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처절한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은 공공성을 내걸고, '공산 전체주의로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있다'는 맹비난을 서슴지 않고, 정부는 공공성을 내세우면서 핵심 공공 서비스 분야의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공공 서비스 민영화다. 모두 알다시피 공공 서비스란 시민들이 자신의 생명과 사회적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기반이고, 국가가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 영역이다.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는 군사 안보에 버금가는 중요한 사회 안보 서비스이다. 국가의 자국민 보호 의무는 군사 안보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보호 차원에서도 강조되어야 한다.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된다는 것은 마치 국방이 사설 용병 업체에 맡겨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된다는 것은 '비용을 지불 해야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지불 능력이 있는 자만 자신의 생명과 사회적 존엄성을 유지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돈이 안 되는 상품은 필요한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얼마든지 없애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공공 서비스 민영화는 공공성과 시민의 좋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사람들의 존엄성과 생명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미 공공 의료서비스의 축소와 소아과나 산부인과 같은 필수 진료과의 '돈 안 되는 지역 순에 따른' 폐업으로 시민의 기본적인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 철도 민영화는 안정된 공공 교통 서비스의 질적 하락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뿐만 아니라, 시민의 이동권을 무너뜨리고, 무분별한 자동차 사용량 확대에 따른 기후 위기 악화를 예견하고 있다.
노동자들도 '공공성'을 내세운 파업으로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전쟁이 부딪히는 양측은 물론 시민의 재앙이 아니라, 모두의 사회적 삶과 존엄성이 더 보장되는 사회로 향하는 대화와 협의로 바뀌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가 시급히 다뤄져야 한다.
첫째는 철도, 의료, 에너지는 물론, 물, 교육, 돌봄, 문화, 주거, 정보통신, 국공유지 분야 등 공공 서비스는 정부, 기업 누구든 맘대로 매각하거나 영리를 취할 수 없는 '양도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공공 서비스는 특정한 누가 독점하고, 마음대로 매각, 변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모두가 함께 향유하고, 함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5년이라는 제한된 위임 권한을 부여받은 정부가 시민의 생명과 존엄성의 기반을 돌이킬 수 없이 민간 시장에 어떻게 맘대로 양도할 수 있을까? 결국 순살 아파트를 양산한 민간 분양 방식으로 국토를 매각하는 LH 또한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공공 서비스는 '관리 대 매각'이 아닌,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둘째는 '공공성' 이름에 담긴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이다. 공공성에 이미 정해진 내용이란 없다. 맥락에 따라 그 내용은 공산 전체주의, 국가 경쟁력, '부자 되세요'가 될 수도, 불평등 극복, 다양성과 차이 존중, 기후 정의가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쪽이든 공공성은 특정 집단의 밥그릇이나 몫을 위한 가치가 아닌,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의제를 담아야 한다.
지금 공공 서비스 민영화에 맞서 힘든 파업 투쟁을 펼치는 노동자들은 이 파업이 자신들이 몫을 넘어 모든 이들의 생명과 사회적 존엄성을 위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공공 서비스가 앞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시대적 의제를 위해 어떤 책임을 다할 것인지를 더 분명히 약속할 필요가 있다. 그 때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하고, '양도 불가능한' 시민의 자산을 확실히 지켜낼 새로운 정치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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