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사전투표가 시작되면서 제22대 총선의 막이 올랐다. 이 기간 정치인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 지역 곳곳을 누빈다. 정치부 기자도 생생한 민심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찾는다. 유권자들은 지역을 찾아온 낯선 기자를 경계하다가도, 점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평범한 시민의 입에서 나오는 '정치'는 상대방의 심판을 외치는 정치인의 레토릭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1일 인천의 한 재래시장인 계양산 전통시장을 찾았다. 한 시민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상점을 운영하는 53세 김모 씨와 61세 이모 씨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너무 부자라 우리의 삶을 알긴 알겠나" 물었다. 그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보이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은 나쁜 짓도 대놓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나쁜 짓'이 무엇일지 궁금해 짐짓 되물으니 "부동산으로 돈도 벌고 아빠 찬스도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 이들은 많은 '나쁜 짓' 중에서 불법적이라 하기 어려운 '아빠 찬스'를 꼽았을까.
그들이 해준 말을 곱씹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책 제목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가난 속에서 성장한 여덟 명의 아이들을 지켜본 10년의 기록을 담았다. 25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저자 강지나는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정책적 공백을 메워보고자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90년대 태어나 2020년대 청년기를 지나는 아이들 8명의 삶을 추적했다.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영성, 소년범 출신의 현석, 특성화고 출신의 우빈, 우울과 자살충동을 느끼는 소희 등 이들은 처한 상황도, 그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 달랐지만 '가난'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며 '가난'은 과연 무엇인지,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난이 어떤 형태로 이들의 삶에 발현되는지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삶... 대물림 되는 가난 속에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 소희
열일곱의 나이부터 자살 충동을 느끼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소희는 대물림되는 가난 속에 살고 있었다. 소희 외할아버지는 전형적인 도시 빈민이었다. 살림이 각박했던 외할아버지는 노름을 했고 외할머니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큰딸이었던 소희의 어머니는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를 했다. 어머니는 변변한 직장을 갖기 힘들었고 한부모 가족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소희는 가출하고 학교를 결석하고 출석률 미달로 진급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족 중 누구도 소희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비행을 일삼아도 소희를 혼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삶이었다. 소희는 자살충동을 느꼈고 자신의 삶을 우울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어머니나 가족에게 돌리지 않았다.
"왜 엄마는 날 안 잡아줬을까. 하지만 엄마가 저를 나쁜 길로 인도한 건 아니잖아요. 일단 저희 엄마잖아요. 그러니까 탓하는 게 너무 죄스러워요. 아빠는 저를 버렸잖아요. 엄마는 저를 안 버리고 키웠어요. 어떻게 키웠든 키웠잖아요. 그게 너무 고마운 거예요. 엄마보다는 하느님을 탓했어요. 하느님이 내가 준비가 돼있으면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잘해보려고 하면 다 안좋게 돼버리니까. 포기를 할 수밖에 없죠. '기회를 공평하게 준다면서 왜 나한테는 그런 게 없었나요' 하면서 혼자 원망을 했어요."
소희는 오히려 어머니도 공평하지 않은 이 세상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삶도 자신의 삶과 비슷했으니까. 어머니도 외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가난과 학대를 겪었고 식모살이를 하며 교육과 돌봄이 결핍된 성장기를 보냈다. 어머니 역시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학력과 노동 능력이라는 사회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외로운 삶을 살았다. 저자는 "소희네 가족의 대를 이어온 가난은 전형적으로 환경에 의해 축적되어온 양상을 띤다.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열일곱 살에 우연한 계기로 마음을 먹고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이후 대입 시험을 치렀다. 소희가 진학한 학과는 '사회복지과'였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는 것 자체가 경제적 지원이 전무한 소희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여전히 소희는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고 외롭고 마음이 힘든 상태라고 호소했다.
"대학교 다니다 보면 돈이 엄청 필요하잖아요. 다른 애들은 학교를 다닐 때 알바가 필수가 아닌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필수인 거예요. 쟤는 가만있어도 오십만 원, 백만 원씩 집에서 주는데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한 달에 삼사십만 원 밖에 못 벌어요. 이것도 결국에는 나를 위해서 쓰는 게 아니에요. 그냥 교통비, 핸드폰 요금 같은 생활비로 쓰다 보면 제가 쓸 수 있는 돈이 없는 거예요. 한 번은 너무 서러워서 학교에서 수업 받다 운 적도 있어요. 신발이 찢어진 거예요. 근데 난 이제 살 돈이 없는 거예요. 엄마한테 사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살 돈도 없고…."
가난한 아이는 자라서 가난한 청년이 됐다
기초생활수급가정에서 자란 수정은 성실한 학교생활을 토대로 유아교육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앓는 어머니는 도박에 중독됐고, 사기 피해를 입었다. 수정의 살림은 여전히 가난했다. 결국 가난한 아이는 자라서 가난한 청년이 되었다.
"대학에 다닐 때 수정은 개인적인 꿈이 있었다. 편입을 해서 4년제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싶었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도 따고 싶었고, 관심 있던 패션 공부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많은 꿈들은 조금씩 퇴색되어갔다. 수정은 적은 월급에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고 미래를 위해 뭔가를 구상하고 저축할 여력이 없었다… 수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질의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려면 시험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당장 집에 생활비로 제공할 돈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엄마가 반대했고, 언니도 난색을 표했다."
수정이 청년이 되어서도 가난했던 이유는 디딤돌이 없는 삶의 조건이었다. 수정의 수입이 가족의 비빌 언덕이었다. 가족의 현실을 아는 수정이 장기적 전망을 꾀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수정이 꿈꾸는 미래의 삶은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과 그것이 보장되는 여유였다"고 짚었다. 저자는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을 인용하며 빈곤은 "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역량이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다.
"첫 노동시장 진입까지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가족 공동체가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현 구조는 빈곤을 재생산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계층 상승의 기회가 거의 없는, 아예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구조인 셈이다… 부모의 부와 계층이 세습되는 사회가 되면서 부모와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기위해 오랫동안 부모에게 의지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이런 구조하에서 빈곤층 청년들은 출발선부터 불평등한 구조 아래 놓인다."
'부모 찬스'라는 참을 수 없이 '화목하고 합법적인 절망'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부모 찬스'가 등장했다. 자녀에게 수억, 많게는 수십억의 주택을 증여한 이들이 후보로 나왔다. 경기 화성을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는 22살 군복무를 하는 아들에게 10억이 넘는 성수동의 주택을 증여했다. 매입 당시 해당 주택은 11억8000만 원이었으나, 현 시세는 28억~3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되자 공영운 후보는 입장문을 통해 "이후 자녀가 향후 결혼 등을 준비함에 있어 집 한 채는 해줘야겠다는 마음에 증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증여세도 성실히 납부하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광주 서을에 출마하는 민주당 양부남 후보도 25살과 23살 아들들에게 9억이 넘는 한남동의 단독 주택을 증여했다. 양 후보는 소득이 없던 두 아들을 대신해 증여세를 내줬다. 양부남 후보 역시 논란 후 입장문을 통해 "현재 가수로 활동하는 큰아들과 취업 준비를 하는 둘째 아들의 수입이 변변치 못하여 증여세를 대신 내준 사실은 맞다"며 "두 아들에게 물려 준 서울의 한남동 주택은 '편법대출'도 없었으며 '꼼수 증여'도 아닌 적법한 절차에 따른 정상적인 증여"라고 인정했다.
'아빠 찬스'를 받은 후보도 있었다. 국민의힘 장진영 서울 동작구갑 후보는 법인 명의로 2021년 경기 양평군 공흥리 부지를 80억 원에 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금의 90% 이상을 부친이 이사로 재직하던 금융기관 등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대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시 수혜 지역으로 이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장진영 후보는 입장문을 내고 "부동산 개발을 모두 투기라고 할 것이냐"고 반문하며 "장 후보 부친이 재직 중이던 신협의 대출금은 12%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부모는 자녀가 편히 살 수 있도록 주택을 '합법적으로' 증여하고, 자녀는 부모가 재직한 곳에서 '합법적인' 대출 도움을 받는 가정의 '화목함'까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공영운 후보는 딸의 주택이 '갭투자'라는 의혹을 받자 "영끌, 갭투자 젊은이들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는 규정에 문제 없는 걸 가지고 문제 삼으면 안 되죠"라고 반박했다. 그들도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항변하며 오히려 억울해 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민의를 대변하는 국민의 대표가 되려고 한다는 점이다. 소희와 수정이의 눈에는 이들의 뉴스가 어떻게 보일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받아들인다"고 자세를 낮추면서도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항변하는 후보들의 해명을 받아들이고 늘 그랬던 것처럼 공평하게 기회를 주지 않는 하느님을 원망해야하는 걸까. 소희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유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실질적으로는 죽는 것보다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게 더 크겠죠? 그런데 안 풀리더라고요, 얘기를 해도. 그래서 아직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답답할 때도 있고... 왜냐면 얘기는 어떻게 됐든 할 순 있잖아요? 근데 제가 갖고 있는 감정들까지는 전달이 안 되잖아요. 아, 나 힘들어. 그것 뿐이잖아요. 사람이 보통 다른 사람이 힘든 것보다 내가 힘든 게 더 크게 느껴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얘기해도 별로... 더 우울해져요. "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이를 모르는 것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내 '부모 찬스'가 논란이 불거진 지난달 28일 이 대표는 계양 유세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정한 나라, 성장하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며 "재산 물려주는 것도 능력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능력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를 기회가 공평하게 부여되는 그런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 그게 부모세대들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문제가 불거진 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에게 '부모 찬스'는 '절망'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특히나 국민의 대표가 되어 민의를 대변하겠다는 이들의 그것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앞서 계양산 전통시장에서 만난 시민은 '부모 찬스'를 나쁜 짓으로 꼽은 이유를 묻자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 망정 희망을 뺏지는 말아야지"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소희와 수정이가 '희망'을 갖게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저 아이들이 어떻게든 계속 살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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