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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은 자, 말하게 하라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경남 통영 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말하고 싶은 자, 말하게 하라

목 쉰 바람이 구름을 부르고

까마귀 울음 간간이 스쳐가는 회색빛 하늘 아래

봉분도, 묘비도 없는 허허로운 골짜기

"학살 유해매장 추정지

통영시 명정동 485-5 절골일대"

집단 학살터 알리는 표지판이 궂은비에 젖고 있다

명정우물 지나 북포루 가는 길

충무공 영정 모셔진 충렬사 인근에서

어찌 이토록 참혹한 일이 일어났을까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 치하에서

방공호 파는 일과 밥 해주는 일에 동원되었다고

시국강연회 갔다고 마구잡이로 끌려갔다

반민특위 활동했다고 빨갱이로 몰렸다

멸치창고에 갇혀

자백할 때까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돌에 묶인 채 한산도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매 맞아 죽은 이도 있었다

구덩이 위에 줄 세우고 총을 쏴 굴러 떨어지면

확인사살까지 했던 골짜기

명정동 절골

멸치포대 머리에 씌우고 부착한 후 조리돌림하던

'이적행위' 빨간 글씨

누가 이들을 낙인 찍었는가

자전거 뒤에 실려 끌려가다 사살된 노인은

누구의 소중한 아버지였을까

이념이 뭔지도 모를 교복치마 입은 아이는

어느 부모의 귀한 피붙이였을까

가족 잃은 사람들은 가슴 찢어질 듯

피 토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군사정권 하에서 탄압당하고

연좌제로 신음하던 유족들은

아직도 숨죽인 채 두려움에 떨며 나서지 못하고 있다

죽어야할 마땅한 이유도 모른 채

처참하게 학살된 것도 원통한데

70여년 지난 지금까지

죽은 자는 은폐되고

살아남은 자, 침묵할 수밖에 없다니

유해 발굴과 진상규명은

말조차 못 꺼내는 금기인가

▲ 통영시 명정동 절골 학살현장 ⓒ이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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