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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그러면 취업 못 해!"…블랙리스트, 쿠팡 만의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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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그러면 취업 못 해!"…블랙리스트, 쿠팡 만의 문제 아니다

[쿠팡 블랙리스트 사태] 블랙리스트가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

쿠팡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조선 산업 노동자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같은 일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선 산업은 수주산업이다. 2016년 수주 불황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수만 명이 아무런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세계 1위의 조선 산업을 만든 주역들이 인생을 갈아 넣어 쌓아 올린 숙련노동은 건설 현장, 택배 등 배를 만드는 숙련노동과 상관없는 곳에서 녹슬어 갔다. 수년의 보릿고개를 넘어 조선소 호황이 왔지만, 기업과 정부는 낮아질 대로 낮아진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은 그냥 둔 채 숙련공 노동자들을 다시 돌아오라고 한다.

현재 호황이라는 조선소는 숙련공 인력난이 심각하다. 떠나간 숙련공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해 돌아오지 않고, 그 자리를 학원 몇 달 다녀 자격증을 취득한 노동자들이 대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산재 처리를 했다는 이유로, 또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노동자의 일할 권리마저 빼앗고 있다.

2022년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하청노조 인정과 하청노동자 임금 회복을 요구하며 51일간 파업 투쟁을 했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의 삶이 달라지기는커녕, 기업은 오히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조선3사 어디에도 파업 노동자가 취업하지 못하게 했다. 그뿐인가. 투쟁 이후 정부와 기업은 하청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차별 해소를 약속했지만,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올해 들어 한화오션은 고효율, 고수익을 목표로 점점 더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1월 2건의 산재 사망 사고를 비롯한 끊임없는 산재사고와 하청노동자 임금 체불이다. 이런 상황에 노동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기업은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특히나 원청기업들은 노동자의 신상을 공유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 리스트를 만들어 아예 취업 자체를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 반인권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반노동적인 곳이 조선소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노동자들이 짊어지고 있다.

조합에 신고된 피해 사례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한 조합원은 한화에서 영암에 있는 삼호조선소로 서류를 넣었더니 원청 협력사지원부에서 노동조합 활동한 이유로 인해 취업을 거부당했다. 삼성 입사 전 안전교육을 이수하고 출입증이 발급되어 출근했더니 역시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사례도 있었다.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도 한화오션 하청업체에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하청업체들 역시 퇴사자의 신상정보를 공유해 업체 대표들끼리의 담합으로 3개월간 취업 제한을 두고 있다. 결국 다른 조선소에서 일하다 제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한화로 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불황 시절 떠나간 숙련공이 돌아오지 않아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대거 투입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는 기업들이 어떻게든 노동자의 입에 재갈을 물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노예로 만들기 위함이다.

최근 들어 조선소 임금체불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기업은 블랙리스트로 협박하며 범죄를 범죄로 막고 있다.

주변에선 그런 일들을 왜 당하고만 있느냐고 묻는다. 블랙리스트 공유가 명백한 불법행위임에도 이를 뿌리 뽑지 못하는 이유는 블랙리스트 문제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녹취와 같은 증거가 있음에도 노동자가 이를 쉽게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청과 하청업체는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현장관리자들조차도 "당신 그러면 조선소에 취업 못 해!"라는 말을 통제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차별과 불법이 난무하는 반인권·반사회·반노동적인 기업과 현 정부를 규탄하는 블랙리스트 철폐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처럼 무권리 상태에 처해 노예와 다를 바 없는 하청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요구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양보 없이 재요구할 것이다. 또한, 노동 탄압의 대표적이고 악질적 행태인 노동조합과 노동자에 대한 470억 손배 철회 투쟁도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함께 해나갈 것이다. 노동자는 기계도 소모품도 아니다. 기업의 블랙리스트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 노동 탄압은 중단되어야 한다.

▲지난 2022년 7월 19일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doke) 화물창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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