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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대로 꾸민 방은 처음이에요"

[일하는 발달장애인] 푸르메소셜팜 김광채·이수연·이샛별 직원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을 목표로 설립된 일터 푸르메소셜팜. 3년 전 첨단온실을 먼저 완공하며 1기 직원을 선발한 후 현재는 54명의 직원이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이 생기자 자립을 희망하는 직원이 늘었고, 지금까지 6명의 직원이 평생 머물던 장애인시설이나 가정에서 독립하여 자기만의 삶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푸르메소셜팜과 여주시,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그리고 이들이 살던 장애인시설이 '자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한 덕분이지요. 한 걸음씩 꿈을 이뤄가고 있는 김광채(23)‧이수연(30)·이샛별(21)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소중히 모은 수집품들을 보여주는 광채 씨. ⓒ푸르메재단

살림 고수 광채 씨

장애인시설에서 거주하다가 2년 전 직장동료와 함께 집을 구해 자립한 광채 씨. 그의 방은 침대와 4단 서랍장이 유일한 가구입니다. 단출하지만 서랍 칸칸이 광채 씨의 취향이 담겼습니다. 광채 씨는 소중히 여기는 인형부터 월급을 받을 때마다 1~2개씩 모아온 팽이들, 스티커 색칠북을 차례로 꺼내 보여줍니다.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완벽한 정리상태입니다. 꺼낸 물건들을 각 잡아 다시 넣는 모습이 신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활동보조사가 "빨래 개는 솜씨는 내가 배워야 할 정도"라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마침 건조된 빨래도 있기에 시연을 부탁하자 광채 씨가 능숙한 솜씨로 빨래를 걷어 거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습니다. 옷의 종류대로 자세를 달리하며 섬세한 손놀림으로 반듯하게 개어 종류별로 쌓아놓는 솜씨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 광채 씨가 만든 음식들. ⓒ푸르메재단

온라인에서 레시피를 찾아 만든 요리라면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군침이 절로 넘어가는 생김새입니다. "효진 형(함께 사는 직장동료)이랑 장을 보러 가요. 돈은 반반씩 내요." 인터뷰하며 함께 집으로 이동하던 길에 나눈 대화 중 궁금증을 남겼던 대답이 이제야 온전히 이해됩니다.

Q: 자립해서 가장 좋은 점은 뭐예요?

광채: 빨래하고 청소하는 거요.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장 봐서 해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아요.

Q: 귀찮은 게 아니라요? 그런 게 왜 좋아요?

광채: 잘하니까요.

2년의 자립 생활 동안 광채 씨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자신감도 채웠습니다. 광채 씨 스스로도 놀랍고 행복한 변화입니다.

▲ 1년 전 자립한 수연 씨(왼쪽)와 샛별 씨(오른쪽). ⓒ푸르메재단

개성 뚜렷한 수연‧샛별 씨의 방

장애인시설에서 거주하던 수연‧샛별 씨도 1년 전 함께 자립했습니다. "내 취향대로 꾸민 방은 처음"이라는 두 사람의 방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진이 많은 수연 씨의 방에는 삶의 행복한 순간들이 녹아있습니다. 선반 위와 벽, 침대 협탁과 문 뒤에도 수연 씨의 지난 순간들이 엿보입니다. 사진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언제 누구와 찍었는지, 그때 감정이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수연 씨. 최근 사진은 푸르메소셜팜에서 찍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온실에서 토마토 곁순도 자르고, 수확도 하는데 모든 일이 다 재밌어요. 이건 SK하이닉스 직원과 저예요. 작년에 저희를 도우러 왔던 직원과 친구가 돼서 며칠 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 추억을 담은 사진으로 가득한 수연 씨의 방ⓒ푸르메재단

샛별 씨 방에는 붙박이장과 화장대 등 수납공간이 많습니다. 정리정돈이 잘 된 수납장을 거침없이 열며 설명하는 샛별 씨. 그 안은 분홍 계열의 옷과 소품들, 캐릭터 조명 등에서 샛별 씨의 아기자기한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지출영수증'이라는 제목이 붙은 노트 하나가 눈에 띕니다. "쇼핑 영수증을 날짜별로 모아놓은 거예요. 과자랑 라면, 예쁜 액세서리를 많이 사요."

▲ 소녀 감성을 담아 아기자기하게 꾸민 샛별 씨의 방. ⓒ푸르메재단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자립이란…

"요리를 잘할 수 있게 돼서 좋다"는 광채 씨, "가스레인지 작동 방법, 쇼핑 방법, 카레나 떡볶이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샛별 씨, "허락을 못 받아 포기했던 미용 기술을 배우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것"이라는 수연 씨의 바람까지….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자립이란 '내 것'을 하나씩 늘려가는 자유입니다. 내 물건, 내 취미, 내 지식, 내 실력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이죠.

현재 직원들이 사는 이곳은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체험홈입니다. 일상의 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면서 진정한 자립을 위한 훈련을 해보는 것입니다. 2년을 잘 보내고 나면 시에서 자립비용을 지원합니다. 그럼 이걸로 집을 얻어 1년을 보내면 자립해도 괜찮다고 인정을 받게 되고 그때부터 온전히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게 됩니다. 조정오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자립을 위해 취업이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유리한 점이 훨씬 많다.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고 사회성도 키우고 성취감도 가질 수 있어서다. 규칙적인 일상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일단 자립하면 시설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애인은 없다는 조 소장의 말에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Q: 시설로 다시 돌아가면 어떨 것 같아요?

샛별: 싫어요.

광채: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수연: 자립 준비하던 중, 취소될 뻔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무 충격이었어요.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모든 게 다 행복해요.

자유는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고, 무엇보다 앞서는 권리입니다. 장애가 있는 것이, 부모가 없는 것이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자립을 통해 자유를 얻은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뺄 것 없는 행복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푸르메재단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경제적 자립이 내 집, 내 취미, 내 실력… 자기 힘으로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늘려가는 기쁨을 줄 테니까요. 푸르메소셜팜 발달장애 직원들의 자유를 향한 여정은 이제 시작입니다.

*위 글은 비영리공익재단이자 장애인 지원 전문단체인 '푸르메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가기 : https://purm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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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

지난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2016년 서울 마포구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 장애어린이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다. 현재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이은 2기 사업으로, 학업과 재활치료를 잘 마치고도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일터 ‘푸르메소셜팜’을 완공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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