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미국의 일방적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해 온 저명한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책 <문명의 운명>(마이클 허드슨 지음 조행복 옮김, 아카넷 펴냄)이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재무부차관 출신 논객 폴 크레이그 로버츠는 허드슨을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수많은 담론이 국소적 정당성만을 주장하며 각축하는 공론장에서 허드슨의 책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관련해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백가쟁명의 담론장에서 교상판석을 위한 지침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다.
허드슨의 주장은 단순하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이며 소수 지대수취자계급만을 위한 건강하지 못한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나름의 건강성을 가졌던 산업자본주의의 역사를 다시 살피자고 말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특징인 금융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알던 자본주의가 아니다. 금융자본주의는 실물과 유리된 파이어부문(금융 finance, 보험 insurance, 부동산 real estate)을 이용해 지대수취자들이 개인과 기업의 소득을 편취하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다. 즉 지대수취자들만을 위해 작동하는 자본주의란 의미다. 금융자본주의는 새로운 현상이지만 지대수취자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존재해왔다. 자본주의는 지주계급이란 전통적 착취계급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해방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리카도를 위시한 고전경제학자들이었다. 리카도는 영국이 경쟁국들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해서 세계적 산업강국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1820년을 전후해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식량가격이었다. 낮은 식량가격은 노동자의 낮은 생계비지출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산업경쟁력이 되었다. 산업가들은 식량을 수입하려했고 지주계급은 높은 곡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법을 요구했다. 곡물법 폐지는 20여 년이나 지체되었다. 떠들썩했던 곡물법 논쟁은 경제학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허드슨의 설명이다.
"프랑스 중농주의자들,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은 세습 지주와 채권자, 독점자가 지대를 부과하고 상응하는 생산비가 없는 가격을 강요하는 지대수취자의 특권으로부터, 즉 봉건제의 유산으로부터 사회를 해방하는 것이 산업자본주의의 역사적 역할이라고 보았다. 18세기와 19세기에 산업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이 주도한 세제개혁운동에서 탄생한 고전경제학의 원리는 지대수취와 면세의 상속권에 기생하는 유럽 귀족의 특권을 폐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노동가치론은 지대와 독점가격, 이자, 기타 수수료에는 실질적인 비용가격이나 생산적 사업활동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대수입 대신 생산활동에 기반한 산업화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의 투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곡물법 폐지 이후 이들은 국가보조금을 이용해 저비용의 보건, 교육, 교통통신 등의 기간시설에 대한 공적 투자를 주장했다. 공적 투자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낮은 비용으로 제공되면 국민의 생활수준개선과 함께 낮은 생계비용으로 산업생산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영국 보수당과 미국 공화당이 이런 흐름을 주도했다. 공중보건법, 식량약물판매법, 교육법이 잇따라 제정되었다. 국민을 위한 서비스의 공적제공은 산업자가들에게도 이익이었다. 1차세계대전까지 이어진 이 흐름은 국가 경제활동에서 특권과 지대수취로부터 경제를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이윽고 반전상황을 맞게된다.
중간계급이 급성장하는 노동계급에 등을 돌린 것이다. 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밀어닥친 국수적 민족주의의 물결이 노동자들을 휘감았다. 허드슨의 말이다.
"중간계급은 대부분 재산권과 부에 대한 사회주의적 위협을 두려워했기에 노동자와 공동의 목표를 세우기를 주저했고, 급진적 개혁을 위협이자 침해로 보았다."
이런 추세를 가속화한 것은 19세기말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이었다. 이들은 국가의 계획과 규제에 반대했고 지주계급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던 정부를 공격했다. 이들의 생각은 이후 국가권력을 개인적 자유의 반정립으로 악마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했다. 이들의 이론적 공세는 거침없었다. 이들은 정부의 생산적 역할을 부정했다. 제임스 M 뷰캐넌의 '공공선택이론'이 하나의 예시가 될 것이다. 공공선택이론은 정치인, 고위관료들도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허드슨은 이 이론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 몹시 분노한다.
"정부 관료들이 행하는 것, 즉 정부 관료들이 민간부문에 손해를 끼치며 권력과 부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지대 추구의 의미를 바꾼 것이다."
정부의 정책결정자 역시 이익집단에 불과하다란 주장으로부터 정부의 역할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이들은 또한 모든 소득은 생산적 활동의 산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지대' 개념 자체를 삭제하고자 한다.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베이츠 클라크는 책 <부의 분배>에서 모든 소득은 수취자가 생산기여분에 비례하여 번 것이라 주장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지대수취자계급의 지대는 정당한 소득이 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금융부문의 지대가 생산활동으로 분류돼 GDP에 포함된다. 그래서 지대가 증가하는 것뿐임에도 경제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경제가 성장하는데 서민은 가난해지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개혁과 반개혁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80년대 레이건, 대처가 대표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다. 공적 서비스를 민간에 옮김으로써 신자유주의는 미국 시민의 실질구매력을 하락시켰다. 실질구매력이 줄어드니 부채를 발생시켜 가공의 구매력을 만들어낸다. 부채로 간신히 유지되는 경제는 결국 부채디플레이션을 촉발한다. 부채는 주로 부동산에 집중된다. 허드슨의 정책 아이디어는 결국 하나다. 부동산에 과세해 이것을 서민의 복지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기본소득 아이디어와 흡사하다. 부채의 압력 때문에 여타 물품에 소비할 여력이 줄어든다. 소비가 없으니 생산활동도 부진해진다. 제조업의 공동화로 미국 산업의 국제경쟁력은 더욱 하강한다. 남은 것은 달러패권뿐이었다. 금태환폐지 이후에도 무역흑자국은 달러를 처리하기 위해 미국의 채권을 살수 밖에 없었다. 막대한 해외 생산품을 공짜로 구매하기 위해 미국은 달러를 마구 찍어냈다. 달러패권 유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산업국가로서의 경쟁력약화를 상쇄하고 달러패권의 달콤함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적 개입주의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1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군사비는 외국에 넘기는 종이로부터 나온다.
미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것일까? 마키아벨리가 힌트를 준다. 마키아벨리는 전쟁 승자가 패배국가를 통치하는 방법에 대해 한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자신들의 법에 따라 살게하면서 조공을 받고 우호적인 과두지배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종속국가(vassal)에 외세의존적인 지대수취자계급을 권력자로 만드는 일이다. 종속국의 지대수취자계급과 미국 금융자본은 이해를 같이 한다. 국내의 천연자원, 기간시설을 미국 금융자본에게 내어주고 한몫을 챙긴다. 친서방적이고 반공산주의적인 푸틴이 악마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옐친이 외국 금융자본에 내어놓은 먹이감을 푸틴이 거두어들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공적 자원을 강탈한 올리가르히의 일원이자 러시아 최대 부호였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자신의 석유회사 유코스를 엑슨에 매각하려던 시도를 푸틴이 막아낸다. 푸틴은 이후 독재자 타이틀을 달게 된다. 집단서방 이외 지역에서 독재자 칭호는 대체로 외국 금융자본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려는 민족주의적, 민중주의적 열망을 가진 지도자들에 부여된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더불어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해 집요하게 적의를 품고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갈등은 단순한 국가 간 무역경쟁보다 더 심하다. 화폐와 신용, 토지, 천연자원, 독점사업이 사영화(옮긴이는 민영화를 사영화로 번역-필자주)되어 지대수취자 과두집단의 수중에 집중될 것인지 아니면 전체적인 번영과 성장의 촉진에 쓰일 것인지가 근저에 놓인 문제다. 이는 기본적으로 경제체제로서의 금융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간의 싸움이다."
허드슨은 인간 사회가 과두지배체제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는 과두체제를 극복하고 민중주의체제를 성취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이것은 5천년간의 중근동 역사, 유럽사를 부채의 측면에서 일관한 연구의 결론이다. 얼마전 출간된 <고대의 붕괴>(the collapse of antiquity-한국 번역본 미출간)가 그 연구의 성과물이다. 허드슨에 따르면 지난 수천년 문명사에서 고대가 오히려 친민중적이었다. 저자의 설명이다.
"기원전 3000년 수메르부터 기원전 1000년대 신아시리아 제국과 신바빌로니아 제국, 이집트 제국까지 통치자들은 원상회복선언(clean slates)으로 부채를 말소하고 채무노예를 해방하고 채권자에게 땅을 빼앗긴 채무자들에게 자급할 수 있도록 토지를 돌려주어 주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를 거치면서 서양문명은 이런 근동의 민중주의 정신을 상실하고 과두지배체제로 굳어졌다. 민중파 지도자들은 '참주'라는 오명을 쓰고 제거되었다. 개혁을 강력히 진행하면 '왕이 되려한다'는 의심을 받고 암살되었다. 개혁 지도자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는 42퍼센트의 고리대를 받던 인물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파렌티의 책 <카이사르의 죽음>(마이클 파렌티 지음, 이종인 옮김, 무우수 펴냄)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로마의 창설자 그라쿠스형제조차도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20세기 후반이 되자 미국민 99퍼센트가 채무자가 된다. 주거비, 의료비 등 최소생활비만으로 가구소득의 70퍼센트가 빠져나간다. 금융부문의 불로소득이 정당한 소득으로 취급되기에 통계상으로는 호황이다. 미국금융과두집단은 국내만이 아니라 외부를 향해서도 덫을 설치한다. 달러헤게모니다. 미국의 핵심 목표는 금융지대수취자 과두세력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산업선진국에 종이에 불과한 달러를 넘기고 그 돈을 이용해 글로벌사우스를 채무자로 만든다. 미국은 빌린 돈으로 채권자가 되어 글로벌사우스의 자원과 부를 착취한다. 이것을 거부하는 개혁적 민중파 지도자는 독재자가 되어 제거대상이 된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흐름이 되었지만 중국은 동참하지 않았다. 중국의 성공은 중국이 실천한 혼합경제 덕분이었다. 글로벌사우스 국가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순혈자본주의도 순정사회주의도 아닌 중국식 혼합경제를 따라가야 한다. 국가가 금융을 위시한 공적 서비스부문을 확실히 틀어쥐면서 시장의 역동성을 결합하는 혼합경제만이 성공할 수 있다.
허드슨의 책은 금융자본 과두집단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탁월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따라서 실천 로드맵을 그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고백인 듯한 글을 덧붙인다.
"민주적 혁명으로 출발한 경제개혁 운동은 서구에서 실패했다. (중략)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서구는 민주적 개혁을 되살려 과거의 진보적 경로로 되돌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최종적인 개혁에는 혁명이 필요한가? 혁명은 확실히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구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저자는 일국만의 급진적 사회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본다. 한 국가만의 급진적 구조개혁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세계적 수준에서의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의 퇴조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누가 뭐라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다.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개혁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권력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다. 허드슨의 말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금융화한 과두지배체제로 변질되는 경향에 그다지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한 운명을 피하려면 유산 금융계급에 장악되지 않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필요하다. 역사를 통해 보건대 그러한 권력은 청동기 시대 근동의 왕궁지배자나 오늘날의 사회주의 경제에서만 출현했다" "바빌로니아와 비잔티움 제국의 통치자들이나 20세기 사회주의 정부처럼 강력한 통치 세력만이 금융집단과 기타 지대수취자집단을 억제할 수 있었다" 조선이 몰락하게 된 원인의 하나인 세도정치도 왕권이란 절대권력의 형해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강력한 권력중앙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지대수취 과두집단이 권력을 탈취한다. 철학자 김용옥의 "왕정이냐 민주냐"는 그런 의미에서 권력의 역사를 잘못 집었다. 경제학자 허드슨만이 아니라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책 <정치질서의 기원>(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함규진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비슷한 논리를 전개했다.
"인정(人情)에 치우쳐 자기 가족과 친지들에게 특혜를 주려하는 성향(그것을 '가산제 patrimonialism'라고 한다)은 그런 성향을 억누르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없는 한 계속해서 불거져 나온다."
공적 관계가 중요해지는 국가 성립 이후에도 후쿠야마는 공적 영역을 사유화하려는 친족 가산그룹 또는 가산그룹보다 좀 더 넓은 외연인 부족집단의 등장을 '재가산제화', '재부족화'라며 국가 붕괴의 핵심요인이라고 말한다. 허드슨이 말하는 과두집단은 후쿠야마의 가산집단과 흡사하다. 한국처럼 언론, 정치, 경제계가 혼맥으로 얽혀있는 경우는 재부족화를 더욱 악화시킨다.
필자가 사이토 고헤이의 책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서평에서 철학자 한병철의 권력론을 거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서평에서 이렇게 적었다.
"한병철은 <권력이란 무엇인가>(한병철 지음 김남시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권력의 시대로부터 급속하게 멀어지고 있다. 권력은 단 하나의 목소리에 절대적 타당성을 부여할 때 가장 빛난다' 필자는 탈성장 코뮤니즘이 설렁설렁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재앙, 자본주의의 위기가 맞물려 미증유의 혼란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시스템을 포함한 상부구조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상부구조 개혁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 권력의 개념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권력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외세종속적인 지대수취자계급을 넘어서기란 불가능하다는 허드슨의 생각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 러시아는 금융과두집단이 주도하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집단서방 주류언론(MSM)의 프로파간다가 웬만한 지식인조차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서 스콧 리터, 더글러스 맥그리거 등 독립적인 군사전문가들을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중국이 집단서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소프트파워라는 일상의 매력만이 아닌 이념적 매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자신들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중국 지식인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중국연구자 백지운의 논문 <일대일로와 제국의 정치학>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들은(윈톄쥔, 황더싱-중국의 저명한 학자들 필자주) '일대일로'가 내세운 '평화발전' 슬로건에 영혼이 없다고 질책하면서, 이 기획의 성패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에 도전할 문화적·사상적 힘을 담은 자생적 사회정의 담론을 창출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격변의 시대에 대한민국은 곤고하다. 이념의 단층선 최전선에 대한민국은 위치한다. 집단서방의 온전한 일원이 되지도 못하고 글로벌사우스에 주체적으로 동참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위태로워진다. 그 위태로움은 조만간 실존적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 성향의 독자에게는 임노동과 자본의 갈등이 빠져있기에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자유주의성향의 독자에게는 혼합경제에 대한 찬사와 중국에 대한 편애가 마음 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극우화가 진행되는 전세계적 정치환경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혼합경제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진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부동산 과세와 기본소득을 생각하는 정치집단에게는 필독의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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