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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한글과 언문(諺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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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한글과 언문(諺文)

필자는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토론하는데 활용할 때가 있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 보면 언젠가는 학생들의 입에서 답이 나오게 마련이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하여 질문을 던지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보통은 학생들의 입에서 답이 나오는데, 한국어, 훈민정음, 한글, 언문 등에 관해 정의를 내려 보라고 하면 제대로 답을 하는 학생이 별로 없다. 물론 한국어사를 배우지 않은 학생도 있을 수 있고, 외국인이 많아서 힘들 수도 있으나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 한국어 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하는 단어들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도 훈민정음과 한글이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고, 국어라고 하면 됐지, 한국어는 또 무엇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의 공식적인 명칭은 ‘한국어’라고 해야 한다. 아무튼 대부분의 경우, 묻다 보면 필자의 의도에 비슷하게 대답을 하는데, 언문에 관해서는 영 필자의 의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 잘못 실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전에는 현대 사회에서 쓰는 용어를 설명하는 것이기에 그렇겠지만 과거의 용례를 보면 사전에 있는 정의가 잘못되었다. 오늘은 이것을 밝혀 보고자 한다.

우선 ‘한글’은 일반적으로 “조선 전기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차제하여 반포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라고 정의한 것이 많은데, 한글이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등장한 것이다. 정확하게 누가 명명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에 여러 가지 이름(가갸글, 국문, 배달글 언문 등)으로 일컬어 왔는데, 주시경 등에 의해 한말, 한글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영근, 2003)고 한다.(참고 : 원문 – 이 소리갈은 한글로 말하엿으나 이까닭을 닐우어 어느 글이든지 보면 그 소리의 엇더함을 다 알리라.<주시경, 소리갈>)

한편 언문은 사전을 찾아보면 “예전에 ‘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언문’이라는 표현이 한글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세종대왕과 최만리의 논쟁을 살펴보면 절대로 훈민정음을 낮추 부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예문을 보자.

내가 나이 늙어서 국가의 서무(庶務)를 세자에게 오로지 맡겼으니, 비록 세미(細微)한 일일지라도 참예하여 결정함이 마땅하거든, 하물며 언문이겠느냐? 만약 세자로 하여금 항상 동궁(東宮)에만 있게 한다면 환관(宦官)에게 일을 맡길 것이냐? 너희들이 시종(侍從)하는 신하로서 내 뜻을 밝게 알면서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니, 만리(萬理) 등이 대답하기를, “설총의 이두는 비록 음이 다르다 하나, 음에 따르고 해석에 따라 어조(語助)와 문자(漢字)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사온데, 이제 언문은 여러 글자를 합하여 함께 써서 그 음과 해석을 변한 것이라 글자의 형상이 아닙니다. <중략>급하지 않은 일을 무엇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며 심려하시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난 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중략>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위의 인용문 중 밑줄 친 언문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세종이나 최만리가 공히 같은 표현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약에 언문이 훈민정음을 낮추어 표현한 것이라면 감히 최만리가 임금에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세종도 스스로 언문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것은 언문이 훈민정음을 낮추어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한자의 어려운 표기에 비해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글’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사전에 문자화된 것은 신뢰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사전을 편찬할 때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언문은 결코 한글이나 훈민정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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