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불교를 폄하하거나 자승 스님의 죽음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힌다. 단순하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자의 입장에서 어휘 분석을 통해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니 종교적인 틀에서 논쟁하지 않기를 바란다.
얼마 전에 자승 전)총무원장께서 ‘소신공양’을 했다고 한다. 불교 내에서도 이에 대해 상당히 논란이 많다. 각종 SNS 동영상을 보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어 있다. 몇 가지만 들어 보자. ‘플라스틱 통 옮긴 자승……소신공양 가능성 높아’<서울신문>, ‘소신공양했다고? 조계종 정신 차려라’<오마이뉴스>, ‘자승 스님 소신공양 미화, 금도를 넘었다’<오마이뉴스>, ‘조계종 자승 스님 소신공양 … 선택에 의한 분신 판단’<한국경제> 등과 같이 다양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일단 조계종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소신공양’했다고 발표했다.
소신공양이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 앞에 바치는 일”을 말한다. 과거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내용이다. 베트남에서 ‘틱꽝득’이라는 스님이 불교의 탄압에 반발하여 ‘소신공양’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도로의 한 복판에서 정부의 불교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말은 ‘자살’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우리말은 완곡어법이 잘 발달했다. 그러므로 요즘은 ‘자살’이라는 표현보다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변소를 ‘화장실’이라고 하는 표현을 완곡어법이라고 한다.) ‘소신공양’에 대한 예문을 보자.
스님은 지난 1,000일 동안 면벽 수행 등으로 소신공양을 준비해 왔다.
소신공양으로 성불했다면 부처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아?
그 승려는 소신공양으로 성불했다.
와 같이 쓴다. 살펴 본 바와 같이 소신공양이라고 하면 부처에게 자신을 불살라 바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살과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물론 소신공양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자승 스님도 미리 유서를 써 두는 등의 준비를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신공양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일반적이지 않은 소신공양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므로 많은 승려들이 반발하고 나서는 것이다. 국가에서는 자승 스님에게 훈장을 추서하였다. 소신공양으로 인정한 것이다.
자살이라는 말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라고 나타나 있다. 반의어는 ‘타살’이다. 언어를 구분할 때 이해하기 어려우면 반의어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면 ‘안’과 ‘속’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 ‘안’의 반의어는 ‘밖’이고, ‘속’의 반의어는 ‘겉’이다. 그러므로 겉과 속, 안과 밖 등의 의미를 통해서 ‘안’과 ‘속’의 차이를 명확하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극단적 선택’의 반의어는 무엇일까? 참으로 난감하다. 이것은 완곡어법으로 표현하여 반의어를 찾기 어렵게 된 경우다. 그러므로 원래의 ‘자살’이라는 단어와 그 반의어인 ‘타살’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아무튼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것을 ‘소신공양’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언어학에서 풀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 스스로 풀어야 한다. 국가에서 훈장을 추서하고, 종교의 원로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불교를 위해 스스로 몸을 불태웠다면 소신공양이 맞다. 다만 많은 후진들이 아니라고 할 때는 권력의 이면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성어가 생각난다.
자승 스님의 입적을 두고 참으로 말이 많은데,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당사자만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 것이니, 지나치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떠난 이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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