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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 공무원들끼리는 겸상도 싫어” … 서로 망하는 새만금 관할권 ‘삼국지 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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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시·군 공무원들끼리는 겸상도 싫어” … 서로 망하는 새만금 관할권 ‘삼국지 혈투’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44] 극단 치닫는 지자체 싸움의 전말

싸우다 망한다는 말은 지역의 현안 추진에서도 명징(明澄)하게 적용된다. 중앙부처가 지방의 현안을 적극 지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기준 중에 하나가 바로 지역민들의 열정과 의지이다.

시·군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멱살 잡으며 싸우는 사업이라면 중앙부처도 이를 핑계 삼아 우선순위를 뒤로 하거나 아예 지원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바로 이웃에 인접해 있으면서 공직자들끼리 만나면 등 돌리고 대화도 하지 않는 지자체가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공무원들이 같은 식당에서 밥도 안 먹는 상황이니 언뜻 보면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을 정도이다.

바로 새만금 행정구역과 관할권 문제를 놓고 번번이 갈등과 마찰을 빚어온 전북 기초단체들의 이야기다.

새만금 땅따먹기 싸움은 지난 2006년 4월 세계 최장의 33km 방조제가 끝물막이 공사를 완료한 이후 시작됐다. 군산과 부안 앞바다를 방조제로 막아 1억평이라는 거대한 내부 토지가 조금씩 생기면서 행정관할권을 놓고 인접 기초단체 간 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

1라운드 싸움은 2010년 휘슬이 울리자마자 난타전에 들어갔다. 당시 안전행정부는 새만금 3·4호 방조제의 행정구역 귀속지를 군산시로 결정했으나 김제시와 부안군이 그해 12월 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대법원에 제출하면서 공방이 달아올랐다.

▲새만금 방조제 갑문을 항공 촬영한 모습 ⓒ연합뉴스

1호에서 4호까지 있는 방조제를 누가 관할하느냐는 새만금 내부 토지의 선점 문제와 연결돼 있어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 등 3개 기초단체의 '삼국지 영토전쟁'은 양보할 수 없는 싸움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관할권 싸움이 자칫 전북도 전체를 봤을 때 지역배타주의와 함께 소모적인 행정낭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영토전쟁의 포성은 멈추지 않았다.

3개 지자체 간 '삼국지 대혈투'로 비화

그러자 행정안전부가 2015년에 부안군에서 시작하는 새만금 1호 방조제는 부안군에, 김제 앞바다의 2호 방조제는 김제시에, 군산에서 시작하는 3·4호 방조제는 군산시에 각각 관할권을 부여했다.

행안부의 결정에 일부 지역이 반발하고 2라운드의 오랜 법적 다툼 끝에 2021년 대법원이 행안부 결정에 손을 들어주면서 방조제 관할권은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방조제 싸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방조제 안에 지도상에 없던 새로운 땅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주요 도로가 형성되면서 행정구역 관할권 싸움이 물러설 수 없는 '삼국지 대혈투'로 비화하게 된 것이다.

김제시 진봉면 심포항 시점에서 새만금 2호 방조제 종점까지 잇는 새만금 내륙 간선도로인 '새만금 동서도로'의 경우 2015년 11월에 착공해 만 5년만인 2020년 12월에 준공됐다. 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할권이 정해지지 않았다.

총 20km에 달하는 4차선 도로 건설에는 총사업비만 3623억원이 투입됐지만 준공 3년 가까이 관할권이 정해지지 않아 '주인 없는 도로'로 전락해 있다.

동서도로는 지난해 12월 행안부 분쟁조정위에 안건이 상정돼 올 8월까지 네 차례의 회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군산시와 김제시 주민들은 물론 공무원들조차 하나의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다는 식의 '대천지원수'로 돌변해 서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

김제시민들이 지난 16일 새만금 동서도로의 행정구역 결정이 정당한 이유 없이 미뤄지고 있다며 행안부와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규탄하고 나서자 다음날인 17일에는 군산시 주민들이 새만금 관할권 사수에 나서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치열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제시민 1000여명이 참여한 '동서도로 관할권 결정 촉구 범시민 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은 "대법원이 2013년과 2021년 만경강과 동진강을 경계로 연접성을 기준 삼아 새만금 매립지 관할을 판결했다"며 "행안부와 중앙분쟁위가 이 기준대로 관할을 결정하고 지자체가 승복한다면 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제시민들이 16일 새만금 동서도로의 행정구역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며 행안부와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규탄(오른쪽)하고 나서자 다음날인 17일에는 군산시 주민들이 새만금 관할권 사수를 촉구(왼쪽)하는 등 치열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군산시의회.김제시

그러자 이번에는 군산시민들이 발끈했다. 다음날인 17일 군산새만금지킴이범시민위원회와 군산시의회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새만금 관할권 사수를 위한 집회를 가진 것이다.

군산시의원과 시민 등 600여명이 참여한 집회에서는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새만금 2호 방조제를 김제에 내주는 뼈아픈 과거가 있다"며 "신항만까지 김제시로 넘어가면 고군산군도가 김제땅이라 우길 것"이라는 거친 목소리가 나왔다.

'물러날 수 없다' 건곤일척의 싸움 지속

군산시민들은 "새만금이 조속히 개발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전북도가 나서 지자체 간의 분쟁을 중단시켜야 한다"며 "중앙분쟁조정위원회의 관할권 결정도 잠정 보류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제각각 자신이 관할권을 가져야 한다는 건곤일척의 지자체 싸움은 새만금 내부개발의 진척과 함께 곳곳에 지뢰밭처럼 숨어 있다.

새만금 내부 십자축을 완성하며 올해 7월에 개통된 '남북도로' 역시 아직 관할권이 정해져 있지 않아 또 다른 분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군산에서 부안까지 27km를 잇는 새만금 남북도로는 6~8차선의 넓은 도로로 사업비만 1조259억원이 들어갔다.

현재 군산시가 가장 먼저 관할권을 주장하며 선점에 나섰고, 도로가 지나는 김제시와 부안군도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밖에 공사 중인 신항만은 인접한 방파제 관할권 분쟁으로 전초전이 시작됐고, 새만금기본계획(MP) 변경에 따른 주요 간선도로(27km) 건설도 지자체 간 마찰과 논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실정이다.

최근에는 인구 4만여명의 유입이 예상되는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을 앞두고 지방소멸에 처한 지자체들이 인구 확보 차원에서 사활을 건 싸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새만금 수변도시 위치도 ⓒ새만금개발공사

실제로 새만금개발청과 새만금개발공사가 11월 22일 개최한 '새만금 수변도시 생활인프라 조성방안 연구용역' 중간보고회에서는 새만금 수변도시 유입인구가 기존의 계획대비 1만5000여명 증가한 4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이날 참석자들은 2027년 본격 입주에 맞춰 차질 없는 공공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관할 행정구역 결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고, 행정구역 결정이 지연될 경우를 대비한 임시시설 건설 방안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정도로 걱정이 적잖은 실정이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새만금 내부 토지 전체를 '분쟁지역'으로 봐야 할 상황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이다.

새만금 관할권 분쟁이 지상전이었다면 김제공항 무산은 허망한 공중전으로 끝난 사례이다. 1970년부터 추진해온 전북의 공항건설은 산업화 시절에 경부축에 밀려 겨우 1990년대 중반 김제시 백산면 일원에 김제공항을 건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주와 익산, 정읍, 완주 등 5개 시·군의 가운데에 위치한 김제시는 지리적으로 전북의 항공중심지 역할을 할 최적지라는 판단에서 2002년 부지매입과 함께 민간건설사가 선정됐다.

당시 국토부는 2005년까지 156㏊의 부지를 매입하고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단계까지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는 방침이었다. 2007년까지 길이 1800m에 너비 45m의 활주로 1개와 보잉 737급 여객기 3대를 계류하는 시설을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총사업비(1474억원) 중에서 일부(480억원)가 긴급 투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북지역 시민단체와 벽성대학이 "경제성 없는 내륙공항"이라며 환경을 파괴하는 공항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주장했고, 감사원은 2003년부터 이듬해까지 경제성이 충분한지를 엄격히 따지게 된다.

조사 결과 항공수요가 과다 예측되고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자 감사원은 건교부에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김제공항건설을 위한 실시설계 당시(2001년)에는 항공수요가 324만명에 달했으나 감사원의 재검토 결과 136만명으로 절반 이하로 나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항 신설을 위한 항공수요 기준은 연간 300만명이다.

▲풀만 무성한 김제공항 부지 ⓒ연합뉴스

결국 김제공항건설사업은 국토부가 2008년 7월 "항공수요가 적어 건설의 필요성이 없다"며 정식으로 사업을 취소하면서 10년 만에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미래발전 위해 전북도 중재력 발휘해야"

김제공항 무산은 지역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벽성대학과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며 감사원 감사로 이어졌고, 해당부처가 끝내 사업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전북의 내생적 발전 동력을 스스로 차단한 것 아니냐"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아쉬움 속에 항공 오지(奧地) 전북을 탈출한 유일한 희망이 사라지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 바로 새만금 국제공항이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2019년 1월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던 새만금 국제공항은 작년 6월 기본계획 수립·고시에 이어 올해 3월에 설계시공 일괄입찰 공고, 올 8월 기본설계서 제출과 가격입찰 등 탄력적 추진이 예상됐다.

전북도민의 기대를 모았던 국제공항의 꿈은 새만금잼버리 파행 이후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부처요구액(580억원)의 무려 89%를 삭감한 채 66억원만 반영해 국회로 넘기면서 또다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상태이다.

지역민들은 "새만금 관할권을 놓고 지자체 간 극단의 다툼이 심화하고 있어 자칫 현재의 갈등과 마찰이 미래의 비전까지 갉아먹는 것 아니냐"며 "전북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지역내 자중지란이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경우 경쟁력을 상실하고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없다는 우려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새만금은 전북의 미래, 나아가 대한민국의 내일을 책임질 소중한 땅이자 국가적 자산"이라며 "전북도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중재력을 발휘해 인접 지자체 간 싸움이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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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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