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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책임론이란 ‘저주의 굿판’이 벌어진 2023년 8월…나는 지옥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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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북 책임론이란 ‘저주의 굿판’이 벌어진 2023년 8월…나는 지옥을 맛봤다”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32] 치열했던 '잼버리 책임 공방' 재구성

“여권과 보수 유튜버들은 저주의 굿판이라도 벌이듯 매일 ‘전북 책임론’을 제기했다. 마녀사냥을 하듯 힘없는 지역과 다른 곳과 갈라치며 전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나는 당시 숨조차 쉬기 힘든 지옥을 맛보았다.”

전북 전주시에 거주하는 전직 공무원 K씨(62)가 되돌아본 2023년 8월에 대한 기억의 편린(片鱗)이다.

그는 새만금잼버리 주요 참가국인 미국과 영국 대원들이 폭염과 위생 문제로 조기 퇴영을 결정했던 8월 5일부터 새만금 주요 SOC 예산이 대거 칼질당했던 같은달 29일까지 대략 20여일 동안 절망과 좌절, 분노와 분개의 감정을 삭히며 세월을 보냈다고 술회한다.

‘2023년 8월’을 회고하는 K씨의 심정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시에 ‘전북 책임론’이 전국적으로 비등하며 지역민들은 ‘집단 공황장애’라도 앓듯 극도의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클리닉센터 현장 모습 ⓒ연합뉴스

2개월여 시간이 흐른 최근에는 잼버리 파행에 대한 상당수의 진실이 규명됐고 감사원 감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예산과 권한을 쥐고 있는 여가부와 조직위의 준비 부족과 대응 소홀이 잼버리 대회 초기의 파행을 부른 만큼 권한과 비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권 안에서도 ‘전북 책임론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최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책임 떠넘기기를 반성하고 민주당보다 빠르게 새만금 관련 예산을 복구하기 위해 (국민의힘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전북도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줬던 2023년 8월을 재구성해 보았다.

◆ 국민의힘 ‘전북 책임론’ 프레임 공세

국민의힘은 잼버리 대회 파행 초기부터 “전북도가 거액의 예산을 지원받아 해외에 여행가서 흥청망청 말아먹었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며 ‘전북 책임론’을 노골화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8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잼버리 파행과 관련해 “지방정부가 돈과 권한을 가진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정조준했다. 당 대표가 잼버리 대회 직후부터 지방정부 책임론을, 그것도 최고위원회의에서 강한 메시지로 언급한 것이다.

​ 김기현 대표의 발언은 전북도와 부안군을 직공했다. 그는 “전북과 부안군은 세계대회를 이유로 거액의 예산을 배정받은 다음 해외 출장을 나가 대표적인 관광지를 방문하거나 크루즈 여행도 했다고 한다”며 “국민의 혈세를 흥청망청 관광으로 퍼다 쓴 것은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고 사실상 책임론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국민의힘이 8월 10일 국회에서 최고위 회의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8월 13일 논평에서 “이번 대회를 새만금에 유치하자고 주장한 것은 전라북도이고, 새만금지역 배수 등의 문제에 전북도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도 새만금 개최에 동의했었다”며 전북도에 책임을 돌렸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정경희 의원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새만금을 개최지로 선정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게 모든 잼버리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논평에서 “초기 잼버리 부실대응 사태는 전라북도와 민주당 정치인들이 친 사고를 윤석열 정부가 국민과 합심해 파행의 위기를 수습한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달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잼버리 사태에 대한 전라북도의 책임을 거론하면 호남차별이라며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며 “어떻게 전북도청에 대한 비판이 전북도민에 대한 비난과 같나”라고 반문하는 식으로 ‘전북 책임론’을 거들고 나섰다.

국민의힘이 불댕긴 ‘전북 책임론’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현 정부 책임론으로 맞불을 놓으며 정치쟁점으로 비화했고, 지역민들은 상처 입은 가슴을 부여안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즈음에서 온라인상에서는 새만금잼버리 파행과 관련한 전북 비하와 전북인 혐오 발언이 빠르게 확산했다. 전라도는 세금도둑, 상종금지, 말꼬리만 잡기 등 지역 비하·혐오의 댓글도 수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 “만약 ‘전북 책임론’이 당론이라면 黨 떠나겠다”

여권에서 ‘전북 책임론’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포문은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이정현 전 대표가 처음으로 세게 열었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7월 7일 대통령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위촉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현 전 대표는 8월14일 KBS 라디오에서 “이거(잼버리 파행 책임)를 갖다 마치 호남의, 전남의, 전북의 도민들한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어떻게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느냐”면서 “너무 화가 났다. 만약 그게 당론이라면 저는 오늘이라도 그런 당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정말 정신나간 소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도 같은 날 SNS를 통해 “‘잼버리는 전라도 탓’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것이 (여권의) 전략인가 보다”라며 “전라도 탓으로 원인을 돌려버리면 문제는 반복된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8월 15일에는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바통을 받았다. 천하람 위원장은 이날 SBS라디오에 출연해 “정부·여당이 전라북도 책임론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잘 안되니까 전라북도를 탓한다면 좀 쩨쩨해 보이는 일”이라고 ‘전북 책임론’의 문제를 제기했다.

호남출신에 한해 극히 제한적인 목소리이지만 여권에서 나온 ‘전북 책임론’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전북도민들에게는 위안이 됐다.

◆ 민주당 “윤 정부의 무능이 낳은 대참사”

▲전북 국회의원들이 8월 3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만금 죽이기 중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 전북도당

더불어민주당과 전북 정치권은 즉각 ‘전북 책임론’에 거세게 문제를 제기하며 ‘윤석열 정부의 무능이 부른 참사’로 맞불을 놓았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전북 국회의원 8명은 8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대회 파행은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무개념, 무책임을 보여주는 결정판”이라며 “전북을 탓하는 것은 후안무치”라고 공격했다.

잼버리특별법을 봐도 주무부처가 여가부이며 열악한 위생문제와 폭염대책, 음식문제 역시 여가부와 조직위의 업무임이 분명하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잼버리 예산은 총사업비 1171억원 중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투입된 예산은 2021년 156억원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1015억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집행됐다. 또 전체 예산의 74%에 해당하는 870억원을 조직위가 집행했고, 전북이 집행한 예산은 265억(22.6%)에 불과했다.

특히 김제부안을 지역구로 둔 이원택 민주당 의원은 ‘진흙탕 잼버리’ 등 가짜뉴스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진실 알리기'에 혼신을 쏟아 '전국적인 반전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호평이다. 이원택 의원은 국민의힘이 제기한 잼버리 파행의 잘못된 분석을 도표와 현장 사진 등을 통해 알기 쉽게 조목조목 반박해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원택 의원이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상대로 “나중에 역사가 물을 것”이라며 잼버리 사태를 예견했던 '명장면 영상'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며 분위기 반전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를 전후해 감사원이 잼버리 조직위와 전라북도,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에 대한 감사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전북이 타깃이 될 것이란 위협적인 해석까지 나와 지역민들은 다시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 8월 하순 참았던 민심의 대폭발

억눌렀던 전북 민심이 대폭발한 것은 8월 하순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북 14개 기초단체 원내대표 협의회는 같은달 21일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파행은 윤석열 정부와 조직위원회의 책임이다”며 “국회가 국정조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전북에 전가해 도민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주장도 나왔다.

특히 협의회는 “감사원 감사는 힘 있는 기관을 통해 정부와 조직위의 잘못은 은폐하고 전북도와 개최지 부안군 등 지자체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국정조사 촉구의 변을 밝혔다.

전북애향본부 등 전북지역 9개 시민·사회단체도 같은 날 공동성명을 내고 “작금의 상황은 잼버리 파행 책임에 대한 정치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적시해 전북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는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전북인 비상대책회의가 지난 9월 12일 출범식을 갖고 새만금 정상화를 위한 투쟁을 선언했다. ⓒ프레시안

다음날인 8월 22일에는 전북도의회가 목소리를 냈다. 전북도의회는 이날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전북 책임론’과 관련해 “180만 전북도민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는 후안무치의 소행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북도의회는 “잼버리 파행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뒤 “정부와 여당이 ‘전북 책임론’을 주장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제목소리를 냈다.

이때 전북도의회는 분노에 그치지 않고 치밀한 대응에 나서기로 한다. 국주영은 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새만금잼버리 진상규명 대응단’을 꾸려 감사원 감사 등과는 별도로 전북도를 겨냥한 책임전가와 도민의 자존감을 실추시키는 정치공세에 직접 맞서기로 한 것이다.

◆ 국회 여가위 파행 새로운 변곡점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전북 책임론’의 불길이 급격히 사그라드는 또 다른 변곡점은 8월 25일 국회 여가위 파행에서 비롯됐다.

국회 여가위는 이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을 출석시켜 새만금잼버리 대회 파행 원인을 찾겠다고 별렀다. 하지만 당시 김현숙 장관을 비롯한 ‘전북 책임론’을 주장했던 국민의힘 여가위 소속 의원들이 불참해 열리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출석을 요구했던 김관영 전북도지사와 새만금잼버리대회 공동위원장인 민주당 김윤덕 의원(전주갑)은 상임위 출석을 위해 여가위 회의장에 앞에서 대기했다.

전북 정치권은 이를 두고 "정부가 책임에서 당당하다면 국회 여가위에 장관이 불출석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전의 공세에 나섰고, 민주당 김한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부·여당은 앞에서는 책임 검증하자더니 옆에서는 장관들을 불참시키고 있다"며 "피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전북 책임론'의 허구를 주장했다.

2023년 8월은 막판까지 잔인했다. 잼버리 파행 책임 논쟁 속에서 8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의 2024년도 예산안이 전북도민 반발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내년 예산안에 ‘새만금 SOC 10대 사업’ 예산이 1479억원만 반영되는 등 정부 각 부처에서 기재부에 요구했던 금액(6626억원)에서 무려 5000억원 이상 대거 칼질 당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새만금국제공항’ 예산은 부처반영액(580억원)의 고작 11%에 해당하는 66억원만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되었고,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예산 역시 정부 심사단계에서 70% 이상 삭감됐다.

새만금항 인입철도 건설, 새만금 간선도로 등 나머지 SOC 예산도 전액 삭감되거나 반영률이 30%를 밑돌아 전북도민들이 ‘잼버리 파행 보복 예산’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새만금잼버리 파행, 이에 따른 책임론 공방과 새만금 SOC 예산 삭감에 따른 보복성 논란 등 전북에 있어 시련의 계절은 국회 국정감사 기간인 10월 중순,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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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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