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대선 이후 처음으로 대면했다. 31일 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진행된 사전 환담을 통해서다. 이번 환담을 계기로 여야정 협치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여야가 다, 정부도 함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며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협조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에 방문해 5부 요인, 여야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국회의장실에서 사전 환담을 했다. 환담장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차례로 악수를 청했고, 이 대표에게도 "오셨어요? 오랜만입니다"라고 말하며 악수를 건넸다. 이 대표는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주신 우리 의장님께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지금 여야가 다 정부도 함께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어려운 민생을 저희가 해결하고, 또 여러 가지 신속하게 조치해 드려야 될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국회의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어 "저희들도 민생의 어려움에 대해서 계속 현장을 파고들고 경청하면서, 국회에도 저희들이 잘 설명하겠다"면서 "예산안 관련된 국정 방향과 예산안에 관한 설명을 오늘 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테고, 앞으로 예산, 국회에서, 우리 정부에서도 예산안을 편성한 입장에서 언제든 요청하시는 자료와 설명을 아주 성실하게 잘 해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제가 국회의장이 되고 나서 이렇게 대통령님과 여야 당 대표님, 그리고 원내대표님, 그리고 5부 요인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처음인 것 같다"며 "그래서 오늘 이 만남을 많은 언론이,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의장은 "지난해 우리 국회는 예산 처리 법정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며 "이번 국회에서는 다시는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특히 올해 예산 심사와 관련해서는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의 역할이 제가 보기에는 중요한 것 같다"며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당이 내년 예산을 편성한 정부에 대해서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대통령과 국회를 연결하는 아주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해 주셔야만 예산안이 충실하게, 그리고 적기에 정리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며 각별한 노력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 도착 전에는 김 대표의 주도로 환담이 진행됐다. 이 대표도 웃으며 간간이 대화에 임했다.
다른 동석자가 있긴 했으나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한 자리에서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은 지난해 대선 후 처음이다. 국가 행사 등 공식석상에서 악수를 나누긴 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지난해 시정연설 당시에는 민주당이 검찰의 전방위적인 야당 표적 수사에 반발해 시정연설을 보이콧했고 이 대표도 사전 환담에 불참했다.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는 이 대표의 사전 환담 참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으나 이 대표가 직접 결단을 내렸다고 전날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표가 취임 후 줄곧 영수회담을 요구해왔고 단식 중단 후 국회에 복귀하며 여야정 3자 회담을 제안했기 때문에 이번 환담을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 '손피켓 시위'에 그냥 지나친 尹대통령…"심장 터지려는 것 참았다" 분노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앞서 윤 대통령을 향해 피켓 시위를 벌였다.
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의 연설 도중에는 야유, 피켓 시위 등을 자제하되, 본회의장 밖에서는 손피켓을 통해 요구사항을 전하는 침묵 시위를 하기로 의원총회를 통해 정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의원 50여 명은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본청 로텐더홀에 서서 '국민을 두려워하라', '국정기조 전환' 등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었다. 사전 환담에 참석키로 한 이 대표는 침묵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들의 손피켓 시위에 대해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쳐 사전 환담장으로 향했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무반응'에 대해 "심장이 터지려고 하는데 간신히 참았다고 하는 분이 계셨다"며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래도 국회가 절제된 모습으로 국민 의사를 전달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손피켓 시위 취지에 대해선 "국민들은 민생이 고단하고 여러 가지 경제 위기 징후들이 커지고 있다"며 "대통령이 일년에 몇 차례 국회 방문하는 것인데, 국민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었다"며 "대통령에게 국민들의 어려운 삶의 문제, 국정기조 전환을 통해 민생을 제대로 살피는 것만이 국민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행위가 여야가 최근 합의한 신사협정의 취지에 어긋났다는 지적도 있지만 민주당은 신사협정이 적용되는 장소가 본회의장, 상임위 회의장 등으로 한정된 만큼 로텐더홀 시위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나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야유하지 않고 본회의·상임위에서 피켓을 들지 않는 등 내용의 신사협정에 대해 지난 23일 합의한 바 있다.
윤 원내대변인은 "회의장 밖 공간까지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막는 건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최소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대통령께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최대한 절제해서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거듭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 연설이 잔행된 본회의장 안에서는 '피켓 시위'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연설을 경청했다. 본회의장 내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의 뜻을 밝힌 것은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유일했다.
다만 여당 의원들은 연설 중간중간 박수를 보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연설을 마친 윤 대통령이 의석을 돌며 악수를 청했을 때도 여당 의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윤 대통령을 맞이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회의 자료 등을 들여다보며 외면하다가 윤 대통령이 바로 옆으로 와 악수를 청한 이후에야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손을 맞잡았고 일부 의원은 자리에 앉은 채 악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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