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공전을 거듭하던 21대 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이내 대통령이 공포하도록 하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개정노조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일찌감치 시사한 바 있습니다.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경영계와 보수언론까지 한목소리로 개정노조법이 시행된다면 "노사관계가 파탄날 것"이고 "불법파업이 횡행할 것"이라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수세력은 일제히 개정노조법의 의미를 왜곡‧폄하하는 데 혈안입니다. 모든 노동자의 온전한 노동3권 쟁취를 위해 이제 겨우 한걸음 내딛었을 뿐입니다.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개정노조법의 즉시 공포가 왜 필요한지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에 "진짜사장과 교섭할 권리"는 없나요?
어떤 사회나 조직이건 무책임한 이들은 비난을 받으며, 이를 방치하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 모든 일은 권한과 책임을 가진 이들이 책임감을 갖고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같은 무책임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택배노동자들은 택배사(원청)들과 계약한 대리점들과 위수탁 계약을 맺는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용자는 대리점이지만 택배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에 대한 권한은 대리점 뒤에 있는 원청이 갖고 있다. 임금도 원청 급지수수료에 기반해 정해지고, 출차 시간(터미널에서 물건을 다 싣고 배송지로 출발하는 시간)도 원청의 간선차 도착시간에 의해 좌우된다. 좁은 접안시설을 개선하는 것도, 심지어 터미널에 선풍기 하나 놓는 것도 그 터미널 소유자인 원청의 권한이다.
형식적 근로관계 앞세워 뒷짐 지고 방관하는 진짜 사장들
그간 택배사들은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진짜 사장이면서도 택배노동자들의 요구에 "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며 택배 현장의 문제를 방치해 왔다. 그 결과 지난 20~21년 새 26명의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코로나로 물량은 폭증하는데 장시간 노동 문제, 분류작업 문제 등 원청이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방안들은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원청의 책임 회피로 지연됐고, 책임 있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비극이 이어진 것이다.
이후 여론의 힘으로 원청이 사회적 대화 자리에 끌려 나왔고, 당사자들 간의 책임 있는 논의를 통해 택배요금 인상, 분류작업 배제, 주 60시간 이상 노동 제한 등이 합의되면서 집단 과로사가 비로소 멈췄다. 책임 있는 이가 책임 있게 행동하니 문제도 해결의 가닥을 잡아 나간 것이다. 사회적 합의 이후 택배 현장은 이제 사업이 망하고 신용불량이 됐을 때 들어오는 곳이 아닌, 젊은이들이 "힘들지만 한번 해 볼까?" 관심을 가지는 직업으로 변모해 나가고 있다.
노조법 2‧3조, 노동기본권 보장 첫걸음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본질과 긍정적 효과는 바로 이것이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그간 책임을 회피해 왔던 진짜 사장들에게 교섭의무를 부과해 책임을 강제하는 것. 그렇게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 이는 지난 수십 년간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과정이자,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렇게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개정안을 '파업조장법'으로 왜곡하고 "우리 경제의 숨통을 끊는다", "국가경쟁력이 약화된다"며 거품을 물고 반대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그간 책임회피로 누렸던 수혜를 계속 누리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책임을 제어하고 공정과 상식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의무일진대, 여당인 국민의힘은 재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대통령실은 거부권을 운운하고 있다.
권한과 실익 가진 자가 사용자로서 책임 져야
모두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고, 양극화와 저출생을 걱정한다. 이를 완화, 해결하려면 지엽적 문제들에 재정을 쏟아붓기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 호봉도, 퇴직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낮은 급여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고용 안정과 적정 임금, 안정적 노동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 스스로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이는 다름 아닌 진짜 사장과 교섭할 권리다. 이들이 사업장에서 사측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 사측이 교섭에 응해야 할 의무를 부여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조법 2‧3조는 가장 중요한 '민생 법안'이라 할 것이다. 공정과 상식을 깃발로, 민생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윤석열 정부라면 개정안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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