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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 예산 증액하겠다는 국회에 … 되레 유감 표시하는 황당한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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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 예산 증액하겠다는 국회에 … 되레 유감 표시하는 황당한 부처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42] 국제행사-현안예산 정쟁 그만

"이것 참, 정치적 덫에 걸린 것 같은데…."

정부가 내년도 새만금 주요 SOC 예산을 각 부처 요구안의 78%나 삭감해 확정 발표한 지난 8월 29일. 전북 정치권의 한 관계자 입에서는 "끙~"하는 신음과 함께 느닷없이 '덫'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오랜 정치경험을 통해 정치적 판세를 잘 읽는다는 지역 내 명성을 쌓아온 사람이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예산삭감'과 '정치적 트랩(trap)'을 연결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전북지역민들이 마그마와 같이 뜨거운 분노를 표출해야 할 상황에서 그는 왜 뜬금없이 정치공학적 해석에 나섰을까?

사실 새만금잼버리가 파행으로 끝난 후 여야는 국제행사의 결산작업에 '정치'를 덧씌우기 시작했다. 여권은 파행의 원인을 전북도가 망할 수밖에 없는 갯벌에 대회를 유치하고 예산만 빼먹으려 혈안이었다며 '전북 책임론'의 불을 지폈고, 야권은 정부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초기대응을 소홀히 해놓고 책임을 지방정부에 전가하고 있다며 '정부 무능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한병도 도당위원장 등 더불어민주당 전라북도 국회의원이 13일 서삼석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만나 새만금 예산 원상 복원을 호소했다. ⓒ안호영 의원 페북 캡처

전북 정치권이 "진흙탕 잼버리니 예산빼먹기식 주장은 가짜뉴스에 해당한다"고 연일 반박에 나서며 지금이야 잘못된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그때만 해도 전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국민의힘은 이틈을 겨냥해 전북 책임론의 공세에 끊임없이 포탄을 퍼부었다.

정치권이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사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각 부처에서 올린 새만금 주요 SOC 예산을 대거 삭감한 채 8월 29일 발표하게 된다. 30여년의 새만금 국책사업 추진과정에서 한해 예산을 80% 가까이 칼질한 사례는 전무한 상황이어서 당연히 전북도민들이 발끈하며 강하게 항의하고 나서게 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가 "정치적 덫에 걸린 것 같다"고 우려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관계자 말의 요지를 들어보았다.

"새만금 예산이 삭감되면 전북도민들은 똘똘 뭉쳐 ‘새만금을 살려내라’고 거칠게 항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새만금을 반대하는 다른 지역에서 들고일어나고, 전북은 더 고립될 것이다. 항의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항의하면 고립되니 이것이 바로 외통수 아닌가. 아마 여권은 이런 전북의 처지를 십분 이용할 것이다."

그의 우려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틀 뒤인 8월 31일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이날 전남의 '순천 국제 정원박람회' 현장을 둘러보며 콕 집어서 해당 단체장 등을 극찬한 후 '지자체 차별지원 당위론'을 언급하는 등 '호남 갈라치기'에 나선 것이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일 잘하는 지자체와 일 잘못하는 지자체 사이에 차별이 있어야 주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지방자치제도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전북 부안의 '새만금 잼버리' 행사와 전남 순천 '국제정원박람회'를 대비시켜 전북을 일 못하는 지자체로 내치고 전남을 껴안는 '전형적인 호남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직 공무원 K씨는 "김기현 대표의 말 한마디에 전북도를 비롯한 14개 시·군은 '일 못하는 지자체'로 낙인이 찍혔다"며 "앞으로 어떤 부처가 전북을 도와주려 하겠느냐. 심히 걱정된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은 즉각 반발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잼버리 대회의 준비 소홀을 전북에 덤터기 씌우더니 호남 내 분열을 유도하는 편가르기 책동에 나섰다"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마치 당정이 사전에 군사작전이라도 세운 것처럼 한쪽(정부)이 새만금 예산을 삭감하자마자 다른 쪽(국민의힘)이 전남에 가서 전북을 내치는 등 '호남 갈라치기'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전북 정치권의 반발이었다.

정치권은 "잼버리 사태가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닌 정쟁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간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이 잼버리 파행을 정치로 끌어들여 쟁점화하고, 마치 정부가 거들듯이 새만금 예산을 삭감해 다시 쟁점화했다는 주장이다.

새만금잼버리 파행으로 좌절과 낙담 속에서 8월을 보냈던 전북도민들은 9월과 10월 두 달은 새만금 예산복원의 투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정황근 장관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국회의 예산 심의 계절인 11월에도 정부와 여당은 새만금 예산 복원과 관련해 노골적으로 딴지를 걸며 전북도민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달 13일 열린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라 할 수 있다.

내년도 농림·해양수산 분야의 2024년도 예산안을 심의하는 이날 회의에서 국회 농해수위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농촌진흥청, 산림청, 해양경찰청 소관 예산안을 2조3047억원 증액하기로 의결했다.

이 와중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는 새만금 예산 삭감이 당연하다고 버텼고, 국민의힘은 아예 표결조차 거부하고 퇴장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새만금지구 개발을 제외한 증액 부분에 동의한다"며 '새만금 예산'만 콕 집어 문제를 제기했다. 박성훈 해수부 차관과 남성현 산림청장도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련 예산이 증액 통과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초 각 부처에서 새만금 관련 예산을 기재부에 올렸고 기재부가 이를 대거 삭감했으니 국회 차원에서 증액을 논의하면 부처는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당연함에도 되레 증액 처리한 야권에 유감을 표시하는 난센스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전북 완진무장)은 "정부와 여당이 새만금 예산 삭감을 짜고 친 정황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라며 "국민 위에 있는 정부는 없다. 끝까지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전직 공무원 H씨도 "당초에 기재부에 내년도 예산안을 올릴 때는 해당 부처에서 무슨 마음을 먹고 올렸는지 황당할 따름"이라며 "자신들이 올린 예산을 복원하겠다는 야권에 유감을 표시하는 부처 행위야말로 '자기부정'이자 '영혼 없는 공직'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새만금 예산과 관련한 최근의 상황은 '때리는 시어머니(여권)보다 거드는 시누이(정부)가 더 밉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며 "더 이상 국제행사와 지역현안 예산을 정치에 끌여들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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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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