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정방폭포
저기 하얗게 센 머리 풀어헤친 채
절벽 끝에 엎드린 사람이 있다
서귀포 앞바다에 머리끄덩이 붙잡힌 채
쉬지 않고 머리가 뜯겨나가는 사람이
뜯겨나갈수록 더 무섭게 자라나
절벽을 온통 뒤덮어버리는 머릿결
흰 비단결로 흘러내리다
끝끝내 칼춤을 추며 떨어져 내리는
저 머리
칼이
서귀포 돌덩이들 남김없이 동강내버리겠다는 듯
베고 찌르는 동안에도
얼굴은 바위 속에 처박히고
한길 낭떠러지
슬프도록 기이한 뒤통수만 남은 사람이
저기 있다
목 없는 텅 빈 목구멍만이
끊임없이 곤두박질치며 으아아아-
소리 지르는 동안에도
눈 속에 바위만한 어둠을 쑤셔 넣고
두 눈 부릅뜬 채 그 차갑고 딱딱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바로 저기……
가까이서 보면
저 사람은 한 사람이 엎드린 것이 아니다
수만 명이 한 사람으로 엎드려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있는
수만 명의 텅 빈 목구멍이
하나의 거대한 목구멍으로 소리 지르고 있는
은빛으로 번득이는 서귀포 앞바다
칼날에 베인 물고기들이
돌무더기 위로 올라와 파닥거린다
한라산 물줄기 쉴 새 없이 밀려 내려오지만
폭포는
절벽 끝에서 한 방울의 물도
떨어뜨리지 못한다
* 1949년 1월 27일.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어딘가로 끌려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12살 김복순, 8살 김복남 남매가 울면서 쫓아갔다. 김복남은 군인들이 내리친 개머리판에 맞아 실명했다. "가끔 그 길을 지나다 보면 주먹밥을 쥐여주고 정방폭포 쪽으로 끌려가던 두 분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합니다." 김복순은 먼발치에서 부모의 죽음을 목격했다. 정방폭포 쪽으로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서 있는데, 멀어서 목 부위만 보였다고 한다. 이윽고 다다다닥! 총소리가 났고. 정방폭포 위 지금의 서복전시관이 있는 곳이었다.
2015년 4월 11일. 서복전시관에서 4‧3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김복순은 "이곳이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곳이로구나. 저곳이 부모님이 우리한테 주먹밥을 주던 곳이로구나."하며 울었다. - 허호준의 「4‧3 기나긴 침묵 밖으로」 ‘고문과 학살의 현장, 정방폭포’편에서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