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딸기는 물을 건너고 산을 넘을 수 있을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딸기는 물을 건너고 산을 넘을 수 있을까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딸기산업 공간적 분포에 지각변동 있을 듯

최근 투자업계로 몸을 옮기면서 경제지리학 연구자로서 기대한 점은 산업 현장의 변화를 더 빨리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경제지리학은 양적 연구방법을 취하든 질적 연구방법을 취하든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런 환경은 그야말로 사례연구의 보고인 것이다.

그래서 투자 검토를 하는 와중에도 해당 사안의 연구대상으로서의 가치를 늘 생각해보고 있다. 올해 딸기 관련 산업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게 되면서 딸기산업 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딸기, 모습 바꿔가며 줄기차게 이 땅에 뿌리내려

우리나라 농식품 분야에서 딸기라는 작목 그리고 딸기산업은 그간 품종, 재배방법, 재배지역, 유통과 소비문화까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생산성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품종전환을 해야 하는 과일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목본인 6대 과일(사과, 배, 복숭아, 포도, 단감, 감귤)과 달리 딸기는 초본이어서 생산자 입장에서 품종전환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측면이 있다. 그 결과 딸기는 과일산업의 트렌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작목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딸기가 과일인가? 채소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선 학문적으로 딸기는 과일, 과채류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법적으로는(부가가치세법 시행규칙 제24조 제2항) 과일로, 통계적으로는(농업통계조사규칙 제2조) 채소의 하위항목인 과채류(열매채소)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딸기를 과일 매대에서 접한다. 식사의 일부이면 채소, 식사 후 디저트면 과일로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딸기를 과일로 보고 그동안 딸기를 둘러싼 여러 변화상을 살펴보려 한다.

우선 제철의 변화다. 한때는 여름이었다가 어느새 겨울로, 이제는 제철이 따로 없다고 볼 만큼 딸기의 제철은 바뀌었다. 재배방법이 노지에서 시설로, 토경에서 수경으로 바뀌고, 품종 또한 겨울 품종으로 전환되면서 딸기의 제철은 겨울이 되었다. 최근에는 여름에도 딸기가 출하되면서 사시사철 언제나 딸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여름 품종 딸기의 도입과 더불어 개별급속냉동법(IQF)을 통해 겨울딸기를 여름에 공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름딸기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크게 활성화되지 못해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만나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여름에는 다른 과일과의 경쟁이 치열할 뿐만 아니라, 주로 대형 제빵‧제과업체 중심의 수요독점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소규모 재배농가로서는 협상력이 낮아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술적으로는 계절에 상관없이 딸기를 재배‧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딸기로 유명한 곳 많지만전국 곳곳에서 딸기 재배

다음으로 딸기의 재배지역 변화를 살펴보자. 여러 문헌에 따르면 자생 딸기인 산딸기와 구별되는 (양)딸기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20세기 초 선교사를 통해 혹은 일본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농가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43년으로, 밀양의 한 농민이 일본 품종 10여 포기를 들여와 재배하였다고 한다(밀양시는 이 사실을 근거로 올해 '처음 맛본 태양'이라는 슬로건으로 '밀양딸기 1943'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어 1965년 수원 근교에서 국산 노지 품종인 '대학 1호'가 재배되면서 딸기 재배가 본격화됐다. 곧이어 논산 등지에서도 딸기 재배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비닐하우스가 보급되면서 오늘날 딸기는 전국적으로 재배되기에 이르렀다.

경상남도와 충청남도를 중심으로 주산지가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 제주도에서 경기 북부지역에 이르기까지 딸기 농장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딸기 주산지로 꼽히는 논산, 진주, 밀양, 담양의 재배면적을 전부 합쳐도 35% 정도이고, 특히 최대 주산지라고 하는 논산시의 경우라 하더라도 그 재배면적이나 생산량이 20%를 넘지는 못하고 있다(2022년 기준, 통계청). 소득작목으로서의 매력과 시설재배 덕분에 딸기는 전국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8월 10일 밀양시는 밀양딸기의 명품화를 위해 지리적표시 등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밀양시

앞으로 딸기 재배농가는 어떻게 무리짓게 될까

이제 딸기 재배 농가를 중심으로 딸기산업의 공간적 분포를 살펴보자. 일단 우리나라 농업의 공간적 분포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면, 사실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토지(농지)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산업의 공간적 분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헌법은 농지에 대한 경자유전의 원칙과 소작제도 금지를 명시하고 있고, 그 결과 우리 농업은 소규모 자작농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농업의 영세화와 농촌의 저개발이 심화되었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 헌법에서도 일정한 경우 임대차와 위탁농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농지법에서도 이를 재확인함으로써 농지 규모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게다가 1990년부터 농지은행 제도가 시작되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농지 규모화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이와 함께 농업의 주체인 농업경영체로서 개인인 농업인 외에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과 같은 농업법인을 인정하고 있고, 자발적 조직으로 작목별‧지역별로 작목반이나 연구회가 결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영농 주체의 조직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조직이 지역별로 단지나 특구, 공동유통시설단지 등을 조성하거나 지역특산물, 지역브랜드를 통해 유통 과정에서 다양한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

요약하자면 우리 농업은 기업농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또 개별적으로 고립된 소규모 영농도 아닌, 지역 단위로 다양한 수준의 영농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딸기산업도 마찬가지다. 개별 농가에서 재배한 딸기를 지역의 공동 가공‧저장‧유통시설을 통해 지역 브랜드로 공동 출하시킴으로써 관련 생산비용‧홍보비용을 절감하고 대형 유통업체와의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논산의 논산청정딸기산업특구(2006년 지정)나 밀양의 딸기 농촌융복합산업지구(2024년 조성 완료 예정)와 같은 딸기산업 클러스터는 이러한 기능을 고도화하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딸기 재배와 관련하여 이러한 지역적 범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딸기산업 내부에서 시도되고 있다. 기존의 '공동 가공'을 중심으로 한 일반적인 지역 중심의 딸기산업 클러스터가 아닌 새로운 민간 비즈니스 모델들이 투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투자 가능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딸기산업의 공간적 분포에 변화를 줄 만한 모델들이다.

첫째, 육묘에서 정식으로 이어지는 딸기 재배단계에서 특히 육묘 단계를 공동으로 하는 모델이다. 이를 '공동 육묘' 모델이라고 명명해보자. 이 모델은 딸기 재배의 성패를 좌우하고 고된 노동이 요구되는 육묘 단계의 어려움을 줄여줌으로써 개별 농가의 비용을 줄이고, 재배농가 중심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대형 유통업체와의 협상력을 높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후술할 '공동 종자' 모형과 달리 재배방법이 안정되고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품종을 거점 육묘장에서 키워 전국의 회원 농가에 제공함으로써 지역적 범위에 국한되지 않고 더 큰 규모화를 도모한다. 이 모델이 등장한다면 지역적 범위를 넘어 새로운 재배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글로벌 청과 유통업체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출발한 '공동 종자' 모델이다. 이 모델은 딸기 재배의 품종 선택 단계부터 공동으로 하는 모델이다. 지난 세기 글로벌 청과 유통업체에서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위탁재배를 이런 방식으로 전개한 바 있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력과 연구개발 능력을 통해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여 재배농가에 제공하고 재배교육을 병행하여 생산하는 방식이다. '공동 종자' 모델은 이 방식을 토대로 대중적인 품종이 아닌 새로운 프리미엄 품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한다.

자신의 유통채널이 확보되어 있으니 과일 소비 트렌드를 좇아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재배단지나 재배농가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있다. 이처럼 두 모델 모두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딸기산업의 공간적 분포에 또 다른 변화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이 두 가지 비즈니스 모델이 딸기산업 내에 모습을 확고히 드러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농업이 민간 주도로 지역 중심의 영세한 소규모 자작농에서 탈피해 다양한 형태로 규모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딸기산업의 공간적 분포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공간적 변화의 시사점은 우리 농업 전반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필자소개

정선화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영화산업의 자본조달과 지식축적에 관한 비교연구로 지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다양한 산업과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연구를 이어왔다.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에 출강하였으며, 다수의 컨설팅회사와 투자회사를 거쳤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

1997년 11월 한국 지리학내 전문학회로 발족한 한국경제지리학회는 국내외 각종 경제현상을 공간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연구 역량을 조직화하여 지리학의 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는 연 2회 정기 학술 발표대회와 국내외 석학을 초빙해 선진 연구 동향을 토론하는 연구 포럼, 학술지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