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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사모펀드에 밀리게 된 이유는?

[김영수의 사모펀드 이야기] <2>

사모펀드 급성장의 경제·사회적 배경은 무엇인가?

1987년 블랙먼데이를 계기로 드럭셀 번햄 램버트 투자은행이 주도하던 정크본드(Junk Bond:고위험 고이자 채권. 대형 기업인수합병시 큰 돈을 급히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많이 사용되었음) 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요 거대 투자은행들을 일반은행으로 전환시키면서 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시대를 지나오면서 사모펀드는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대형 거래와 대형 구조조정에 필요한 거대 자금을 순식간에 동원가능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존재로 남게 됐다.

사모펀드의 등장 이전에는 고이자·고배당으로도 자금 동원이 안되는 '시장의 실패 현상'이 상당기간 존재했다. 그 빈 공간을 사모펀드가 메꾸었다. 즉 정크본드와 투자은행이 규제를 심하게 받기 시작하자 규제에 자유로운 대형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독점적 지위가 사모펀드에게 주어졌고, 그로 인해 당연히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주택시장이 침체됐을 때 미국의 유명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미국 국책은행으로부터 대량으로 불량 주택모기지를 (특혜적 조건으로) 인수하고, 따라서 주택들을 인수받아 이 주택들을 토대로 임대주택사업에 뛰어들었고, 블랙스톤을 모방한 다른 사모펀드들의 진입은 미국 주택시장 회복의 주요 동력이 됐다. 이 사모펀드들이 없었더라면, 미국 주택시장의 회복은 훨씬 늦었을 수 있다. 주택 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침체될 때 그 회복에 사모펀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투자은행에 몰리던 인재들(명문대학 + 유명 투자은행 근무 경력)이 사모펀드로 몰리면서 자기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 네트워크의 배타성은 아주 공고해서,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좋은 투자기회 금융기회를 독점할 수 있었다.

사모펀드 급성장의 또 다른 경제·사회적 환경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거의 15년간 계속된, 역사상 가장 낮은 이자율을 들 수 있다. 비교적 안정된 채권에 투자하여 은퇴자들에 안정된 노후수입을 보장하던 연기금은 궁극적인 파탄을 걱정하게 됐는데 이들에게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하면서 연기금의 막대한 자금이 사모펀드로 동원될 수 있었다.

각 사모펀드마다 총운용자산(Asset Under Management: AUM)이 막대해 질 수 밖에 없는데, 2%·20%의 정형화된 수익분배모델에서 연 2%라는 안정된 현금유동성이 생긴다. 100억 달러 당 2억 달러의 안정된 소득이 발생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총운용자산이 '큰' 곳일 수록 '크다'는 이유 때문에 투자자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더 몰리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성공적인 투자의 한 사이클이 끝나면 같은 사모펀드의 또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생경한 다른 사모펀드에 참여하는 것보다 쉽고 편하다. 심지어 투자가 실패해도 사모펀드가 '이번에는 반드시 만회할 정도의 큰 성공'을 약속하면서 다음 사이클의 새 투자에 참여시키는게 성공한 프로젝트의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쉽다. 같은 사모펀드의 2호 펀드, 3호 펀드에 계속해서 잔류하고, 대부분 투자금을 더 늘리기 때문에 운용자산(AUM)은 쉽게 늘어난다. Re-Up 투자라고도 부른다. 대부분 대형 사모펀드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모펀드는 왜 재벌을 능가하는가?

재벌은 막강한 자금력과 정치사회적 영향력, 뛰어난 인재 풀, 정보력 등으로 무장한 무적함대처럼 여겨졌는데, 왜 사모펀드에게 밀리게 되었는가.

재벌기업의 계열사들은 모기업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때문에 매각이나 분할 등의 과감한 행동을 쉽게 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모펀드는 그런 제약이 없어서 재벌기업보다 자유롭다.

재벌기업이 소비자·오래된 거래 업체·직원 등의 이익을 극단적으로 희생시키면서 투자자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자면 부채비율을 극한으로 올리는 일 (즉 기업을 언제고 쉽게 파산시켜버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기), 주요자산을 팔아치우는 일, 많은 직원을 순식간에 해고하는 일, 파산시키지 않을 회사를 파산시키면서 회사의 부채 중 적립된 퇴직금을 떠안지 않고 공적 부담으로 넘기는 일 등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재벌기업에서는 어렵다. 사모펀드는 가능하다(한국은 제약이 있긴 하다).

소송·노동 쟁의·소비자 집단 항의 등의 리스크가 높은 병원·요양원·민간 교도소 등의 업종인 경우 무한책임을 궁국적으로 져야하는 오너가 있는 경우는 경영하기 어렵지만, 언제든지 파산하고 청산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모펀드는 그런 고위험 고수익 프로젝트를 인수해 많은 문제와 많은 물의를 감수하면서 경영하여 높은 수익을 창출하다가 여차하면 쉽게 파산·청산하는 것이 재벌에 비해 쉽다(사모펀드 당사자들은 이것을 사모펀드 고수익의 가장 큰 비밀이라고 말한다).

공기업의 민영화에도 사모펀드는 유사하게 접근한다(공기업 민영화의 정책결정에 참고해야할 사항이다). 수도나 전기 그리고 대중교통 등 공공서비스의 품질을 낮추고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의 원성이 높아지겠지만 투자 수익은 올릴 수 있다. 지역 사회 내 정치적 고려를 할 필요가 없는 외국계 사모펀드로서 쉬운 일이고, 거의 모든 민영화과정에 발생한다. 그러나 지역사회 내에서 영속해야하고 정치사회적 영향력의 총량을 고려해야하는 재벌에게는 어렵다.

많은 경우 이런 '몰인정한' 투자는 수익면에서는 대부분 성공한다. 수익으로만 보면 사모펀드가 재벌보다 우월한 결과를 내기가 쉽다.

즉 오너 정체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투자·처분행위를 사모펀드는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경제 주체인 재벌에 비해 수익성 창출에 유리한 경우가 당연히 많다. "사모펀드가 궁극적인 시장의 지배적 조직형태"라는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젠센 교수의 주장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유동성이 적은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사업 자체는 활발하지 않은 오래 된 기업의 경우 해체하여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오히려 플러스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 오너는 정체성 문제로 실행하기가 어렵지만 사모펀드는 상대적으로 쉽다. 즉 전통적인 오너가 있다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사모펀드는 할 수 있다.

사모펀드가 아니면 추진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들도 많다. 당연히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모펀드에는 고수익이 돌아간다. 자료가 불투명한 경우, 기존 오너·경영자가 불법행위가 있는 경우,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적정 시장가격 산정이 어려운 경우 사모펀드의 인수로 시장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없었던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그 시장을 가장 먼저 만든 사모펀드가 고수익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골치아픔(Complexity)을 해결하는데에서 나오는 이익이라고 사모펀드 당사자들은 이야기한다.

일반투자자들이 내막을 이해하기 어려운 투자대상, '메가 사이즈'의 딜에서 사모펀드들이 큰 행운을 잡는 것이 바로 이 이유이다.

한편, 메가 사이즈의 딜은 아직 적정 시장가격이 형성되어있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싸게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사모펀드들의 자금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사모펀드의 숫자도 많아 지면서 당장은 시장이 없는 메가 사이즈의 딜들이 얼마후에는 적절한 딜 사이즈(Bite Size)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즉, 일반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을 정도로 큰 딜이어서 자금력이 있는 사모펀드가 싸게 산 후 나중에 자금력이 큰 투자자들이 생기면서 좋은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 인수 후 (원칙적으로) 경영을 영구히 하는 목적이 아닌, 다시 팔기 위해 잠깐 경영을 맡는 것을 아예 처음부터 천명하는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집을 파는데 영구 거주 목적이 아니라 집을 수리해서 비싸게 되팔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주택 거래가 더 잘 되기 마련이다. 거기에 사모펀드를 위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거시 경제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삼성에서 상당히 잘 나가던 회사들을 팔지 않고 그냥 폐업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이런 것을 해결할 사모펀드가 있었다면) 폐업 대신 사모펀드에 넘겼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한국도 지금부터 몇몇 재벌들은 이러한 사모펀드의 역할이 필요할 듯 하다.

또 재미있는 점은 사모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특정 사모펀드가 가지고 있는 메가 사이즈 딜을 소화할 수 있는 다른 사모펀드들이 많이 생겼다는 점이며 그것이 사모펀드들이 고수익을 누릴 수 있는 비밀 중의 하나다. 즉, 사모펀드 시장의 성장 자체가 사모펀드들의 고수익을 창출하고 고수익은 사모펀드 시장의 성장을 유도하는 정(正)의 연쇄반응이 있었다.

사모펀드가 많이 생겨나면서 사모펀드간의 거래(2차 시장에서의 거래)를 통해 실패한 프로젝트를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은폐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사모펀드 회사 A의 1호 펀드가 실패했다. 그러면 이 펀드를 사모펀드 회사 B가 비싼 가격에 사준다. 대신 사모펀드 A는 B의 손실을 같은 방법으로 은폐하는 거래를 해준다. 현재 운용자산(AUM)이 수백조씩에 이른 사모펀드가 많이 생긴 이후, 이러한 은폐가 상당히 지속될 환경이 더욱 조성되었다.

또 펀드 자체를 여러 개 섞고 복잡한 구조로 만든 다음, 더욱 복잡한 증권화(Securitization)를 통해 어느 누구도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일이 벌어질 환경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들을 섞고 복잡한 증권화를 통해 수년간 은폐하면서 버블이 커졌고 결국 그것이 터지면서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는데, 사모펀드라는 공간에서도 언젠가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불가피할 지도 모른다.

사모펀드가 특정 기업을 인수할 경우 교섭 시작부터 아예 가격을 아주 싸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싸게 인수하면 당연히 수익을 높이기가 쉽다. 인수되는 기업의 관점에서는 ('부도덕한'이란 수식어가 많이 붙는데) 사모펀드에 인수당하는 것을 경매·청산 등과 유사한 불명예스러운 경우라고 생각해 쉽게 싼 가격으로 인수당하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미 그런 다급한 환경에 이미 들어간 기업들이 사모펀드에 인수된다. 전당포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미 아주 싼 가격에 내 물건이 넘어가게 된다는 각오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다른 '더 좋은' 대상에게 명예롭게 인수당하는 것이 어려워진 경우에 사모펀드에 인수되는 것이라, 싼 가격에 인수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인수 대상들이 의외로 많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에 비해 제약이 적다. 제약이 적으면 아무래도 수익성 내기가 쉽다. 당연히 사고가 터질 확률도 높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한 대형투자자들만의 투자를 받아 운용사가 제약없이 마음껏 한 번 수익을 내보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사모펀드다.

은행과 기타 채권자들은 이자 소득과 원금의 회수 이외에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으려하는데 경영에 관여하면서 문제 해결까지 하는 사모펀드가 채울 공간이 있다. 당연히, 이자 원금 플러스 알파의 고수익을 기대한다.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 채무자와 은행 그리고 사모펀드의 3자 Win-Win-Win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즉 은행과 기업들이 채우지 못하는 사모펀드만이 채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만 보면, 사모펀드는 돈이 벌릴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쉽기만 한 산업은 없다.

다음 장에서는 사모펀드들의 애로 사항과 한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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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미국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캐나다 앨버타 상과대학 금융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도요타그룹 등을 거쳐 현재 캐나다에서 당뇨병치료제품을 만드는 Eastwood Bio-Medical Research Inc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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