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이자 대표적 진보운동인, 정치인, 언론인이었던 홍세화 씨가 18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7세. 홍세화 씨 장례는 21일까지 한겨레신문사 사우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 및 발인은 21일 오전 8시다.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영면한다.
그를 기리기 위한 '고 홍세화 시민사회 추모제’가 20일 저녁 6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송경동 시인이 직접 쓴 추모시를 읽어내려갔다. <프레시안>에서는 그의 추모시를 싣는다.
이성과 사랑, 그 고귀함에 대하여
- 홍세화 선생님 영전에
당신이 마지막 남기고 가신 말
'겸손'을 되새깁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빨리 오지 않더라도
절망하거나 훼절하지 않고
겸손하겠습니다
왜냐면, 이 나쁜 세상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견디며 살아가야하는
모든 소박한 이들의 삶이 우리에겐 더 소중하니까요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부패하고 썩어가는 인간들 앞에서도
겸손하겠습니다
왜냐면, 그들의 이른 주검이 새로운 시대의 싹들이 자라날
좋은 토양과 거름이 될 거니까요
겸손이 특권이 되지 않도록
겸손이 무슨 권위나 식견이나 자랑이 되지 않도록
겸손이 온갖 공모와 협잡의 안온한 밀실이 되지 않도록
겸손이 행동하지 않음의 핑계가 되지 않도록
겸손 앞에서도 겸손하겠습니다
끝까지 소년 척탄병으로 남아
어떤 야만의 땅에도 끝내 뿌리내릴 수 없었던 외로운 난민으로 남아
약자와 소수자와 빼앗긴 자들의 스피커로 남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한 한 알의 씨앗으로 남아
그렇게, 끝까지 추해지지 않은 어른으로 남아 준 당신을 따라
우리는 어떤 주체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어떤 관계의 회복과 성숙과 연대를 실현해 나가야 할 지
어떤 사랑과 불관용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할지도
잘 되새기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소년처럼 내내 해맑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수줍고 선하고 참할 수가 있었을까
어제는 한강변 가로수 잎들 사이에서 당신이 웃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인데도 작업복을 입고 일터로 가고 있는
씩씩한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끼어 웃고 있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쌩하니 지나가는 무심한 청년에게서
당신을 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서로 연대하며 어울려 살기를 바라던 한 인간"
당신의 고난에 빚지며
한국의 근대가 조금은 부끄럽지 않아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수줍고 겸손한 미소에 기대
한국의 오늘이 조금은 근사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부단한 학습과 질문을 따라 읽으며
이 사회가 조금은 눈귀 밝아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동지
잘 가십시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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