국 의사를 받아들였듯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의대 입학생이 전문의가 되기까지 10년을 기다리다 보면 세상은 변해 있다. 그것보다는 바로 해외에서 의사를 받아들여 통역자를 고용하는 것이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국민에게 더 큰 혜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을 지역의사로 한정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오늘도 병원을 못 찾는 응급환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언제까지 암흑의 터널을 통과할 것인가. 연금개혁이라는 더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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