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총선후보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과정에서 '추가 합격'한 업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이 '추가 선정' 과정에 이재명 지도부 핵심 인사인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이 관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김 부총장과 민주당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면서도, 김 부총장이 해당 사안에 대해 "의견 제시"를 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선 업체 선정은 선관위의 고유 관할 업무로, 김 부총장이 밝힌 '의견' 내용의 당·부당을 떠나 당 사무국이 경선 관련 사안에 개입한 것 자체가 문제 소지가 있다. 일각에서는 정필모 전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의 돌연한 사퇴를 이와 연관지어 보는 해석도 나왔다.
동아일보 "김병기가 '왜 리서치디앤에이 빠졌냐' 항의"
민주당 총선후보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과정에서, 이달 4일까지였던 공모를 거쳐 6일 경쟁 프리젠테이션 과정을 통해 당일 3개 업체가 선정됐고 그 이튿날 처음 선정된 3개 업체 이외에 '리서치디앤에이'라는 업체가 추가로 선정됐다는 사실은 지난 20일 <프레시안> 보도(☞관련 기사 : 野 공천 여론조사, 막판에 업체 1곳 추가…'현역 배제' 조사 업체와 동일 대표?)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23일 <동아일보>는 민주당 핵심 관계자 증언을 인용, 이 관계자가 "김병기 부총장이 '왜 리서치디앤에이가 빠졌느냐'고 당 선거관리위원회 쪽에 항의해 하루 뒤 추가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김 부총장이 당 실무진에게 전화로 문제를 제기해, 이 때문에 3곳에서 4곳으로 늘었다"며 "통상 현역의원 평가를 위한 여론조사나 경선 ARS는 업체 2~3곳 정도가 맡아서 해왔는데 굳이 4곳을 해야 한다길래 봤더니 자격 미달인 곳을 선정하겠다고 나서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번 총선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외에, 지난해 11월 시행된 현역의원 평가 ARS 조사 업체 선정에서도 "(리서치디앤이이는) 애초 공모를 통해 선정된 3개 업체 이후로 추가로 선정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김 부총장은 <동아> 인터뷰에서 "(부당한 관여는) 사실무근"이라며 "그 회사(리서치디앤에이)가 부당하게 배제됐다고 들어 '절차대로 하라'는 의견을 전달했고 다음 날 그 업체를 추가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 배경에 대해 "총선을 앞둔 예민한 시기인 만큼 당 의사결정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업체가 없도록 하라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민주당도 공보국 공지를 통해 "선관위 여론조사업체 선정에 김 수석부총장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김 부총장은 업체 선정 PT 우선순위에 오른 업체를 적절한 사유없이 배제할 시 불공정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당 보도에 대한 정정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 부총장 본인이나 당 공보국 모두 "의견 전달", "의견 제시"가 있었음은 인정한 셈이다. 지난 1월 31일 민주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고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경선 ARS투표 시행업체 모집'은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당시 정필모) 명의로 공고됐고, 김 부총장은 선관위원이 아니다.
정필모 돌연 사퇴 이유 놓고도 분분한 뒷말…"자칫 나중에 문제될까…"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필모 전 선관위원장의 돌연한 사퇴 역시 당 사무국의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관련 '의견 제시'와 무관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선관위원장을 맡았던 정 의원은 지난 21일 밤 1차 경선 결과 발표를 앞두고 '건강 문제'를 이유로 돌연 사퇴했다.
이를 놓고 민주당을 탈당해 '이낙연 신당'으로 둥지를 옮긴 김종민 의원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경선 진행 과정에서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을 본 적 있나? 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는데 그 양반(정 의원)하고 선관위원 2명이 같이 사퇴했다. 같이 한꺼번에 몸이 아프나? 지금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고 있나?"라고 비꼬며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조사업체 선정 및 추가 선정에서 부당 선정 또는 부당 여론조사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동아>도 정 의원과 가까운 다른 국회의원의 말을 인용해, 정 의원이 "특정 업체가 추가되는 과정에서 (나는)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 자칫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사퇴했다"는 취지로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고 전언(傳言) 보도했다. 신문은 정 의원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가 "정 의원이 리서치디앤에이가 선정되는 과정이 석연치 않아 진상을 알아보는 와중에,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윗선에서 개입한 사실을 알고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고 전했다.
전날 <경향신문>도 '정필모 민주당 선관위원장은 왜 갑자기 그만뒀을까' 제하 온라인판 기사에서, 민주당 중앙당 선관위 관계자가 "정 위원장이 지난번 회의(20일) 때 여론조사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언급하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기사 내용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전달된 것 같다. 언론 대응에 주의해 달라'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은 다른 당 관계자가 "공모를 통해서 3개 여론조사 업체를 선정했는데, 중간에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별다른 절차 없이 한국인텔리서치(리서치디앤에이)가 끼어들었다"며 "필요하다면 새로 업체를 추가할 수는 있지만 추가 공모를 하든가 하는 게 정상적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해당 업체를 추천한 사람은 한 선관위원이었고, 이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자 정 위원장은 압박을 받아 그만둔 것이라는 관계자 말을 전했다.
SBS "민주당 예비후보 지지모임에서 '청구지 주소 바꿔'…경선 여론조작 정황"
경선 여론조사 업체 선정 과정에 당 사무처가 '의견 제시'를 하고, 그 결과 추가 선정된 업체는 '박용진 하위 10%'라는 결과를 낸 선출직공직자평가 여론조사에 참여한 업체이면서 동시에 '현역 배제' 지역구 여론조사를 돌린 업체와 같은 대표자를 둔 유관업체인 것으로 밝혀지면서(☞관련 기사 : "'박용진 하위 10%' 평가, '현역 배제' 조사 유관업체가 했다"), 자칫 원내 1당의 총선후보 경선 자체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전날 SBS <8뉴스>는 서울의 한 민주당 지역구 예비후보 캠프가 개설한 SNS 대화방에서 "저는 우리 친정엄마 핸드폰 우리 집으로 변경 완료했다", "핸드폰 주소지 ○○○(지역구)로 돼있는지를 확인/변경(해달라)"는 대화가 오갔다고 보도했다.
정당의 경선 여론조사는 이동통신사가 제공한 가상번호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되는데, 해당 번호 사용자가 어느 지역구 거주자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통신사에 등록한 휴대전화 요금 청구지이다. 실제 총선 투표와 달리, 주민등록상 주소 기준이 아니라는 얘기다.
SBS는 "단체 대화방에 있던 선거캠프 관계자는 '일부 지지자가 적극성을 보여 일어난 일 같다'며 '캠프 차원에서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이 캠프는 그러면서도 단체 대화방은 '경선 준비에 위험이 크다'며 폐쇄했다고 한다.
방송 보도 화면을 보면, 지지자들은 휴대전화 주소지 변경 등과 함께 "○○○에 사는 분들에게 경선전화때 ○○○의원에게 표를 주라고 요청", "지인들 설득해서 ○○○ 핸드폰에 ♥힘내라 ○○○♥ 메시지 보내게 하기"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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