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병진 노선'에 시동을 걸었다. 한편으로는 본격적인 재무장과 미국 및 우방국들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과 "고위급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시다는 7일 보도된 CNN과 인터뷰에서 이러한 외교 노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으로 세계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며, "일본이 방위 능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안보 정책을 크게 바꾼 결정을 내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해결 문제들"을 해결하고 북일 간의 안정적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의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북한과 중국에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분열과 대립이 아닌 강력한 국제 공동체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도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두 노선이 상당한 긴장 관계를 갖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일본이 계획대로 2027년까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끌어올릴 경우,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군비지출 국가가 될 공산이 크다. 또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에서 벗어나 '반격 능력', 즉 공격용 무기 도입도 본격화하고 있다.
아울러 미일 동맹의 일체화에도 박차를 가하면서 한·미·일, 미국·인도·일본, 미국·호주·일본, 미국·일본·필리핀, 쿼드와 오커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협력 등 미국 주도의 다자간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과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특히 기시다 정권이 정상회담 성사에 공을 들이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눈에는 '내로남불'로 비치고 만다. 납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일본이 공격적인 재무장과 타국과의 군사협력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문제삼는 것은 적어도 북한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은 일본의 군사적 움직임을 "자위적 억제력"과 군사 분야를 포함한 러시아와의 전면적 협력, 그리고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의 구실로 삼을 공산이 크다. 특히 러-우 전쟁의 장기화가 북한에 전략적 공간을 열어준 것처럼, 중국에 대한 군사적 포위·봉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양자동맹 및 다자 군사협력 강화와 이를 나토와 연결하려는 움직임은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하려는 것'이라는 북·중·러 3자의 '공동의 위협 인식'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10일로 예정된 미일정상회담과 11일에 있을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담은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방향은 기시다 정권이 강조한 '분열과 대결이 아닌 협력에 기반을 둔 국제 공동체'보다는 '진영간 분열과 군비경쟁의 격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냉전의 고착화'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기시다 정권의 '병진 노선'이 실패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북한의 까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적대국과의 관계 개선 및 안정적인 관계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접근이 군비증강과 동맹강화에 의존하는 안보 정책과 양립가능한 것인지 진지하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상이하지만 일본식 '병진 노선'이 추구하는 목표는 '안보와 평화'로 동일하다. 다만 '힘에 의한 평화'와 '대화에 의한 평화'라는 수단과 방식이 다르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최소화해야 주객전도를 막을 수 있다.
양자택일하라는 뜻이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힘, 특히 군사력은 충분히 축적했으니 이젠 군비증강은 자제하고 대화를 제대로 모색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 그나마 여러 나라와 두루 관계가 괜찮은 일본의 역할을 주목하고 또 응원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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