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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제도 망가뜨린 거대 양당의 원투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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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저임금 제도 망가뜨린 거대 양당의 원투 펀치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희대의 꼼수, 산입범위의 저임금노동 습격

"양두구육이니 겁박이니 꼼수니 이런 표현들은 제가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게, 예를 들어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다음에 산입범위를 확대하고 여러 가지 이런 것들이 꼼수지요."

지난 10월 12일,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이수진 의원 질의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답변한 내용이다. 정말 오랜만에 이 정부 관료의 견해를 환영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최저임금 올려놓고 산입범위 확대한 거, 바로 저게 꼼수지!

여야 의견일치, 하지만 정책은 반대로

그런데 이상하다. 저 얘기를 듣자마자 뭔가 데자뷔(기시감) 같은 게 떠올랐다. 어디에선가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2017년 대비 2018년에 (최저임금) 22만 원을 올리고 지금 우리가 20만 원을 깎자라고 하는 것이지요. … 그런데 정말 저는 22만 원을 올리고 우리가 20만 원을 깎는 게, 이것은 좀 아닌 것 아닌가요?"

찾았다! 2018년 5월 24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를 논의하던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발언한 내용이다. <인사이드경제>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국회 공식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는 문헌 자료이다. 한정애 의원 발언 내용을 보면 산입범위 확대는 22만 원 올려주고 20만 원 깎은 '꼼수'가 확실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2018년에 집권 여당 소속 환노위 간사였던 한정애 의원, 그리고 2023년 집권 여당이 임명한 이정식 장관, 두 사람 모두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은 '꼼수'라는 점에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 꼼수 법 조항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일까? 두 당이 공조하면 국회 90% 이상이니 지금 당장이라도 꼼수 조항을 폐지할 수 있는데!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10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립 서비스 양당 정치에 최저임금만 희생양

그렇다. 또 속은 거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자고 먼저 들고 나온 쪽이 바로 한정애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이었다. 그들은 '정기상여금'을 산입범위에 넣자고 제안했는데 국민의힘 측에서 식비·교통비를 비롯한 수당까지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거다.

즉, 한정애 의원의 발언 요지는 정기상여금만 포함시켜서 10만 원만 깎자고 한 건데 수당까지 하면 20만 원을 깎자는 거니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취지다. 하지만 저 발언이 있은지 몇 시간 뒤인 새벽 시간, 한정애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은 국민의힘 측 제안을 모두 수용해 정기상여금과 수당 모두를 포함시키는 '희대의 꼼수'가 양당 합의로 통과되고 말았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느니, 저임금노동을 보호해야 한다느니 하는 보수 양당의 '립 서비스'는 진짜 신물이 날 정도이다. "10만 원만 깎아야지 20만 원만 깎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민주당)", "애초에 10만 원 깎자고 한 니들이 원조 꼼수 아니냐(국민의힘)" 이들이 정권을 교차로 잡는 사이 저임금 노동자들과 최저임금 제도만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통계와 데이터로 직접 검증해 보자

하지만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곤란하다. 반드시 데이터와 통계로 입증되어야 한다. 산입범위가 최저임금 인상을 '줬다 뺏는' 꼼수라는 수준이 아니라, 그 꼼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노동자 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지난 글에서 소개한 임금분포곡선을 다시 들여다보도록 하자. 고용노동부가 매년 6월 기준으로 발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서 수집한 통계자료를 활용해 그렸던 그래프(아래 그림), 독자 여러분들도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관련기사 : 한국 노동자의 임금분포는 '최저임금'에 갇혀버렸다)

▲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통계자료로 그린 2017~2022년 임금분포곡선 그래프.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지난 글에서 보여드린 그래프 중 특이점을 보여주는 두 부분을 표시해 보았다. 그래프의 오른쪽, 즉 상대적 고임금층으로 가면 임금분포는 매우 고르게 나타난다. 연도가 지날수록 최근 년도의 그래프가 전년 그래프의 바로 위쪽을 지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임금이 오르면서 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하는 것인데. 시각적으로는 위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런데 왼쪽 부분, 정확히 말하면 최저임금의 120%를 전후한 구간은 연도별 곡선이 겹치고 중첩되면서 굉장히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저 구간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해당 부분만 'Zoom-In(확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임금분포곡선에 드러난 산입범위의 습격

그래프에 동그랗게 표현한 두 부분만 따로 오려서 아래와 같이 확대시켜 보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래프의 오른편에서는 특이점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연도별 곡선 사이에 차이도 꽤 고르게 나타나는 편이다.

▲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통계자료로 그린 2017~2022년 임금분포곡선 그래프 중 최저임금 120% 전후 구간(왼쪽)과 다른 구간 변동 비교.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이제 왼쪽의 원에 오려놓은 부분을 살펴보자. 최저임금에 근접한 좀 더 왼쪽 부문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그래프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곡선이 겹치는 것은 특이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오려놓은 부분 중 가운데 구간은 분명히 다르다.

우선 2017~2020년까지는 그래프의 오른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연도가 지날수록 곡선이 위로 올라가는 고른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2021년 곡선부터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고르게 영향을 미쳤다면 2021년의 엷은 파란 곡선은 2020년 노란 곡선의 위쪽에 위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란 곡선 밑으로 떨어졌다.

더 황당한 건 2022년 녹색 곡선이다. 2021년의 엷은 파란 곡선보다 밑으로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2020년 노란 곡선, 아니 심지어 2019년 회색 곡선보다도 아래로 떨어졌다. 도대체 최저임금 120% 구간 전후의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산입범위 확대 개악으로 임금동결 제자리걸음

범인은 산입범위 확대 개악이다.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모두 최저임금에 포함되면서, 우선 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본급이 최저임금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기본급 부분을 상여금과 수당이 채워줌으로써 법 위반을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급과 수당을 다 합해도 최저임금에 딱 걸린 노동자들의 경우 최저임금이 오르면 임금이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기본급과 수당을 합할 경우 최저임금의 120% 정도 된다면, 임금을 올리지 않아도 법 위반이 아니게 된다. 산입범위 개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이 바로 이 구간이며, 지난 몇 년간 임금이 동결되면서 임금분포곡선에 왜곡을 야기한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가져와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래 임금 테이블은 공기업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이자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어 기재부·국토부 통제를 받는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의 연도별·직급별 기본급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에서 받은 데이터이며, 코레일 자회사 대부분이 이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 한국철도공사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의 2018~2023년 연도별·직급별 기본급 추이.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산입범위 확대가 처음 적용된 2019년부터 곧바로 실질임금 하락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기본급이 법정 최저임금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매우 당연해졌으며, 산입범위에 식대가 포함되자 추가 산입범위만큼 기본급 인상 폭을 낮춰버리면서 급수 간 기본급 차이가 1만 원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심지어 '기본급 역전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데, 2017년까지만 해도 각 급 내에서 기본급은 위탁역장-총괄매니저-매니저 순이었으나 2018년에는 기본급 차이가 '0'이 되었으며, 2019년부터 순서가 매니저-총괄매니저-위탁역장으로 위아래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산입범위 개악이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노동자들 임금을 확실히 억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임금 노동자만 정밀타격한 '희대의 꼼수'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악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인 2018년 5월 29일, 고용노동부 설명자료를 통해 개정내용 의미를 이렇게 해설한 바 있다.

"현행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선진국에 비해 협소하여 실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 현금성 복리후생비 등이 최저임금에 반영되지 못해 왔습니다. …… 고임금 노동자까지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받는 이러한 왜곡된 임금체계가 개선되고 소득격차 완화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다시말해 산입범위를 확대한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임금 노동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러한 불합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상대적 고임금층의 경우 산입범위 확대와 무관하게 임금인상폭도 꾸준했고 임금분포곡선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산입범위 확대로 피해가 집중된 쪽은 최저임금의 120% 전후에 해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 그것은 임금분포곡선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코레일네트웍스를 비롯한 여러 사업장의 실제 사례에서도 확인되는 내용이다. 공기업에서 이 정도 일이 벌어졌으니 민간부문에서는 얼마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조차 싫어진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가 끝난 직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건영 의원실(민주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실태조사 또는 연구결과가 있는지"를 문의한 것에 고용노동부는 내놓은 답변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다.

"2019년 산입범위 개편으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산입범위를 6년간 단계적으로 확대해 가는 등 현장안착을 위한 연착륙 기간을 부여하였고, 2024년부터는 전액 산입범위에 포함되므로 관련 정책효과는 '24년 제도 정착 이후 검토가 가능할 것으로 사료됨."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꼼수'라고 언급한 사안에 대해 지난 6년간 단 한 차례의 실태조사도, 연구용역도 없었다는 얘기다. 산입범위 개편이 낳은 악영향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100% 산입범위에 포함되는 내년부터나 정책효과 검토가 가능하다니?

똥인지 된장인지 냄새만 맡아선 알 수가 없고 먹어봐야 아는가. 정녕 관을 봐야 죽음의 의미를 안단 말인가. 만일 내년에 검토해서 악영향이 실제로 확인되면 바로잡을 생각이나 있는 것일까. 말만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임금 노동자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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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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