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하마스에 기습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 지구에 정규군을 투입해 소탕전을 벌이겠다고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무력 침공은 수많은 민간인의 무참한 대학살이 될 수밖에 없다. 하마스의 무차별 테러 공격은 분명 인도주의에 반하는 것이었지만, 이에 맞서겠다는 이스라엘의 대응 방향은 전쟁 범죄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실은 사태가 여기에까지 이른 것 자체가 이스라엘의 이러한 침략적이고 폭력적인 태도 탓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이 협정의 기본정신인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평화적 분립)에 따른 평화 정착을 방해하고 후퇴시키는 방향에서 움직였다. 협정에 서명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당했고, 서안 지역에 줄기차게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됐을 뿐만 아니라,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를 중심으로 정치권 전반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럼 이스라엘 안에는 이런 흐름에 저항하는 세력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최근까지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장악 시도에 맞서는 격렬한 시위가 계속됐고, 이를 이끈 정치세력, 사회운동들이 있다. 그 중에는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중도파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좌파도 있다.
아니, 사실 20세기 내내 이스라엘은 '좌파'가 주도하는 나라였다. 이스라엘 건국에 앞장서고 아랍 국가들과 전쟁을 불사하면서 이를 성사시킨 세력은 (네타냐후가 속한 리쿠드당이 아니라) 좌파정당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왜 이런 모습인가? 강력하던 저 '좌파'는 도대체 어디로 증발했다는 말인가?
좌우를 불문한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모순
진실을 말하자면, 이스라엘 좌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세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문제의 뿌리 깊은 근원 중 일부다.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 이스라엘 좌파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이스라엘 좌파는 분명 그렇다.
일단 이스라엘 주류 좌파를 살펴보면, 건국 당시에는 마파이당(이스라엘 땅의 노동자당)과 마팜당(통합노동자당)이라는 두 좌파정당이 정계를 양분했었다[첫 총선에서 리쿠드당의 전신인 헤루트(자유)당은 제4당에 불과했다]. 마파이당과 마팜당은 20세기 말에는 각각 노동당과 메레츠(활력)당으로 이어지며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좌파를 대표했다. 이들의 사회적 토대는 노총인 히스타드루트와 키부츠 공동체들이었다.
한데 이러한 이스라엘 주류 좌파에게는 다른 나라 좌파에는 없는 독특한 공통 이념이 있었고, 이는 지금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시오니즘이다. 즉, 이스라엘의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세력은 단순한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세력이 아니다. 시오니즘 +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세력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좌파는 서유럽 어느 나라의 사회민주주의정당이나 라틴아메리카 어느 나라의 좌파정당과 동렬에 놓고 관찰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면, '좌파' 시오니즘이다. 영어로는 흔히 Labor Zionism, '노동 시오니즘'이라 한다. 그럼에도 어쨌든 시오니즘이다. 2000여 년간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디아스포라를 이루며 살아가던 유대인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옛 땅에 다시 세운다는 이념이다. 다만 '좌파' 시오니스트들은 이 유대인 국가가 처음부터 노동계급 중심의 '세속적', 민주적 국가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런 '좌파' 시오니즘이 시오니즘 전체의 주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스라엘 좌파가 유별나다는 게 좀 과장인 듯 느껴질 수도 있다. 시오니즘을 단순히 유대인 민족주의로 피상적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어느 나라든 우파뿐만 아니라 좌파 역시 어느 정도는 근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스웨덴을 '인민의 가정'으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여기에서 민족주의의 뉘앙스를 배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사회주의로 가는 이탈리아적 길'을 선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족주의란, 비록 정도 차이는 있더라도, 어쨌든 근대 정치의 기본 형식이다.
그러나 시오니즘은 다르다. 근대 민족주의의 범주 안에 놓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것은 유대인의 오랜 이주 역사가 낳은 비극적 운명이며, 지금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의 비극을 낳고 있는 요소다. 시오니즘은 지구상의 숱한 민족들이 근대 민족주의의 요소들을 서로 모방하며 만들어 낸 근대 민족주의 현상의 일부이되, 그런 '근대'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근대 민족 관념은 지리, 언어, 역사, 문화 등 여러 요소들이 얽혀 구성된다. 여기에는 종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종교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다. 오히려 종교적 정체성은 근대적 민족 정체성과 충돌하는 측면까지 있다. 근대적 민족 정체성은 오랜 종교적 정체성을 포용하면서도 이와 경쟁한다. 그리하여 결국은 특정 종교에 복속되지 않으며 도리어 종교적 정체성 전반에 대해 우위를 주장하는 근대적 민족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리고 근대 국가는 이러한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그 안정적 토대로 삼는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런 일반적 경로에서 이탈하는 유일하면서도 결정적인 사례다. 2000년 동안의 이산 역사 속에서 유대인은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구성할 어떠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공통 요소도 갖출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유대인'을 말하는 것은 언어상의 온갖 모순을 감내하는 행위였다. 다만 그럼에도 '유대인'을 실체로 만드는 단 한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교였다. 사실 유대교를 기독교, 이슬람과 같은 맥락의 종교로 봐야 하는지 자체가 논쟁거리이지만, 아무튼 근대에 들어 유대교는 그런 '종교' 중 하나로 분류됐다. 그리고 유대인이란 유대교도, 즉 유대교를 믿고 실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서 모든 모순이 비롯되었다.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의 근대 국가를 세우길 원했다. 많은 이들은, 시오니스트들이 하필이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만들려한 데에서 비극의 씨앗을 찾는다. 하지만 비극의 씨앗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유대인의' '근대 국가'라는 목표 자체가 비극을 불러오는 요소였다. 시오니스트들이 '유대인' 국가를 수립하려면, 우선 '유대인'을 호명하고 그들을 결집시켜야 했다. 한데 현실에서 '유대인'이란 '유대교도'였다. 즉, 유대교라는 종교적 정체성을 근거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좌파' 시오니스트라고 하여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좌파 시오니스트들은 대개 유대교 리버럴파에 속하거나 아니면 아예 유대교 신앙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세운 신생국은 '유대인의 국가', 즉 '유대교 국가'일 수밖에 없었다. 제1차 중동전쟁 와중이던 1948년에 선포한 '독립선언'은 이스라엘이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근대 국가임을 천명했지만, 또한 신생국의 성격을 '유대인 국가(Jewish State)'라 규정했다.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 유대교 국가. 누가 보더라도 불안한 모순어법이었다.
좌파 시오니스트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성문헌법 없이 독립선언과 기본법으로 헌법을 대체했는데, 1985년에 기본법 일부 조항을 수정하면서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문구를 새로 넣었다. 당시에 이미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에 맞서 좌파가 주도한 개정이었다. 좌파는 '유대인 국가'라는 규정에 '민주주의 국가(Democratic State)'라는 규정을 더함으로써 '유대인 국가'가 내포한 위험을 방지해 보려 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자기 규정은 '유대인-민주 국가(Jewish and Democratic State)'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전혀 방지책이 될 수 없었다. '유대인-민주 국가'는 다른 '민주 국가'와 달리 결혼을 비롯한 여러 사회 제도를 민법을 통해 운영하지 않는다. 유대교 랍비가, 그것도 국가가 공인한 유대교 정통파에 속한 랍비에 한해, 민사재판이나 가사재판의 역할을 떠맡는다. 물론 리버럴 혹은 좌파 이스라엘인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특이성을 증명한다. 이스라엘은 태생적으로 '근대' 국가에 미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특이성 탓에 이스라엘 건국 주역이었던 좌파 시오니스트들은 쇠퇴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은 악화하기만 했다. 건국 당시 주류였던 유럽-북미 출신 인구가 상대적으로 줄고 중동 출신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출신이 늘어나면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한 유대교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노동당이나 메레츠당 지지율은 하락한 반면 극우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들의 지분은 늘어났다. 또한 그럴수록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은 더 잔인하고 가혹해졌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걸어온 역사의 큰 줄기다.
두 국가 해법, 한 국가 해법, 어떤 것도 쉽지 않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태생적 한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일단 당장 필요한 조치는 쌍방이 모든 무력 행위를 중단하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협상을 전개하려면, 중장기적 대안의 선택지들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다시금 이스라엘 국가의 숙명이 미래의 가능성들을 교란하거나 봉쇄한다.
오슬로 협정 이후에 국제사회 대다수가 공인한 대안은 '두 국가 해법'이다.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허용하고 더 나아가는 독립국가 수립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이스라엘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원천 봉쇄하는 방향에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 노동당 소속 라빈 총리의 암살 이후 리쿠드당과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들의 극우 연합이 정계를 주도한 탓이다. 노동당, 메레츠당 같은 좌파 시오니스트들은 이 분위기에 끌려다니며 평화 정책을 스스로 후퇴시켰다. 지지 기반도 줄어들고 이념-노선도 흔들린 좌파정당들은 반극우연합의 주도권을 중도우파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급기야 작년 11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3.69%만을 득표하며 의석이 4석(크네세트 총 의석은 120석)으로 쪼그라들었다. 3.16%를 얻은 메레츠당은 아예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유대교 근본주의에 휘둘릴수록 팔레스타인 진영 안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하마스가 (특히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득세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작금의 분쟁에서 보듯이, 양측의 폭력 충돌이 고조되면서 두 국가 해법의 실현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만 있다. 일방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스라엘 편에서 종교 근본주의의 정치적 영향력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두 국가 해법은 다시 진지한 평화 대안으로 논의되거나 추진될 수 없을 것이다.
두 국가 해법을 제외하면, 남는 대안은 '한 국가 해법'이다. 현재의 이스라엘 시민,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시민이 하나의 통합국가 안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국가 형태에는 여러 가지 변주가 있을 수 있다. 단일국가일 수도 있고, 연방국가나 국가연합일 수도 있다. 이 중 어떤 국가 형태가 됐든, 종교와 언어, 인종의 차이에 상관없이 오직 지중해 남동부의 한 지역에 함께 거주하는 시민이라는 정체성만으로 공통의 정치 공동체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이다.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는가? 그런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이기만 한 방안은 아니다. 숱한 폭력 충돌 경험이 걸림돌이 되겠지만, 비슷한 분쟁을 겪고도 단일한 정치 공동체를 이룬 나라들이 없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좋은 비교 대상이다. 오랜 인종 간 갈등과 분리, 억압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은 보통선거, 즉 1인 1표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정적인 걸림돌은 역시 '유대인 국가'의 업보다. 한 국가 해법으로 나아가려면, 하마스가 이슬람 국가 건설을 포기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민주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국시(國是) 역시 폐기해야 한다. 이스라엘 건국의 기반이 된 시오니즘을 박물관 속 유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흔히 한 국가 해법에 반대하는 논거로 민주화 이행 이후 남아공의 현실을 든다. 보통선거에 바탕을 둔 통합으로 결국 (백인 지배 체제를 대신하는) 흑인 지배 체제가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경우에도 한 국가 해법의 결말은 아랍인 지배 체제가 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엄살에 가깝다. 남아공에서는 흑인이 압도적 다수인 반면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어느 쪽도 그 정도로 압도적 다수를 점하기 힘들다. 해외 팔레스타인인 디아스포라에서 인구가 유입된다 하더라도 해외 유대인 디아스포라 역시 여전히 이스라엘에 새로운 인구를 더할 여력이 남아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라는 점에서는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과거 남아공과 비슷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폐지 뒤의 현실은 남아공과는 또 다를 것이다.
결국 걸림돌은 이스라엘이 '유대인 국가'여야만 한다는 그 이념이다. 이것이 한 국가 해법을 가로막고 두 국가 해법 역시 돌이킬 수 없이 망가뜨리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가장 강한 이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사슬은 결코 풀릴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의 탈-시오니즘화는 가능할 것인가?
과연 이스라엘 사회의 탈-시오니즘화는 가능할 것인가? 이는 "대한민국이 분단반공국가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과도 비슷하다. 2023년에도 여전히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나라가 과연 분단반공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만큼 이스라엘의 탈-시오니즘화 역시 지극히 어려운 과제이고, 또한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진지하게 돌파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다만 일단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 이 과업을 직시하는 흐름이 미약하나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이스라엘 좌파가 좌파 시오니즘 일색만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 결정적인 사례는 노동당, 메레츠당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닌 이스라엘 공산당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공산당은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들과 함께 하다쉬('평화와 평등을 위한 민주전선'의 약칭)라는 정당연합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하다쉬는 작년 총선에서 노동당보다 많은 3.75%를 득표해 5석을 확보했다.
공산당은 다른 좌파정당들과 달리 오랫동안 '유대인 국가'라는 규정에 반대해 왔고, 하다쉬는 현재 이스라엘 안에서 한 국가 해법에 가장 가까운 대안을 주창하는 정치세력이다. 유대계와 아랍계가 내부에서 공존하며 협력하는 하다쉬 자체가 미래의 통합 세속-민주 국가를 예시한다.
노동당 소속으로 크네세트 의장까지 역임한 원로 정치가 아브라함 버그는 노동당의 퇴행을 비판하다가 2015년 하다쉬로 당적을 옮겼다. 본래 좌파 시오니스트로 출발한 버그는 오슬로 협정의 약속이 깨져나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점차 시오니즘의 기본 내용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한 국가 해법 지지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 결과가 하다쉬 입당이었다.
분명 지금 이스라엘 사회는 극우화하고 있다. 그러나 버그의 행보처럼 이에 맞서는 정반대 변화도 있다. 비록 폭력의 스펙터클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더라도, 희망은 오직 이런 이스라엘 내부의 탈-시오니즘화에 있다. 어렵고 또 어렵지만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대한민국 내부의 변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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