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축제인 총선을 앞두고 민주주의를 망친 인물을 띄우는 상황 말이다.
국민의힘에서 이승만을 주제로 한 <건국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적극 띄우고 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다큐를 직접 관람한 후 기자들 앞에서 "제가 나오던데요?"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한 분"이라고 이승만을 평가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일, 농지개혁, 두 가지를 꼽았다. 다큐에는 한 비대위원장이 법무부장관 시절 이승만에 대해 평가한 장면이 삽입돼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 대해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간다. 22일 경남 창원에서 연 '민생 토론회'에서 그는 "흔히 원자력 발전의 시작을 1978년 4월 고리 1호기로 기억하는 분이 많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원전의 기초를 다진 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건국 아버지는 이렇게 원전의 아버지가 된다. 대통령의 주장대로 "세계 10대 경제국"이 된 데에 이승만의 선구안이 작용했다고 한다면,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몇 수 앞을 내다 보고 '문맹 퇴치'를 위해 노력한 이승만의 공 덕이겠다.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운동가 사진에 이승만이 빠지자 "한·미 동맹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에 초석을 닦은 분 아니냐" "왜 그런 분이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고 탄식했고, "이 전 대통령의 과를 덮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며 "그보다 훨씬 더 큰 공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2023년 3월 28일자)
하긴, 이승만의 공이 어디 한두개인가. 내친 김에 이승만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무수한 '공'을 떠올렸다. 국민의힘과 이승만 지지자들이 잘 말하지 않는 '공'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런 것들 말이다.
탁월한 언론인 출신 문창재가 쓴 <대한민국의 주홍글자>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 국민보도연맹을 만든 이승만 정권은 수만 명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했는데, 이런 사건을 통해 이승만은 한국 국민에게 국가 권력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국민방위군 사건도 있다. 청년들을 제2국민병으로 징집한 후 방치해 굶주림과 추위, 질병으로 사망하게 했다. 많게는 9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20만 명 이상이 동상으로 신체 일부를 절단했다. 전쟁이 인권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이런 짓을 왜 하면 안되는지 반면교사로서 준 큰 교감을 이승만의 '공'에서 빼놓을 순 없다.
이승만은 1954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영구집권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재적의원 203명 중 3분의 2인 135.333.....표가 필요했지만 0.333......명이 모자란 135표 득표에 그친 이승만 정권은 반올림 기법을 동원에 0.333......표를 버리는 기적의 사사오입 논리를 도입했다. 사람을 3등분 할 순 없지 않은가. 후대 '동료 시민들'에게 '표 계산에서 반올림이란 없다'는 원칙을 확립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바, 우린 이승만의 이런 업적을 통해 '영구 집권' 시도가 민주주의에 큰 해악을 끼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민주주의 DNA를 국민의 몸에 새겨 박정희 독재와 전두환 독재를 이겨낸 것도 이승만의 공이겠다.
특히 한국 민주주의가 이승만에게 빚을 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59년 3.15부정선거였다. 자유당은 85세였던 이승만이 언제 죽을 지 몰라 이기붕을 대통령 승계 1순위인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부정 선거의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짓을 자행했는데, 이승만은 결국 부정선거가 어떻게 민주주의에 해악을 미치는지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공을 세웠다 할 수 있겠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자국민에게 발포해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를 냈는데, 이는 '자국민에겐 총을 겨눠선 안된다'는 교훈을 안겨줬다. 전두환의 광주 학살에 대해 부족하나마 그 정도의 단죄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보면 이승만이라는 훌륭한 반면교사의 역할이 있었다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반민교사가 된 이승만은 양민 학살, 헌법 유린, 선거 유린을 통해 우리에게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국부'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1962년 5차 헌법 개정에서 '4.19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혁명에 의해 무너진 이승만 정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나. 쉽게 말해 대한민국 헌법의 기틀이 된 '민주주의 정신'을 탄생시킨 것도 이승만의 공이다. '4.19정신은 전두환 정권에서 한번 삭제되는 수모를 겪긴 했지만 1987년에 새롭게 탄생해 37년을 이어온 우리 헌법 전문에 수록됐다.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장은 이렇게 한국의 '건국 정신'이 된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건설하는데 피로서 국민을 각성시킨 '건국 대통령'이라 불려도 된다.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 기념관 추진을 공식화했다. 부디 이 모든 공을 그대로 기록해 후대에 남겨야 할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멘토'로 모시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승만 기념관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 공과 과를 모두 담아내 역사 교훈의 장, 국민 모두의 통합의 장으로 건립하라"고 촉구한 것에 동의하는 바다. 서대문 형무소를 우리가 유산으로 남기는 이유들이 있잖은가.
민주주의 축제인 4월 총선이 7주도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건국전쟁>을 관람한 소감을 올라면서 "이번 4월 국회의원 선거야 말로 '건국 전쟁'이다. 대한민국의 체제 정통성과 헌법정신을 지키는 건곤일척의 승부처다. 4월 총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그래서 국민의힘이 져서는 안될 선거다"라고 주장했다.
유일하게 '혁명'으로 무너진 독재정권은 64년동안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 박정희조차 찬양했던 4.19정신은 오랜 기간 한국 역사의 합의된 성역이었다. 4.19의 주역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기억이 힘을 잃어가자 국민의힘은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변방에서 떠돌던 이승만이란 이름을 총선을 앞두고 심해에서 길어 올리고 있다.
'영구 집권'을 꿈꾸며 선거제도를 유린하고 자국민을 학살한 70년 전 독재자를 갑자기 '민주주의 꽃' 총선 목전에 등판시켜 '건국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그 기이함에 대한 평가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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