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착수 33년, 아직도 진행형인 새만금사업은 2023년 한해 큰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를 계기로 '새만금'을 세계에 알리고 사업 진행 속도를 붙이려 던 꿈은 산산이 깨졌다.
새만금에서 진행됐던 '잼버리대회'는 오히려 새만금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으며 그로 인해 내년 새만금 국가예산이 사상 유례없이 대폭 삭감됐고 전라북도는 국가예산 11조 원을 빼 먹은 대도(大盜)로 몰리는 등 전북도민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악재가 됐다.
국회 앞에서 전북도민총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4개월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예산이 일부 복원되기는 했지만 새만금에 대한 전북도의 관점과 애정,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한 마디로 새만금을 '전라북도의 미래'로 여기면서 지난 30여 년을 매달려왔지만 전북도민의 삶은 새만금으로 인해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새만금에 몰두하면서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때라는 것이다.
'새만금'으로인해 우여곡절, 다사다난한 2023년을 보낸 전북은 이 시점에 '왜 새만금에 대한 사고의 대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짚어 본다.
7월 20일 새만금 이차전지 특화단지 선정
산업통상자원부가 새만금을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선정, 발표할 때 만해도 전북 도민들은 새만금에 기대한 장밋빛 꿈이 드디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다.
전북지역 각 사회단체들은 잇따라 환영 입장을 발표했는데 이들 단체가 낸 입장문을 들여다보면 새만금에 대한 전북도민의 각별한 정서를 살펴 볼 수 있다.
먼저 전북애향운동본부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우려를 떨쳐 내고 성과를 일군 행정,정치권의 노력과 응집력을 보여준 도민과 기업인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새만금범도민지원위원회는 "대한민국에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인 새만금에 낭보가 날아 들었다"면서 "새만금이 전북발전의 중심축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북 새마을회는 "이차전지특화단지가 전북의 100년 먹거리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지속적 지원과 안정적 산업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8월2일 윤 대통령 '새만금은 이차전지 기업의 최적의 플랫폼'
이 날은 전북도민이라면 기억조차 하기 싫은 날이 됐다. 바로 '새만금잼버리' 개영식이 개최된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 중인데도 불구하고 잼버리 개영식 장소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이차전지 투자협약식'에 참석했다.
행사는 LS그룹이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약 1조 8400억 원 규모의 이차전지 핵심소재 제조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전북도, 새만금개발청 등과 투자 협약을 체결하는 자리였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새만금은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방문해 ‘전북.서해안.대한민국의 미래’라고 하며 속도감있는 사업추진을 강조한 곳"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협약식에서 "제가 전북도를 찾을 때마다 이곳 새만금에 국내외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씀드려왔다"면서 그동안 정부의 전북도에 대한 지원 성과를 밝혔고 또 "내년이면 180만 전북도민들의 숙원인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면서 "전북도와 호남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저녁 잼버리 개영식에 참석해 "어린 시절의 스카우트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세계 각국에서 온 4만5000여 대원들을 격려했다.
8월29일 새만금 SOC예산 78%, 5100억 삭감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이 8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새만금 SOC 사업 예산 반영률(기재부 단계)이 부처 요구액이 78%가 삭감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예산 편성 역사상 유례가 없는 충격적인 일 이었다. 당장 전북에서는 새만금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전북에 덮어 씌운 '보복성 예산삭감'이라는 반발이 이어졌다.
9월8일 '빅 피쳐' 대 '빅 사기'충돌
9월 8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안호영 의원(전북 완주.무주.진안.장수)은 한덕수 총리에게 "예산 78%를 삭감한 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를 따져 물었고 한덕수 총리는 "올해 전체적으로 예산이 긴축적으로 작성됐다는 것은 의원님이 잘 알 것"이라면서 "5년에서 10년에 한번 정도는 ‘전국적인 프로젝트로서의 새만금 사업을 어떻게 가져갈지’ 검토를 한다"고 답변했다.
한 총리는 또 "이런 검토 계획은 잼버리와 상관없이 제대로 점검해서 국가 프로젝트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덧 붙였다.
안 의원은 "재량권의 일탈이자 권력 남용" "78% 삭감 본질은 잼버리파행의 책임을 전북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지역 차별이고 권력 남용이자 ‘빅사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고 한 총리는 "모든 계획은 창출되는 수요에 맞춰 적절하게 공급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재정이 긴박한 상황에서는 국민들도 이해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안 의원은 "잼버리 파행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직위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했지만 한 총리는 "감사원이 철저하게 감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에 앞서 8월 21일부터 사회복지감사국의 주관으로 전라북도,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감사 대상에 오른 기관들을 상대로 자료 수집에 돌입, 본격적인 감사에 들어갔다.
11월 7일 "새만금 예산 살려내라"…전북도민 5000여명 국회 앞 총궐기
전북도민들은 11월 7일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잼버리 책임 떠넘기기·새만금 예산 정상화를 위한 전북인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현장에서는 전북 국회의원들의 집단 삭발식도 거행됐다. 이에 앞서 전북도의회 의원들과 정치인들의 삭발과 단식투쟁은 계속 이어졌다.
이날 궐기대회는 정부가 2024년 새만금 신공항·항만·철도 등 주요 SOC 사업 예산을 부처 요구액인 6626억 원 대비 78%를 삭감한 1479억 원만 반영한데 대해 원상복구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12월 21일 새만금 예산 '증액'대 '복원', '희망의 새만금?'
국회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긴 가운데 여야는 21일 극적으로 '새만금예산 0.3조 원' 증액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이에 국민의힘 전북도당은 21일 성명을 통해 "전북 발전의 희망인 새만금 개발 예산이 3천억원 복원돼 환영한다"고 밝혔다.
도당은 "여야 협치로 새만금 국제공항 개항의 불씨도 살려냈고,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등 예산 복원을 통해 전북 발전의 시동을 켤 수 있게 됐다"라며 전북도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은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8월 새만금 잼버리대회 파행이후 정부·여당의 보복적 예산 삭감으로 좌초 위기에 빠졌던 새만금 SOC 사업이 국회 예산 심의 단계에서 3017억원이 증액되며, 앞으로도 새만금 사업은 정상 추진될 전망"이라며 "새만금 예산의 증액은 ▲윤석열 정부의 새만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 ▲약 60조 세수부족에 따른 지출구조조정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등 3대 악조건 속에서 민주당은 전북도민의 지지와 역량을 바탕으로 국회 예산 심의 단계에서 처절할 정도의 절박 협상 과정을 통해 좌초위기에 몰린 새만금을 희망의 새만금으로 만들어 냈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전라북도의회는 21일 새만금 SOC 예산이 부처 요구액 6626억 원의 68% 수준인 4513억 원이 확보된 것과 관련해 "결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도의회는 이날 밝힌 입장문에서 "여야 합의로 예산 3천억 원이 복원됐지만 최종 확보된 새만금 예산은 우리가 만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그동안 전북도민과 전북인들이 느꼈던 소외감과 좌절감, 새만금의 속도감 있는 개발을 염원하는 국민의 상처에 비하면 결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말했다.
전북 정치권 "정부여당 막판까지 새만금 예산 부정적"
이원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김제·부안)은 12월 27일 전북도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만금 예산 복원과정에 대통령실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또 "기획재정부가 1차로 제시한 증액 규모는 1000억 원 수준이었다"며 "이를 3000억 원으로 올리는 합의 과정에서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언급하는 등 여야 간 힘겨루기가 상당 기간 치열했음을 전했다.
한병도 의원(전북 익산을)도 국회의 새만금 예산 심의 단계에서 "여권이 극히 소극적 자세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27일 익산시청 출입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처음부터 정부여당은 새만금 예산은 아예 반영할 수 없다는 식의 극히 부정적이었다"며 "새만금국제공항 예산도 정부 스스로 증액 반영할 명분이 없는 것 아니냐며 못하겠다는 식으로 완고하게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수흥 의원(익산갑)도 같은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의 예산안 심사 방법은 아주 달랐다"며 "총액만 알려주고 사업별 구체적인 금액을 갖다 주지 않는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전략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새만금 예산 복원에 대한 정부여당의 저항이 워낙 세서 우리(민주당 의원)도 아주 세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새만금 예산 복원의 당위성을 아주 강하게 나갔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3000억 원"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문명'을 열어간다는 새만금에는 왜 부정적 시각이 많을까?
국책사업이면서 지역균형개발사업인 새만금 사업은 33년 째 진행 중이며 완공목표 연도도 27년 후인 오는 2050년이다. 개발 면적도 워낙 넓다 보니 4단계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기본 계획에 포함돼 있는 것과 상관없이 역대 정권 입맛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만금을 찾은 대통령들도 후보 시절을 포함해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쏟아내며 전북도민을 현혹하고 환심을 사는 곳이 '새만금'이다.
한덕수 총리의 말처럼 '새만금의 빅피쳐'를 다시 그린다고 해도 그 기본계획(MP)은 윤석열 정권 말기에나 나오게 된다.
완공 목표 연도인 2050년까지 기본계획은 과연 몇 번이나 더 바뀌게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계산상으로는 새만금에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지난 33년을 보내온 것처럼 또 27년을 더 기다려야 알 수 있게 된다.
SOC신봉 논리 벗어나 '부분,집중,완성' 필요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대표는 '부분,집중,완성'을 주장한다.
이 대표는 그 이유로 "개발 측면에서 보더라도 새만금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정권 교체 때마다 계획이 흔들리는 것은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하나의 도시 생태계나 산단 시스템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큰 계획과 환경 보전 전략은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으로 세우되, 도시개발이나 산단 조성 사업은 지역 발전에 지금 당장 기여하도록 토지이용 분야별(계획별)로 우선 순위를 정해 필요와 타당성이 높은 권역이나 부문에 집중적인 예산 투자로 자족 기능 등 공간 생태계를 빠른 기간 내 완성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2050년 완성'이야 말로 또 다른'희망고문'이라는 것.
따라서 이정현 대표는 “"그동안에도 수없이 강조해왔지만 땅 부터 보여주자는 매립 속도전, 일단 깔고 만들어야 수요가 생긴다는 SOC 신봉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빅 픽처'는 너무 커서 그리기도 어렵고 채우기는 더 어렵다"는 지적이다.
새만금호 '해수유통' 상황에 맞는 기본 계획 변경 필요
새만금 내부개발에 중요한 변수가 되는 새만금호 '담수화'는 이미 지난 2020년 새만금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담수화 계획은 사실상 포기된 상태이다.
농어촌공사는 올 초 기재부로부터 새만금 농생명용지(9430ha)등에 필요한 물 공급을 금강호에서 끌어와 사용하는 기본 구상안을 승인받았으며 4000억 원을 들여 관수로공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광활한 면적의 새만금호 수질개선 방안도 재검토가 필요한 상태이다.
더구나 지난 6월 매립공사가 완료되자 내년 분양을 밝혔던 새만금 스마트수변도시는 여러가지 사정을 이유로 분양이 연기됐다. 수변도시에 조성되는 3군데 호소의 담수화 목표도 재조정돼야 한다.
이처럼 새만금개발계획의 재검토는 여건의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볼 수도 있다.
새만금 계획 대 전환하는 계기로 이어져야
한승우 전주시의원(전북녹색연합 새만금살리기위원장)은 새만금수변도시와 관련해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것이 새만금호의 오염되고 더러운 물을 끌어다가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내부에 수로를 만들고 호소를 만든다고 해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었다"면서 "새만금호의 해수유통 상황에 맞는 기본 계획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특히 "수변도시는 사실 모래톱(모래바닥 깊이가 30~40m)에 이르는 위에다가 이렇게 테두리를 일종의 방파제를 쌓아서 매립을 해 놓은 상태라서 안정성 확보에 문제가 있고 바로 접해 있는 새만금방조제 건너편에는 신항만이 조성될 계획이어서 '정주여건'으로는 수변도시가 '쾌적한 상황이 아니"라면서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또 "어쨌든 윤석열 정부에서 새만금 기본 계획을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라고 하는 결정에 대해서는 환영을 하는데 현재 상황에 맞게 대전환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많다"면서도 "이번 기회에 새만금에 대한 계획이 대전환하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북도가 지난 수십년 새만금에 몰두하면서 도민의 삶이나 지역경제가 나아진 게 있나?"고 반문하며 "새만금에 몰두하는 것이 이게 정말 진정한 전북도의 발전인가?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진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늦기 전에 새만금 패러다임 전환 필요해
'새만금 문제있다'는 입장을 지난 수년동안 밝혀온 (사)군산항발전시민협의회 이성구 회장은 "새만금사업이 이미 10여 년 전에 매립사업으로 전환됐지만 전환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유수지의 검토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전북도민들에게는 새만금사업은 거의 신앙수준으로 이에 대한 비판은 매우 조심스럽고 금기시되는 분위기마저 있으나 새만금의 현실은 도민의 바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새만금 사업이 지난 수십년 동안 진행돼 왔는데도 불구하고 사업목적이 수시로 변경되고 아직도 목적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1년 3월 전북 군산을 방문했을 때 남긴 "지금 전북도민이 전부 바란다고 해서 이것이 후일 우리 전부가 바라는 결과가 된다고 보장 할 수 없다. 전북도민이 모두 바란다고 해도 국민에게 해가 된다면 재고하는 것이 옳다"고 한 말을 빗대 "모두가 공멸할 수 있는 허상을 과감히 깨고 공생의 지혜를 모을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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