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4개월 바짝 조아리면 4년간 어깨를 편다'는데…표변하는 정치인들 속성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4개월 바짝 조아리면 4년간 어깨를 편다'는데…표변하는 정치인들 속성

[지방정치 오디세이 7] 중앙정치 종속과 해바라기 현상

사회자: 자, 이쪽으로 돌아서서 연설해야 언론에 잘 나옵니다.

정치인: 아~!, 그래요??

때와 장소는 2023년 11월 7일 오후 국회 본관 앞. 전북지역민과 출향인사 등 5000여명이 참석한 '새만금 예산복원을 위한 전북도민 총궐기대회'에서 은연중에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온 대화이다.

전북의 미래가 누란지세의 위기에 처해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참석한 행사에서 사회가 강단에 선 정치인에게 언론 홍보를 의식해 안내하는 소리가 그대로 전파를 탄 것이다.

새만금 예산 복원을 위해 삭발까지 감행한 정치인이 언론에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되기 위해 초등학생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모습은 "향후 선거에서 공천장을 쥐는 데 유리하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지방 정치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웃픈 장면'으로 해석됐다.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전북에서는 크고 작은 선거 때만 되면 현역이나 도전자들 모두 '공천장' 확보에 혈안이 된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민심의 파도에 올라타야 할 출마 예정자들이 되레 공천의 파도에 올라탄 서퍼(surfer)가 되려고 안간힘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에 유권자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서퍼의 약점은 '한 눈을 팔 수 없다'는 점이다. 공천의 파도가 거세게 출렁일수록 다양한 민심과 의중을 파악하지 않고 중앙당의 공천시스템 향배에만 예의주시하게 된다. 선거가 격해질수록 민심을 망각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설혹 민심이반이 감지된다 해도 "공천장만 손에 쥐면 무서울 게 없다"는 심리가 작동한다. 지방의 민심보다 중앙의 풍향을 잘 살피는 '가재눈 정치인'이 선거 때마다 늘어나는 이유이다. 전북에서 "본선보다 더 뜨거운 경선"이라는 말은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똥 치우는 막대기도 당선된다"는 표현의 동의어일 뿐이다.

물론 여야 가릴 것 없이 중앙당이 과거처럼 "이쪽으로 가자"며 인물을 내리꽂는 전략공천은 없어진 지 오래됐다. 그 자리에 공천 룰을 정하고 여론조사와 내부 평가를 통해 최종 후보를 선정하는 시스템 공천이 들어앉았다.

하지만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시스템 공천'이라 해도 숫자로 정확히 체크하는 정량적 평가 외에 애매모호한 정성적 평가를 통해 유불리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세랭게티 초원과 같은 살벌한 정치무대에서 '게임의 법칙'은 단순히 법칙일 뿐이라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

경선 방식과 관련한 중요한 정보나 흐름을 중앙당이 쥐고 있어 지방정치인들이라면 민심의 변화보다 중앙의 흐름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지난 9월 20일 당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당내 선출직공직자평가위가 마련한 '21대 국회의원 평가 시행세칙'을 의결했다. 평가 분야는 ▲의정활동(380점) ▲기여활동(250점) ▲공약활동(100점) ▲지역활동(270점) 등 4개 분야로 나누어 총점 1000점을 기준으로 점수화한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 ⓒ연합뉴스

민주당 당규는 이번 결과를 공천기구에서 심사·평가에 일정 비율 이상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지역구 현역의원들의 발걸음이 아주 분주한 실정이다. 객관적인 지표임에도 다면평가나 정성평가 등 계량화하기 힘든 평가가 병행됨에 따라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특히 민주당 안방인 전북은 '공천=당선'이란 공식이 성립돼 혁신과 쇄신의 시험대로 쓰이기도 한다. 인적 쇄신을 위해 일정한 비율의 현역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당 지지율이 높은 텃밭이 가능한 까닭이다. 실제로 최근 전북 정치권에는 내년 총선에서 기본적으로 2~3개, 최대 절반가량의 금배지가 주인을 바꿀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래서 중앙정치의 방향에 목을 매다시피 한다. 4년 동안 지역구에 공력을 들였다가 중앙의 공천 흐름을 잘 파악하지 못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공천과 낙천 사이의 ‘파리 목숨’이 전북 정치인이라는 하소연 섞인 푸념도 나온다.

지방정치의 중앙예속은 여야 공히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텃밭의 종속은 유독 더 심한 편이다. 중앙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지세가 든든한 안방의 영토에서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세대교체를 감행할 수 있고 노·장·청의 조화로운 배치도 실험할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지방 정치인도 "선거 때 3~4개월 바짝 고개 숙여 공천만 받으면 4년 동안 어깨를 펼 수 있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뇌리에 박히게 된다. 선거가 끝나면 표범의 무늬가 변하듯 갑을관계가 표변(豹變)해 권력자의 본색을 드러낸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입지자들은 다른 당 후보와 인물싸움, 정책 경쟁을 하기보다는 당내 우위만 점하면 여의도에 입성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며 "링 위의 격투가 아닌 같은 체육관 내 대련이 반복되다 보니 경쟁력이 자꾸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풍찬노숙의 들꽃이 아니라 온실 속의 화초로 전락한다는 말이다. 텃밭의 안일함은 전북정치의 진정성 부재와 슈퍼스타 실종으로 이어지는 중대 요인이 된다.

내년 4월 제22대 총선을 4개월여 남겨둔 올 11월 하순 현재 총선 출마 입지자들은 50명 안팎이다. 상당수 도전자들은 "현역의 기득권에 안주할 것인가, 신인의 혁신을 선택할 것인가"라며 직접 민심의 파도를 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직접 민심에 호소하는 '도전 정치'는 성패를 떠나 중앙의 예속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