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남북이 포탄을 발사하고 서로를 향해 거친 말을 주고 받으며 한반도 안보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힘쓴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 받아 관용과 통합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일 김대중재단이 주관하고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 김대중재단의 공동주최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이번 기념식에는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명예추진위원장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공동추진위원장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문희상 기념식 준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공동추진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피습 사건으로 기념식에 함께하지 못했다.
정치권 인사로는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김종인 전 국민의힘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자리했다.
전직 대통령과 관계된 인사들도 기념식에 참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현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 씨 등이 모습을 보였다.
기념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관용과 통합을 강조했다. 문희상 준비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은 화해와 용서의 정신으로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지역과 세대를 넘어 하나로 만든 대통합 대통령이었다. 오늘을 계기로 우리 모두 다시 통합과 혁신의 길로 나아가자"라고 호소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역시 "편견과 차별을 관용과 용서로 녹여내야 한다. 그것이 김대중 사상"이라며 "증오와 적대감을 화해와 평화로 포용해야 하며 불신과 대립을 연대와 공존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김대중의 큰 정치"라고 말했다.
축사를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권의 통합'을 강조하며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보이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 생전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 위기, 남북관계 위기, 3대 위기를 통탄하며, 나는 이제 늙고 병들어 힘이 없으니 젊은 당신들이 야권통합으로 힘을 모으고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라고 신신당부했다"는 대화 내용을 전했다.
그는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부는 우리 후배들에게 남긴 김 대통령의 마지막 유언이자 제가 정치에 뛰어들게 된 주요한 계기"라며 "그 유지에 따른 야권 대통합으로 민주통합당이 창당됐고 끝내 정권 교체를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해 최근 야권에서 벌어지는 분열 움직임을 경계했다.
문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적대 보복의 정치, 극도로 편협한 이념의 정치로 국민 통합도 더 멀어졌다"며 "정치가 다시 희망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마주한 위기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유언처럼 우리는 또다시 민주주의, 민생경제, 평화의 가치 아래 단합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강했다.
그는 "엄혹한 겨울을 이겨낼 힘도, 다시 역사를 전진시켜 낼 힘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국민들의 절박함과 간절함에 있다"며 "그 절박함과 간절함을 우리 정치가 받들어야 한다. 오늘 이 자리가 김대중 정신과 가치를 되살리고 실천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인사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제266대 교황은 김 전 대통령이 "오랜 고난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종교적 믿음과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 용기로 일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며 "기본적인 인권신장을 중시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 전부를 대의 민주주의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발전에 바쳤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엇보다 2000년 노벨상 수상은 화해와 연대, 평화를 증진하여 분단과 혐오를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연환경과 인류 사회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 그리고 위협이 증대되고 있는 오늘날,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은 더욱 중요하고 시의적절하다"며 "이번 김대중 탄생 100주년이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공동체의 터전을 가꾸고 각자의 존엄성이 존중받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롭고 조화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역시 축사를 통해 "김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했고,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경제적 위기에서 구하고, 국가 안보를 강화하며, 한반도의 남북 화해를 크게 진전시켰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김 대통령을 처음 만났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긴밀히 협력하여 우리 두 나라 사이의 깊은 우의을 돈독히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며 "전 세계 사람들 모두 김대중 대통령이 평생 추구했던 이상, 협력이 갈등보다 낫고 모든 사람들이 존엄하게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모두 그 분을 닮기 위해 노력하길 권유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1973년 8월 8일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부터 25년이 지난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국회 연설을 당시 민주당 중의원 의원으로서 들었다. 그 때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며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한일 간 교류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김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유키오 전 총리는 최근 미중 간 갈등 상황을 언급하며 "만약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계시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저희에게 어떤 지침을 주시고 어떻게 행동하실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며 "적어도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한중일 정상과의 합의를 얻어내고 미국과도 정정당당하게 협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중 갈등이 이대로 동아시아로 흘러들어와 일중·한중 관계가 분단되는 경우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은 요원해진다"며 "한일 협력을 확고히 하여 미중 긴장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우리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김대중 재단은 이외에도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교 명예교수, 브루스커밍스 시카고대학교 석좌교수, 베르너 페리히 베를린 자유대학교 명예교수, 에드워드 베이커 전 하버드 옌칭연구소 부소장, 킴 아리스 아웅산수지 미얀마 전 국가고문 아들, 베리트 레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과 빌리 브란트 재단, 넬슨만델라 재단, 고르바초프 재단 등도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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