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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시인 6411]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작은책과 노회찬재단이 기획한 '시인의 시선으로 6411 투명인간을 바라보다'는 노동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시인들이 <한겨레>에 연재 중인 ‘6411의 목소리’ 한 편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2023년 9월부터 11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세 차례 진행됐다. 편집자

'시인의 시선으로 6411 투명인간을 바라보다' 세 번째 시간은 이경수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문단의 아이돌’이라 소개되는 박준 시인과 함께했다. 시인이 골라 온 '6411 투명인간의 목소리'는 공주에서 책방 '길담서원'을 운영하는 이재성 님의 글이었다.

이경수 : 이 자리를 계기로 고단한 현실에 마음이 편치 않은 시절 애써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 세상이 덜 나쁜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디면 좋겠습니다.

박준 : 저는 10년 넘게 출판사에서 일했습니다. 만 원짜리 책 한 권 팔리면 작가는 얼마를 벌까요?

이렇게 말을 꺼낸 시인은 출판사가 정가 1만 원인 책을 내면서 저자에게 대개 10퍼센트인 1000원 인세를 주고 대형 인터넷서점에는 5500원쯤에 납품을 하는데, 인건비·제작비 1500원, 물류유통비 2000원을 지불하면 남는 게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인터넷서점, 대형서점도 도서정가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 판매하는데 5500원에 들여와 500원가량 들여 굿즈 등을 제공하고 택배비 2000원가량을 쓰는데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생각하면 이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을 설명했다. 반면 동네책방은 같은 책을 7500원에 들여오기 때문에 상황이 더 어렵다. 그나마 도서정가제가 작은 책방들의 존립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성 님의 글에서는 '책이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으로 물러나고 독서 모임과 강독 모임, 강연, 전시회, 음악회, 답사 등으로 겨우 유지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는데 내년에는 독서진흥법에 명기된 특강 지원 사업 예산이 모두 삭감돼 이마저도 배부른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기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게 어마어마한데 아무도 돈 버는 사람이 없다는 출판과 서점들에 대한 걱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준 시인은 자신의 시 한 편을 낭독하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김성희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일산병원 장례식장에 정차합니까 하고 물으며 버스에 탄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가 운전석으로 가서는 서울로 나가는 막차가 언제 있습니까 묻는다 자리로 돌아와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내일 첫 차는 언제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박준 : '일요일 일요일 밤에', '무한도전'만큼이나 유명했던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이 짧은 순간 왜 두 번이나 가서 기사한테 물어볼까?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니까 늦은 밤에 문상 가는 게 선뜻 내키지 않지만 얼굴은 비추고 와야지 생각했다가 생각이 바뀌어 조금 더 오래, 새벽까지 자리를 지켜 주고 올까? 이건 좋은 생각이잖아요. 좋은 생각은 내가 나에게 싫지 않을 때 합니다. 신나고 행복할 때도 하겠지만 삶이 평온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럼 언제 떠올리지 않느냐. 스스로 내 삶을 못 견뎌 할 때. 사무실 동료한테 '팀원들이 너 좋아서 그러는 거 같냐?' 뭐 이런 심한 속말을 해 상처 주고 이미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김장을 또 100포기 하신다는 어머니 전화가 걸려 와 '김치는 사 먹자, 결국 그걸 누가 먹어?'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가장 날렵하고 날카로운 상처를 주는 존재들입니다. 마음이 거지 같죠. 이런 상태로 집에 와서 ‘나는 서정 시인이니까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이게 안 되잖아요. 적어도 내가 싫지 않을 때 안녕이 이어질 때. 좋은 생각 좋은 시를 씁니다.

이경수 : 박준 시인의 시에는 마음의 갈피가 느껴지는 시가 많았습니다. 어떤 산문에서,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고 한 말이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함께 울어 주는 힘이야말로 박준 시인 서정성의 핵심이 아닐까. 처음 시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준 : 제일 못하는 게 말이었습니다. 어렸을 '왜 사람이 말하는데 대답을 안 해?', '사람이 말을 하면 얼굴을 쳐다봐야지!', '목소리 좀 크게 내' 이런 말 많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가족이 외식을 하러 서오릉 근처 마당 넓은 식당에 갔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주방에 가서 가위를 가져오라 하셨는데 제가 10분이 지나도 안 와서 찾아 나섰더니 주방 앞 테이블 밑에 웅크리고 있더래요. 바보처럼 왜 그러고 있냐고 어머니가 화를 내셨죠.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 바빠 보여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대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말하면서도 말할 순간을 찾고 있었던 거예요. 말에 비해 글은 낱말을 오래 만지작거리다 마음에 안 들면 안 써도 돼요. 고등학교 때 일기를 쓰다가 마음속으로 끼고 있는 걸 손끝으로 이야기하면 시원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경수 : 이렇게 말씀 잘하시는 박준 시인이 그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머뭇거림이 시인의 길로 이끈 게 아닐까. 첫 시집을 내고 ‘박준의 시대’ 이런 말이 자연스럽도록 어마어마한 주목을 받았어요. 첫 시집이 나온 2012년, 그다음 해 대학가에 민주주의 열풍이 뜨겁게 불었는데 시집을 낸 전후 심정이 궁금합니다.

박준 : 20살 때부터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낼 때마다 떨어지죠. 5년, 6년 떨어지다 보니까 울분이 쌓였습니다. ‘이거 짜고 치는 거 아닌가? 내가 제일 잘 쓰는데 왜?’ 한 5년쯤 지나 2007년쯤 드디어 자기 객관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 시의 장점이 보이고 비로소 내 시를 보는 객관의 눈이 생긴 거죠. 그때부터 조금씩 좋아져 2008년에 등단을 했어요. 등단하면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어요. 당연히 그런 건 없죠. 가끔 청탁을 받고 혼자만 보던 걸 문학 독자들이 보니까 큰 변화이긴 해도. 촛불 시위를 열심히 하던 2008년 여름, 처음으로 시민의 개념이 눈에 들어왔어요. 사실 우리 세대가 어떤 정치에 대한 관념이나 실제를 배운 세대가 아니거든요. 조직도 선배도 없었고. 시민은 어떻게 되지? 시인이 되었으니 시민도 돼 봐야겠다. 그래서 그냥 시민들이 있는 곳에 가자, 가 보자. 그때부터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경수: 첫 시집에 돌아가신 허수경 시인이 이 발문을 썼어요.

박준: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게 받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고 독일에서 공부하고 계실 때 발문을 써 달라 이메일을 보냈고 한국에 왔을 때 만났는데 '1년 동안 고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은 시집이 될 것 같으니 그때 시집을 내라'는 거예요. 출간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발문을 받자 싶어 풀이 죽어 그러겠다고 하고 1년을 미뤘어요. 솔직히 고친 것도 새로 추가한 시도 많지 않아요. 고치기도 싫었고 보기도 싫었거든요. 그런데 1년 동안 제가 달라졌습니다. 무협영화에서 사부님이 물 양동이를 주고 산 정상까지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오라고 하면 처음에 막 흘리다가 한 1년쯤 지나면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되죠. 그런데 1년 더 하라고 하면 그때부터 불만이 쌓이죠. 그런데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말라 가는 나무에 물도 부어 주고. 아마 이런 시기를 가지라는 말씀이셨던 것 같아요.

이경수 : 두 권의 시집에 '손', '편지' 두 시어가 계속 발견되는데 이 말들을 얼마나 인식하면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손'도 그렇고 '편지'도 그렇고, 뭔가 세상과 접촉하거나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인데.

박준 : 제가 손이 예쁘다는 얘기를 듣곤 했는데, 강원도 태백 폐광을 앞둔 탄광 광부 아저씨들을 만나니 ‘남자애가 손이 이래서 뭘 먹고 살래?’ 이러세요. 시를 소재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때였어요. 뭔가 낯선 경험을 하고 생경하고 아름다운 시를 쓰게 되지 않을 기대를 하고 간 곳. 기자는 아니지만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듯 시를 쓸 때였어요. 그런데 평생 덤프트럭 일을 하신 우리 아버지와 친구들과 똑같은 말을 들은 거죠. 시에 사실만 쓸 게 아니구나, 사실이 아니라도 진실 영역 안에 있으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사실이 아닌 이야기, 아버지가 광부고 진폐증으로 돌아가시고 형도 선탄공으로 나와요. 어느 날 태백의 한 독자가 우리 아버지도 진폐증으로 태백중앙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어느 탄광에 계셨냐고 편지를 보냈어요. 어떡해요? 답장을 썼죠. 다 사실이 아니다. 어부든 탄부든 삽이든 운전대든 손에 들린 연장만 다를 뿐 다 똑같고 같은 말을 하는구나. 이게 진실이구나. 그렇게 곳곳에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썼던 시들이 편지 형식으로 나왔습니다.

이경수 : 두 번째 시집 시인의 말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두 문장에 오래 눈길을 머물렀습니다. 가만 들여다보며 만져 보고 싶어질 만큼 말의 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박준 시인은 경험하고 살아온 시간,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눈 말과 마음에서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다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박준의 시에 슬픈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사월의 잠

밥 먹고 가. 도라지 무쳐놓은 것도 좀 있는데 금방 차려줄게. 도라지 먹고 트림 안 하면 인삼보다 좋다고 하더라. 아니 그건 겨울에 무였나. 하여간 내가 조금 전 깜빡 잠이 들었다가 꿈을 꿨는데 안개 자욱한 해변이야.

사람이 하나 쪼그려 앉아 있었어. 얼굴은 안 보이고 뒷모습만 보여. 몇 번 불러도 돌아보지를 않아. 그러면서도 머리도 긁고 종아리도 긁고 뭐가 있는지 몇 번씩 주머니도 뒤적이더라고. 참 나도 나지.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오기도 생겨서 몇 걸음 뒤에서 기다리고 섰어.

그런데 요즘 내가 눈도 침침하고 다리도 아프고 하거든. 그게 꿈에서도 그러데. 한참 서 있다가 나도 쪼그려 앉았지. 그러니까 또 새로 기다릴 만하더라고. 올해는 봄꽃도 늦는다는데 사람 하나 기다리는 일이 뭐 어렵나. 그러다 네 소리 듣고 깬 거야.

뭐? 바로 간다고? 밥 안 먹고?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 받아. 나중에 네가 갚으면 되지. 괜히 잃어버리지 말고 지금 주머니에 넣어. 그럼 가. 멀리 안 나간다. 가.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이경수 :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이 마지막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꽤 많은데요. 이렇게 몇 걸음 뒤에 기다리고 서 있는 것. 박준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점점 잊혀 가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이런 감각, 마음을 더 자주 그려 주면 좋겠습니다.

박준 : 시의 제목이 ‘4월의 잠’이고, 제가 쓴 세월호에 관한 유일한 시인데 정면으로 드러나게 쓰지는 않았죠. 비슷한 시기에 황현산 선생님은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아라' 쓰셨어요. 한 사람은 잘 가라 그러고 한 사람은 가지 말라고 하는데 결국 같은 마음 아닙니까? 우리가 이 다름을 인정할 수 있으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간단하지 않구나.' 6411의 정신도 그렇고, 우리가 알고 있으면….

참석자들과 다양한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그중 10여 년 전 박준 시인이 어느 자리에서 '시인은 행복한 4인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 말이 아직 유효한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당시 시인은 조금 더 특별한 존재, 뭔가 데카당스하고 더 우울한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져 일 똑바로 하고 시간 약속 잘 지키고 다른 사람한테 상처 안 주고 그래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 같다"라는 답이 이어졌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와 시인, 이어진 어떤 모드 전환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2년 전부터는 매일 출근하지는 않는 비정규 직원이 됐지만 상근할 때는 '자발적 야근'이 많았다. 너무 많은 활자를 본 날은 귀갓길 교통표지판의 글자도 읽기 싫은 정도였다. 사무실을 나설 때 모자를 쓰면서 '이제부터 시인'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매일 출근하는 일의 어려움, 거지 같음도 있지만 현실을 경험한 것과 판타지로 접근하는 것은 다르다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대사 중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대사를 소개했다. 또 달리 생각하면 시를 읽는 분들도 매일 출근하며 일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그만둔 이유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박준 시인은 대본도 직접 썼는데 어느 순간 세상이 '오프닝 멘트'로 보이고 시는 쓰지 못하게 됐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진행하던 '시작하는 밤' 프로그램 첫날 오프닝 멘트를 소개했다.

시작. 시작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마음속의 문이 하나 새로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시작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나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시간과 공간을 얼마쯤 비우고 내어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처음 취직을 하고 얻은 월세방이 무척 좁아 매트리스만 놓아도 문을 열 수 없어 매트리스를 세워 놓고 문 열고 나와야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 어떤 꿈을 위해서 이직을 하든 새로운 시작은 내게 가장 익숙한 것들, 전에 받던 대우나 연봉을 포기해야 하고 내 영역 중에 이만큼은 비워야 되지 않을까.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고 나가는 게 좋은 시작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대본을 썼습니다. 곧 새해니까 내 것을 내어주는 시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맺음말도 한 편의 시였다.

*박준 : 시인.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출간. 2013년 신동엽문학상, 2018년 젊은예술가상 등 수상.

*이경수 : 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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