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과 관련한 24개의 시나리오를 담은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 최종보고서를 제출한 가운데 열린 국민연금공단 대상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백화점식 나열'이 아닌 정리된 연금개혁안을 만들어달라고 한목소리로 당부했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방치해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4개 안을 제시했을 때 개혁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번에는 정리된 안을 내는지 보겠다'며 여야 간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은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재정계산위 최종 보고서에 24개의 연금개혁 시나리오가 담긴 데 대해 "구체적인 제안은 없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니 전문가와 정부, 국회가 구체적인 계획안을 두고 폭탄이 될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며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김 이사장은 "복지부가 자문안과 여러 이해관계자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서 10월 말까지 종합 운영 계획안을 마련해서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최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연금 개혁을 포기하고 넘기는 바람에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며 "연금개혁은 지속성과 노후 소득 보장성을 균형있게 봐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면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국민연금 개혁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며 "연금 개혁에 대한 18개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24개까지 늘어났다. 재정안정과 보장성 강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논의하면 논의할수록 수능 킬러문항 같이 답을 내기 어려운 함정에 빠지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두 가지를 다 달성하면서도 합리적인 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난 정부에서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더니 (연금을) 개혁할 의지가 있나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걸 감안해 얼마나 정리된 안을 국회에 제출하나 정부 개혁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며 "4차 재정계산(2018년)과 5차 재정계산(2023년)을 보면, (연금) 적립배율 1배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보험료가 더 높아졌다. 이번에도 안 하면 같은 적립배율을 달성하는데 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 저소득층 등을 위한 국민연금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30대 이하 청년 인식을 보면, 79%가 국민연금을 미래에 불리한 제도라고 인식하고 탈퇴하고 싶다는 의견도 절반이 넘는다. 청년 세대의 불신이 높은데 청년 세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며 "연금개혁 관련 6개 위원회 구성원 중 2030세대가 있나"라고 김 이사장에게 물었다.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김 의원은 "연금개혁 논의에 청년층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성 의원은 "일용근로자 자진신고를 거부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직권가입을 시행하고 있다"며 "그런데 소득이 낮거나 근로환경이 안정되지 못한 분들이 직권가입이 되도 자격을 유지 못하고 얼마 안 가 자격을 상실하는 문제가 반복된다. 보험료 납부 강요가 저소득층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공단이 제도를 더 내실화해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저소득 근로자의 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 대상과 같은 기준으로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 정책을 펴면 약 170만 명 정도가 혜택을 볼 수 있다"며 "5차 재정계산 제도개선 사항에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농어업인 보험료 수준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는데 그보다는 저소득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을 좀 더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기금을 주식시장에 굴리고 있어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민연금이 겉으로 표방하는 바와 달리 ESG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여러 의원에게서 나왔다.
최 의원은 "높은 수익률을 쫓다보니 여전히 술, 담배, 도박 관련 기업의 죄악주에 연기금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2018년도에 비해 국내 주식 투자가 54.8% 감소했는데 진로 투자는 올해 1.9로 증가했고, KT&G에 대한 비중도 56.4%에 달한다"며 "술, 담배로 인한 질병으로 매년 수조 원의 국민건강보험료와 병원비가 지출되는데 연기금의 역진적 투자가 국민 눈높이에 맞나"라고 질타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율 상위 100개 기업 중 20%만 장애인 의무고용률 3.1%를 달성하고 있다"며 "(연기금)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 29개, 채권 위탁운용사 18개 중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달성한 곳은 없고, 이 중 31개는 1명의 장애인도 고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고용 지표도 당연히 공단의 ESG 투자 평가 지표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2년 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탈석탄 정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지난 2년 동안 (후속) 논의도 안 했지만 석탄 투자액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석탄산업이 좌초자산 아닌가. 이거 수익 날 수 있나"라고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신규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며 "관계부처가 여러 회의를 하고 있고 여러 제반상황이 당초에 결정한 대로 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투자를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이 (옥시에) 7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며 "가해기업인데다 국민연금공단이 대납한 유족연금, 장애연금의 구상금도 다 내지 않은 기업에 국민이 낸 보험료로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고 지적했다.
김영주 의원은 또 "국내 최다 중대재해 사고 발생 기업이 DL이앤씨"라며 "(국민연금이) DL이앤씨에서 올해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다음날 주식 1025주를 사들이고, 이틀 뒤에 또 4088주를 사들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기업이 굉장히 어려워져 주가가 폭락하고 있어 손실을 본 것으로 나왔다. 수익을 위해 도덕성을 버려놓고 투자한 것도 손해를 봤다"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