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이른 오전, 민주노조를 깨우는 소리 호각(이하 호각)에서 활동하는 이훈, 양동민 활동가를 강남 엔씨타워 앞에서 만났다. 엔씨타워에는 한국닛토덴코 사무실이 있다. 일본닛토덴코는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의 지분 백퍼센트를 가진 기업이다. 호각의 활동자들은 옵티칼을 둘러싼 닛토덴코 그룹의 먹튀 행각을 알리고 옵티칼의 현재 상황과 투쟁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선전전을 벌이고 있었다.
현재 호각에서는 총 7명이 활동하고 있다. 각각은 고태은(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싸람), 안나(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양동민(사회주의를향한전진), 이훈, 정로빈(공공운수노조), 김선호(공공운수노조), 변주현(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이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 가운데 이훈, 변주현 활동가에게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Q. 닛토덴코 서울사무소 앞 선전전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이훈: 9월 15일에 첫 선전전을 했다. 선전전 이전에 서울사무소에서 가장 먼저 했던 건 9월 5일 진행한 기자회견이었다. 그동안 구미에 있는 옵티칼을 대상으로 경찰의 침탈 시도가 자주 있었다. 변호사, 노무사 등을 동원해서 법적으로 압박한다거나 굴착기를 가져와서 노조 사무실을 부수겠다고 하는 식의 침탈 시도가 있었다. 선전전은 그에 대한 반발의 표현이었다. 선전전을 통해 서울사무소 역시 우리 투쟁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보여 주려 했다. 실제로 서울사무소는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Q. 호각이 닛토덴코 서울사무소 앞 선전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해 달라.
이훈: 옵티칼 투쟁은 그저 구미의 투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런데 사실 닛토자본이 구미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다. 평택과 서울, 일본에 다 퍼져 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선전전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닛코 자본의 본모습을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호각 내에서 서울사무소 선전전을 언제 시작할지를 두고 많이 고민했는데, 전에 구미에서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과 최현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장께 이를 여쭤본 적이 있다. '이런 걸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언제 하면 좋을까요?'라고. 사실 그걸 물어볼 때만 해도 약간은 귀찮은 마음도 있었다. 피켓을 만들고 앰프를 들고 거기까지 가서 어쩌면 경찰이나 경비와 투닥거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질문을 들은 최현환 지회장 눈빛이 정말 강렬했다. 그저 고마워한다기보다 투쟁의 한 방식이라고 느끼는 듯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때 생각했다. '아, 이건 반드시 해야겠구나'라고.
Q. 호각이 생각하는 선전전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훈: 선전전의 핵심은 아무래도 알리는 것일 터다. 공장이 불타서 사측이 청산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럴 수 있겠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닛토자본이 그동안 한국의 여러 혜택을 받으며 7조 7000억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벌었고 화재보상금으로 받은 돈만 해도 공장을 재건하고도 많이 남는데 그러지 않고 150여 명의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보냈다는 사실이 있다. 선전전은 그 사실을 알리는 작업이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말하면, 사람들이 꽤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는 게 느껴진다. 아, 우리의 말로 강남 사람들이 '억울함'을 전달받고 있다고 느껴질 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선전전을 하면서 구미에 있는 조합원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옵티칼 조합원들과 여러 연대자들이 이 싸움을 주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미에서는 당장 침탈을 막아내는 싸움을 하니까 방어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방어만 하면 언젠가 그 방어는 뚫리게 되어 있다. 서울에서 선전전을 한다는 건 단순히 알리는 걸 넘어서 공격한다는 느낌이 있다.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감각을 아마도 구미에 있는 조합원들도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서 방어와 공격을 함께 잘하고 있다는 감각 말이다.
Q.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느낀 어려움이나 생각이 있다면 들려 달라.
이훈: 아직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많이 진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나 꼽는다면, 선전전에 참여하는 인원이 다소 적은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소수라도 기세가 좋으면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기세 좋은 다수가 있을 때는 분위기를 더욱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중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이훈: 비정규직노동자쉼터 꿀잠에서 앰프를 빌려서 가져왔는데, 깜박해서 음악 플레이 리스트가 담긴 USB를 챙겨오지 않았던 적이 있다. 처음엔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어서 핸드폰 스피커에 마이크를 대는 방식으로 노래를 틀었다. 그런데 좀 허접했다. 당시 참여자가 총 3명밖에 없었는데 돌아가면서 길~~게 발언해서 1시간을 채웠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끝내고 나니 의외로 좋았다. 마이크로 길게 말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Q. 호각이 한국옵티칼 투쟁에 결합, 연대하는 이유는?
이훈: 옵티칼 투쟁이 민주노총을 포함해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를 믿고 동지를 믿고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협하지 않고 연대자에게 선을 긋지 않는 투쟁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호각이 생각하는 ‘민주노조의 투쟁’과 옵티칼 투쟁은 매우 흡사한 것 같다.
변주현: 때로는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지켜가기가 쉽지 않다.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적으로도 문제제기와 건강한 소통을 통해서 한 걸음 나아가는 투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호각은 그런 연대를 만들어 가려 하고 그런 생각으로 옵티칼 투쟁에 결합, 연대한다.
Q. 호각이 생각하는 한국옵티칼 투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더불어 개인적인 생각도 궁금하다.
변주현: 자본과 싸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외투자본은 더 어렵고 힘든 것 같다.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외투자본이 착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투자본의 실상은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지 않다. 지금 옵티칼 조합원들은 그것을 수면 위로 올리는 투쟁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더욱 지지하고 연대한다. 이와 같은 마음과 실천은 호각으로서도 품지만 같은 노동자로서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옵티칼 조합원들은 참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들도 있으니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훈: 옵티칼 투쟁은 매우 유의미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 보기 드문 투쟁이라고도 생각한다. 외투자본들은 한국에 들어와서 세금도 조금만 내고 땅도 사실상 공짜로 사용하면서 돈을 잔뜩 번다. 그러다가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노동자들을 다 나 몰라라 하고 청산해서 떠나 버린다. 그럴 때 노동자들은 감히 싸워 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내가 말한다고 뭐가 되겠어'라는 패배감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옵티칼의 경우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13명의 노동자가 뭉쳤다. 이들이 공장을 지키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심지어 비슷한 경험이 있는 KEC지회와 아사히지회 조합원들이 가족처럼 붙어서 엄호하고 있다.
옵티칼 투쟁은 자본이 달리는 열차에 대놓고 거대한 바위로 선로를 끊어 버리는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옵티칼 사측의 노조 사무실 철거 계획이 이미 어그러졌다. 조합원들을, 노동자들을 밀어내기 위해 가압류, 단수, 굴착기 등의 강한 압박 카드를 이미 썼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꿈쩍도 안 했다. 만약 내가 자본이라면, 엄청 당황했을 것 같다. 생각보다 자본에 남은 카드가 많지 않은데 노동자들은 흔들릴 기색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투쟁을 민주노총과 여러 사업장이 잘 지켜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협하지 않고 더 많은 투쟁, 더 다양한 투쟁을 통해 자본의 예상을 넘어서는 모습에서 배워야 한다. 심지어 옵티칼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조합원들은 지금보다 더 강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타협하지 않고 싸우는 투쟁, 끝낼 시기를 정하지 않는 투쟁, 연대자에게 선을 긋지 않는 투쟁, 문제제기에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Q. 호각은 언제, 어떻게, 왜 구성되었나?
이훈: 호각은 현장성이 강한 활동가 7명이 각자 활동하다가 느낀 감각들이 공동의 경험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모이게 됐다. 가장 큰 계기는 715 집회에서 노조 상근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의 투쟁을 막고 경찰 대신 조합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며 싸우는 걸 봤던 일이다. 상근활동가들은 그래 놓고 트럭에 다시 올라가서 '오늘 우리를 보면서 양회동 열사가 자랑스러워할 거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에서 민주주의가 사라져 가는 흐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정권과 경찰 등과 타협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면서도 말로는 ‘투쟁’을 외치는 게 너무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7명의 활동가들은 각자 현장에서 뛰어다니면서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이에 문제제기를 하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로 모였다.
Q. 호각의 의미는? '호각'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이훈: 호각은 '삑!' 하고 높은 소리를 내서 사람들이 정신 차리게 하지 않는가. 노동조합들이 민주적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투쟁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더 쉬운 길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저 노조가 직장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때 옆에서 정신 차리라며 누군가 말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호각은 민주주의가 잠들어 버린 민주노조에 호각을 불어서 정신 차리라며, 믿어 온 가치를 잊지 말자고 말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다.
Q. 호각의 활동 내용, 앞으로의 계획은?
이훈: 호각은 민주주의를 잊은 노동조합을 비판한다. 민주주의를 잊은 노동조합에 실망해서 아예 떠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면서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게 활동의 핵심이다. 그래서 처음에 성명서를 냈을 때도, 옵티칼에서 토론회를 열었을 때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핵심은 민주주의를 잊은 민주노조 비판과 방향성을 제시하자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비판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활동들을 해 나갈 예정인데, 당장은 다음 달 말쯤에 이런 메시지가 담긴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려 한다.
Q. 옵티칼 조합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변주현: 동지들, 집에 '손배' 날아오면 겁도 날 텐데 그래도 이탈자 없이 투쟁하시는 모습 보면 멋지고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타들어 가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주 못 가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소식 자주 보면서 감정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파이팅!
한편 오는 10월 6일부터 1박 2일로 구미 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투쟁문화제가 열린다.
많은 이들의 연대의 발걸음이 이어지길 바란다.
<연대가 희망이다! 투쟁문화제>
일시: 10월 6일 금요일 17시~7일 토요일
장소: 구미 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앞(구미시 4공단로 7길 53-29)
서울 출발: 10월 6일 12시
출발 장소: 추후 공지
주관: 비정규직 이제그만
문의: 010-7355-9826
신청: https://forms.gle/AP9L8HuuCCPTkKmZ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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