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브라질 및 중국과 가까웠던 대외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그가 선거 유세 중에 언급했던 극단적 발언을 어떻게 주워 담을 것인가가 최대의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19일(현지시각) 아르헨티나 일간지 <클라린>은 이날 열린 대통령 결선투표의 개표가 99% 진행된 시점에서 '전진하는 자유 동맹'의 밀레 후보가 55.69%를 득표해 44.3% 지지에 그친 '조국연합'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를 제치고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마사 후보는 집권여당의 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140%의 인플레이션과 40% 이상의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집권여당이 아닌 극우 성향의 밀레이 후보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측은 꾸준히 나왔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23일 1차 투표에서 마사 후보가 36.78%로 1위에 오르고 밀레이 후보가 29.99%로 2위를 기록하면서 결선 투표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 졌다.
하지만 결선 투표에서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밀레이 후보에게 10% 이상 더 많은 지지를 보내면서, 선거는 결국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을 심판하는 결과로 마무리됐다. 신문은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사 후보가 승리했지만 1.5% 차이에 불과했다면서, 선거 패배의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당선 확정 후 지지자들 앞에서 "오늘부로 아르헨티나의 쇠퇴는 끝났고 재건이 시작된다"며 "(아르헨티나 대다수를) 빈곤하게 만드는 일부를 위한 특권 제도"를 끝내겠다고 약속한 뒤 "아르헨티나 상황은 매우 중요하며,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 점진주의, 반쪽짜리 조치 등을 취할 여지가 없다"고 말해 급진적 변화를 예고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정부 지출을 없애버리겠다며 유세 현장에 전기톱을 들고 나타나 화제가 됐다. 미국 방송 CNN은 밀레이 후보에 대해 "자칭 '무정부 자본가'"라며 "아르헨티나 화폐를 달러로 바꾸자고 하고 공공 보조금을 삭감하고 문화, 교육, 환경, 여성 그리고 다양성의 부처를 없애는 많은 급진적인 변화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밀레이 후보는 장기매매 허용, 성교육 금지 등 급진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에서 밀레이 후보의 이러한 주장은 많은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으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르헨티나 화폐인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밀레이 후보는 대외적인 측면에서도 급격한 변화를 예고했다. 전 정부가 브라질, 중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으로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는데, 밀레이 후보는 "공산주의자들과 관계를 지속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클라린>은 "(브라질 대통령인) 룰라 다 실바나 중국에 대한 급진화된 입장을 어떻게 축소 또는 철폐시킬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밀레이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직면하게 될 대외적 도전과제들이 이러한 지점에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밀레이 후보가 그동안 "이스라엘과 미국이 주요 동맹이 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이스라엘을 그가 방문할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면서 외교 정책 변화를 언급했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밀레이 당선인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할 것이고 베네수엘라, 쿠바, 니콰라과 등도 같은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라며 "며칠 안에 외교 관계를 끊으면서 이러한 정책이 구체화될 것인지, 혹은 냉랭한 관계를 가져갈지"에 대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남아메리카 경제협력체인 '남미 공동시장' 메르코수르(Mercosur)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최초 회원국이자 정회원국인 협력체로 지난 1991년 설립됐다. 현재 정회원 4개국과 볼리비아, 칠레,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수리남, 가이아나 등의 준회원국, 멕시코와 뉴질랜드 등이 참관국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지난 8월 유세에서 경제 5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가입 신청을 했고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과 함께 내년 1월 1일부터 새 회원국 자격을 얻은 바 있다.
밀레이 후보가 이처럼 급격한 변화를 예고했지만 실제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중국이나 브라질 등의 관계와 관련, 신문은 "중국과 브라질은 지난 2022년 아르헨티나 무역의 3분의 1을 차지했고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라며 "밀레이는 브라질, 중국과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고 잘 연결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의 급진적인 발표와 약속, 파괴적 정책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그가 맞이하게 될 도전"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밀레이 후보는 유세 때의 강경한 입장을 다소 완화시키고 있다. 신문은 그가 이번주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이제는 "모든 무역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밀레이 당선인이 이전에 했던 연설을 무색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급회전을 했다"고 평가했다.
메르코수르와 브릭스 등에서 탈퇴하려는 움직임도 현실화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신문에 따르면 밀레이 후보는 이 발언 이후 스스로 "꼼짝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신문은 그가 "국가 간 관계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거나 누구와 거래해야 할지 여부에 대해 "현재로서는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개방하겠다는 국가의 입장이 우루과이의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포우(대통령)와 일치한다고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다자 경제협력체와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포우 우루과이 대통령은 중국과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은 여기에 반발하고 있는데, 회원국이 비회원국과 독자적 FTA 체결 협상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과 관계에 대해 밀레이 대통령 측은 아직까지 명확한 선을 긋고 있지 않다. 차기 정부에서 총리로 유력한 경제학자 출신 다이애나 몬디노는 이날 아르헨티나 방송에서 룰라 대통령이 밀레이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밀레이 대통령이 자국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악마", "독재자의 친구"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것과 관련, 교황도 취임식에 초청할 것이라면서 "두 팔을 벌려" 초청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밀레이 당선인 측의 움직임에 대해 신문은 "그들이 이제 구축해야 할 정상성을 암시했다"며 선거 과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문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지향하고 있는 밀레이 정부가 경제적 문제 때문에라도 자신들의 '이상향'과는 다른 방향의 정책을 채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문은 "대외관계가 국가가 아니라 시장에 의해 지배돼야 한다는 이상적인 밀레이의 세계에서는 아르헨티나가 필요로 하는 기본적 수요와 관련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수출 증가를 통해 진짜 달러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정부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르헨티나는 기금, IDB(미주개발은행), 세계은행 및 그밖의 기구들과 관계된 프로그램에 대한 보증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 국가가 공산주의 국가든 아니든 다른 국가를 설득해야 한다. 이는 국가 기구, 즉 장관이 해야 한다"며 무정부적인 정부 운영은 현실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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