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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습당한 정치인들, '혐오'에 기댄 국회의원들의 자승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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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피습당한 정치인들, '혐오'에 기댄 국회의원들의 자승자박?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포퓰리즘과 제도 희화화, 그리고 증오의 정치

제1 야당 이재명 대표의 피습에 이어 여당 배현진 의원이 피습당했다. 불과 3주간 벌어진 일이다. 증오가 만연한 한국 정치 문화에서 예견된 테러라고도 한다. 그 원인으로는 양당정치와 포퓰리즘이 꼽힌다. 증오가 만연한 한국 정치의 대안으로 제3지대 정당을 주창하는 세력도 있고, 소수정당들은 국회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추어 다당제 국회를 요구하기도 한다. 각 세력의 입장에 따라 진단과 대안이 일견 합리적이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증오가 만연한 정치의 적대적 공생이 가능한 구조의 중심에 정치 혐오에 기댄 '정치제도의 희화화'가 있다.

기득권 양당, 그리고 제3지대론

기득권 양당이 적대적으로 공생하며 극한으로 대립하지만, 실상 정책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유럽과 달리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 노선이라는 큰 흐름에서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북한 의제와 같은 일부 이슈에서만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기득권 양당이 이처럼 큰 차이를 가지지 않고서도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권력이 창출되는 선거제도의 영향이 지대하다. 1등이 승자독식하는 단순다수소선거구제 중심으로 치러지는 한국의 총선은 양당제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정치학의 유명한 명제인 '뒤베르제의 법칙(Duverger's Law)'에 따르면, 소선거구제는 양당체제를 낳고, 비례대표제는 다당체제를 낳는다. 다당제를 요구하는 정치 세력이 비례성 높은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분투하는 이유다. 한국의 혼합형 비례대표제는 거대한 지역구 중심 의석의 영향을 상쇄시킬 수 없다. 비례대표 의석수 자체가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병립형으로 운용되어 기득권 양당의 초과의석으로 악용 되어왔다. 이와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로서, 매우 부족한 비례성 개선의 효과밖에 내지 못하는 수준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그조차 거부하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려는 것이다. 기득권 양당이 얼마나 정치제도를 우습게 여기고 있는지, 저열한 탐욕에 찌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제3지대 빅텐트론 또한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다루었던 것처럼 뒤베르제의 법칙을 통해 살펴보면, 승자독식 단순다수소선거구제 중심으로 치러지는 한국의 선거 환경에서 제3지대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득권 양당정치에 회의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인물 중심의 제3지대에 투표하고, 제3세력이 잠시 창출될 수는 있어도 결과적으로 기득권 양당에 흡수되고 만다. '안철수 현상' 등 한국 정치사를 조금만 복기하더라도 그 사례는 무수하다.

선진적 합의제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유럽 국가의 제3정당은 이념적 지향도 없이 오직 의석 창출을 위해 빅텐트를 치고 등장했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의석 창출을 해낼 뿐만 아니라, 중추정당(pivot party)으로서 진보·보수정당 간 가교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온건다당제 구조, 제3정당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선진적 합의제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제도 기반에 비례성 높은 비례대표제 중심 선거제도가 있음은 반박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양당 혐오를 자극하며 표를 요구하는 것 외에 정치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려는 노력은 제3지대 빅텐트론자들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프레시안

의석수 감소? 의원 임기 2년?

정치제도의 희화화는 정치 혐오에 기반한 포퓰리즘과 부합해서 나타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지난 16일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서 국회의원 수를 300명에서 250명으로 줄이는 법 개정을 제일 먼저 발의하고 통과시키겠다"며 국회 의원 정수 축소를 공식적으로 거론했다. 의원 정수 축소는 국회와 정치 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OECD 38개국의 의원들은 평균 1인당 인구 10.8만 명을 대의 한다. 반면, 한국의 국회의원 1인은 17.1만 명을 대의 한다. 한 명의 국회의원에게 대의권이 과하게 부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미 너무 적은 숫자의 국회의원이 다수의 국민을 대변하면서 권력 집중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의원 정수는 비례대표제의 성공적인 개혁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온전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한국식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의원 정수 확대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의원 정수 축소 발언은 국회의원이라는 직책 자체에 쌓여 있는 국민의 혐오를 이용하여, 기득권을 강화하는 비열한 방책인 셈이다.

정치 혐오에 기반한 포퓰리즘, 정치제도의 희화화는 놀랍게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28일 정의당 김준우 비대위원장은 "한국 정치사에 최초로 '비례대표 2년 순환제'를 도입할 것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비례대표 의석이 생기면, 총 4년의 국회의원 임기를 나눠 선임자가 2년의 의정활동 후 사퇴하고 후임자가 2년을 승계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숙련이 형성되기에 짧은 임기는 문제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압도적인 방안이 공식화된 것이다. 이어 "2년 순환제를 기반으로 노동, 녹색, 정치적 소수자와 다양한 진보 분야를 대표하는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정치의 중심에 세우겠다"고 주장했는데, 2년이면 수많은 진보 분야의 과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가능한지 되묻고 싶다.

"의원 개개인이 가진 특권을 축소할 대안"이라며 비례대표 2년 순환제를 추켜올렸지만, 놀라울 정도의 정치 혐오적 인식도 보여준다. 국회의원의 임기를 줄여서 특권을 축소하겠다는 주장 자체에 모순이 있다. 의원직을 포함, 정치인의 임기는 역설적으로 정치인이 본연의 소임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정도의 기한을 상정한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16년, 스웨덴 올로프 팔메 24년 집권 동안 그들이 특권과 기득권을 누렸다는 비판을 본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숙련과 정책지속성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제다. 독일 통일을 이끈 신동방정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외무장관을 역임한 자민당의 겐셔(Hans-Dietrich Genscher)가 있었다. 정치인이 소임을 다할 충분한 시간은 성숙하고 유능한 정치의 필수요소다.

국민에게 필요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국회의원의 권한이 필요한 것이지, 국회의원 자리만 보게 되면 국회의원직 자체를 기득권 혹은 특권으로 오독하기 쉽다. 필요한 권한을 적재적소에 쓰는지를 감시할 일이지, 국회의원직 자체를 기득권과 동치 하며 일할 권한을 갖는 것 자체를 터부하고, 의원 임기 축소가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일 뿐이다.

그리고 2년 순환제가 한국 정치사에서 최초로 시도된다며 새로움을 부각했지만, 2016년 총선 당시 한국 녹색당의 공약이었다. 국외 수행된 사례도 있다. 독일 녹색당에서는 1980년대 초 '의원임기 2년순환제'를 시행한 적 있다. 당시 독일 녹색당은 반정당의 정당(Anti-Parteien-Partei) 기치를 걸고, 기성정당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며 다양한 실험을 펼쳤다. 그 시도로 인해 고질적인 관료제적 습성을 타파하는 등 개혁 가치를 내건 소수정당이 작은 의석으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증명 해냈다. 하지만 '의원임기 2년순환제'는 독일 녹색당에서도 운영 과정의 비효율성이 문제가 되어 1986년 5월 하노버 당대회에서 전격 폐지되었다.

정의당 김준우 대표는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상당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데 편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서 실익을 염두에 두고, 독일에서 폐지된 의원임기 2년 순환제를 대안으로 포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정치 혐오에 기반해 선동한 포퓰리즘과 다를 바 없다.

증오의 정치, 원칙을 되짚는다

온건다당제에 기반한 합의제민주주의나 정책지속성, 이를 이룩하기 위한 제도 환경 등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철학적 고민 없는 주장이 만연하다. 보수와 진보 구분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충분한 검증이 없이 정치 혐오를 자극하며 새로움만을 부각하거나 상대 세력의 반대가 곧 대안으로 명명되는 한국적인 증오의 정치를 데칼코마니처럼 답습한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는 나치의 선전부장 괴벨스의 말이 자주 떠오르는 2024년 총선 정국이다. 증오의 정치가 테러로 가시화되는 사회다. 정치가 문제 해결 도구가 아니라, 폭력과 테러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비참한 심정으로 원칙을 되짚는다. 정치행위자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채, 이리저리 휘둘리며 희화화되고 있는 정치제도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모든 정치세력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보충 설명

- 단순다수소선거구제 : 소선거구는 1인을 선출한다. 단순다수소선거구제는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를 한 1등 후보를 뽑는 선거다.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정치문화를 양산한다. 사표 심리로 인해 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거대 정당에 후보와 유권자가 몰리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배제된다. 정치 다양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를 유발한다.

- 다수대표제(Plurality System) : 단순다수대표제와 절대다수대표제로 분류할 수 있다. 단순다수대표제(plurality rule system, first past the post-FPTP)는 한 번의 개표로 대표를 뽑는다는 효율성이 장점으로서 부각된다. 하지만 과대·과소대표 등 불비례성과 더글러스 래(Rae, Douglas W.)가 지적한 '제조된 다수(manufactured majorities)'의 문제를 유발한다. 30% 득표해도 상대적으로 최다 득표면, 70%의 반대가 있더라도 선출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 다수를 이루는 방식을 절대다수대표제라고 한다. 대표적 방법으로 결선투표제(Two round system, runoff voting system, second ballot system)가 있다. 1차 투표에서 전체 지지율 분포를 확인하고, 2차 투표에서 1~2등 후보를 두고 투표하여 과반수 득표한 후보를 선출한다.

- 비례대표제(Proportional System) :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다수대표제와 달리 승자독식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득표율만큼 의석을 얻을 수 있어, 정당의 이념 지향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공론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고, 정치 다양성이 보장된다. 비례대표제 내에서도 제도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분류가 가능하다. 스웨덴, 네덜란드와 같이 모든 의석을 비례대표제만을 이용하여 배분하는 완전 비례대표제가 보편적인 방식이다. 다수대표제와 혼합하여 의석을 구성하는 혼합형 비례대표제(Mixed-Member Proportional System: MMP)도 있다. 독일 뉴질랜드에서 사용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한국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혼합형 비례대표제다. 혼합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제도의 효과를 평가하는 데 '비례성'이 주요 척도가 된다. 한국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애초에 매우 적은 비례의석수 모수에 정당 득표율의 절반만 반영하므로 비례성 개선 효과가 미미해서 비례대표제의 정치개혁 효과를 살리지 못했다. 따라서 여전히 정치개혁 주요 목표가 '비례성 높은 비례대표제' 도입이 되는 것이다.

- 중추정당(pivot party) : 제1당이 아니더라도 중추정당의 결정에 따라 연정 파트너가 바뀔수 있다. 관직을 갖는 것보다 정책을 관철시키고 수행하는 데 중요한 지향점을 두면서 연정을 주도한다. 중도정당은 중추정당의 개념을 일부 포함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중추정당은 양당을 대체하는 행위자이기보다 규모가 작아도 정책 결정 과정에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행사하며 갖춘 협상력으로 대립하는 양당 간 레버리지 역할을 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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