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헌법에 남한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명시하고 전쟁도 피하지 않겠다며 연일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 제2의 한국전쟁과 같은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최근 국제정세가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자신감이 발현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15일 (사)한반도평화포럼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실이 공동으로 주최한 한반도평화포럼 신년토론회 '2024, 희망에 대하여'에 토론자로 참석한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은 전면전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며 "우발적 충돌 가능성, 의도치 않은 부문에서 확전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핵을 직접 사용하기 보다 위협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 전 원장은 "북한은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있을 때 대화에 나온다. 적당한 위기는 수령체제를 유지하기에 좋다"며 "지금은 핵 보유국의 자신감을 갖고 핵보유국 지위에 맞게 남북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임원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시 "북한이 자신들의 공격에 대해 남한도, 미국도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위험한 상황인데, 지금은 한미가 북한의 공격에 보복을 안할 이유가 별로 없다"며 북한도 이를 알기 때문에 쉽게 행동으로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임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말부터 자신의 딸인 김주애(이름 추정)와 공개 행보를 벌이고 있고, 이에 따라 후계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북한이 '자살 행위'를 벌일지에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남한에 대해 적대적인 언행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고 전 원장은 "북한은 신냉전 구도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있다. 특히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가 되어주는 상황"이라며 "지금 정세가 이전에 북한이 펴왔던 전술과 다른 전략 전술을 가져갈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 국립외교원장인 김준형 외교광장 이사장은 "지금 대외 환경이 북한에 단기적으로 유리하다. 최근 20년 동안 북한에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미중 전략 경쟁 속 세계가 다극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자신감을 가졌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의 의도에 대해 △핵 미사일 개발 등 5대 국방 사업 관철을 위한 명분 확보 △국제 정세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연대가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 △대립 구도 형성이 주민 통제에 더 용이하다는 인식 △미국 대선, 한국 총선 등을 감안해 존재감 과시 및 주도권 확보 등 다각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실제 전면전을 일으키기에 준비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양 총장은 "현 단계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으나 2014년 이후 전차, 장갑차 등 공격 무기가 상당히 노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력 통일의 현실화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북한이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점도 실제 전면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쟁을 피하지는 않겠지만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고 전 원장은 "전원회의 내용이나 북한에서 나온 내용을 보면 미국과 남쪽이 어떻게 하면 핵 사용이나 영토 평정을 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논리 자체가 조건부"라며 "그런데 우리 국정원은 연초부터 김정은이 무력도발을 지시했다면서 곧 무력 충돌이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한반도 내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전면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근거로 제시됐다. 김준형 이사장은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불안해한다. (우크라이나, 중동에 이어) 3개 전쟁은 (미국이 수행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다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네오콘과 리버럴 사이에서 좁은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일(결속) 및 인도-태평양을 (중국 견제에) 이용하기 위해서 (한반도의) 위기를 조장하면서도 전쟁까지 가는 것을 막겠다는 건데 이는 굉장히 위험하다"라며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한 평화 제어 장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북미 간 대화가 다시 이뤄지고 한반도 긴장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예상에 대해 김 이사장은 "북한의 뒤통수를 때린 장본인이 트럼프"라며 "미국이 2018년 북한에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보를 할 수 있어야 (북미 대화가 가능)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 북한이 미국과 일본에 손을 내민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며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이후 최소한 윤석열 정부 기간 중에는 핵 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다음에 (협상에서) 훨씬 더 유리해진 상황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의 이같은 행태에 정부가 상황 해결이 아닌, 강경한 대응만 하는 데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고유환 전 원장은 "어떻게 상황을 관리할지가 중요한데 남한 정부가 이를 고조시키려는 것 같다"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누구에게 유리한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비롯해 경제적 문제들과 관련해 봤을 때도 상황을 관리하는 것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 중 무엇이 유리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준형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는 지금 외교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이란 등을 적으로 보고 미국과 일본 등 소위 가치 동맹 국가들은 친구로 보는데, 대체적으로 가치 동맹 국가들에게 호구가 되고 있고 적에 대해서는 관리조차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외교 정책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양무진 총장은 북한의 최근 행태가 통일 독일 전 동독이 가지고 있던 기조와 유사하다며, 동독의 변화에도 꾸준히 특수관계를 강조했던 서독처럼 남한도 그동안 남북관계를 통해 가져왔던 특수관계라는 규정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주문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은 동서독 기본조약에도 불구하고 서독 정부가 통일 주도권을 계속 보유하려 하자 민족 개념까지 분리한 2민족 2국가 체제를 주장했다. 이후 1976년 당 대회에서 당 강령 중 통일 관련 조문을 삭제하고 독일에는 서로 다른 2개의 민족 국가가 존재함을 명시했다"고 소개했다.
양 총장은 "동독이 2개 국가 체제를 유지하였음에도 서독은 이에 굴하지 않고 특수관계론에 입각한 민족 국가 통일 방안을 유지하고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동방 정책을 지속 추진했다"며 "우리는 남북 기본합의서, 국가 간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론을 지속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정책적 목표를 포기하지 말고 북한과 대화의 장애물들을 포괄적이고 동시적으로 제거해 나가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비핵화 협상과 함께 남북 간 평화 연대가 전개되어야 하고,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수교 협상도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진지하고 일관성 있게 전개될 때 남북 간 신뢰가 형성되고 항구적인 평화로 발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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