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IDF)이 15일(이하 현지시각) 칸유니스에 위치한 가자지구 남부 최대 병원 나세르 병원에 진입했다. 병원 진입 구실로 인질 관련 증거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테러 기반 시설 존재를 들었지만 아직 결과를 내놓지 못한 상태다.
세계 각국의 우려에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 라파 지상군 진입 계획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이집트가 국경 인근에 가자지구 난민 수용을 위한 구역을 마련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134명 인질에 관한 정보나 증거가 있을 것으로 보고 나세르 병원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하가리 대변인은 "이는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우리는 이유 없이 병원에 진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세르 병원엔 대략 400명의 환자와 수천 명의 피난민이 있다"며 "이것이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테러리스트가 이곳에 숨기로 선택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병원에서 주로 민간인인 1200명 이상을 살해한 하마스의 10월 7일 이스라엘 습격에 가담한 3명을 포함해 테러에 연루된 수십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또 병원 부지 내에서 수류탄과 박격포탄 등 무기를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인질 및 하마스 테러 기반 시설에 대한 몇 시간에 걸친 수색에서 아직 발견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이스라엘군이 병원 기능을 방해할 의도가 없으며 의료진과 환자는 대피 의무가 없고 피난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대피 통로까지 마련했다고 주장했지만 병원 내부 증언과 영상에 따르면 병원 공격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등 상당한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에 따르면 이날 새벽 2시께 병원에 가해진 로켓 공격으로 환자 한명이 침상에서 사망하고 여섯 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이 병원 의사 이슬람 사왈리는 신문에 로켓이 정형외과 병동에 떨어진 뒤 새벽 3시께 도보로 병원에서 탈출했으며 로켓 탓에 의사 한 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다만 가자 보건 당국자들은 해당 의사가 부상을 입었다고만 했다.
영국 BBC 방송이 검증해 보도한 나세르 병원 내부 영상에 따르면 병원 복도에 먼지와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의료진이 환자를 실은 들것을 밀며 뛰고 있다. 부상당한 환자가 복도에 쓰러져 있고 침상은 잔해로 가득하며 끊임없이 비명과 총소리가 들린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의 한 의사는 <뉴욕타임스>에 이스라엘군이 의료진에게 모든 환자를 병원 내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병원에 의료진 및 직원이 40명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대피령 이전엔 병원에 300명 가량의 의료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 소아중환자실 의사인 타냐 하즈 하산은 신문에 이스라엘의 대피령으로 최근 며칠 간 급하게 대피가 진행되면서 병원에 남은 환자는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한 가장 상태가 나쁜 환자들이었고 밖으로 나가려다 포격을 받고 되돌아온 피난민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병원에 있던 8000명 가량의 피난민 중 상당수가 대피령 뒤 급히 부지를 빠져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이스라엘군이 이들 중 많은 수가 향할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진격하겠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어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쪽부터 계속 밀고 내려오며 라파에 가자지구 인구의 3분의 2인 150만 명이 난민이 돼 몰려 있는 상황이다.
미국, 영국, 독일을 포함해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지국들조차 라파 지상 공격에 우려를 표한 가운데 15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총리도 공동성명을 내 "라파에 대한 군사 작전은 재앙이 될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스라엘은 친구들과 국제사회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이 긴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5일 한국 외교부도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가자지구 라파에 대한 최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및 추가 계획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 관련 모든 당사자가 국제법에 따라 민간인을 보호하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라파는 현재 가자지구 인도주의적 지원의 중심지로 이스라엘군이 라파를 침공할 경우 이 흐름이 끊길 수 있다. 가자지구 구호를 주도하고 있는 톰 화이트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가자지구 담당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전면 침공이 발생하면 모든 인도주의적 대응팀은 라파를 떠나야 할 것"이라며 "구호 활동이 실행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인용한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의하면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10월 7일부터 이달 15일까지 가자지구에서 최소 2만 866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6만 8395명이 다쳤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이 라파 공격을 고집함으로써 이집트와 미국 등 가장 중요한 동맹과의 관계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당국자들은 이스라엘이 라파 공격으로 난민이 이집트로 넘어올 경우 1979년 양국 간 맺은 평화협정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난민 대피에 대한 신뢰할 만한 계획 없이 "라파에 대한 군사 작전이 진행돼선 안 된다"고 지난 주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통화에서 못박은 상황이다.
한편 가자지구 난민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있는 이집트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가자지구와의 국경을 따라 토지를 정비하고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위성 사진이 보도됐다. 이스라엘군의 라파 공세로 가자지구 주민들이 국경을 넘더라도 이 구역을 벗어나 이집트로 밀려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15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집트 당국자들이 정부의 비상 계획에 대해 설명하며 이 구역으로 들어 온 팔레스타인인들은 다른 나라로 향하지 않는 한 떠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 구역의 규모는 20㎢ 수준으로 10만 명 이상의 난민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집트 당국자들과 보안 분석가들을 인용해 덧붙였다.
이집트 당국자들이 관련 보도 내용을 부인하거나 논평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한 전직 이집트 당국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이집트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이 국경을 넘는 시나리오를 공식적으론 부인하더라도 비상 계획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라파에 대한) 공격으로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국경을 넘으면 이집트군이 이들을 향해 발포할 것인가? 답은 '아니오'다"라며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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