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를 대상으로 개각을 단행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문체부 장관 후보자에 유인촌 대통령 문화체육특보, 여성부 장관 후보자에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을 각각 지명했다.
특히 강경보수 면모를 보여온 신 의원과 유 특보를 국방과 문화 정책 책임자로 지명하면서 윤 대통령이 이끄는 '이념 전쟁'이 더욱 거칠어질 전망이다. 유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김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사인 만큼 '과거 회귀' 개각이라는 비판도 불가피해졌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신원식 후보자에 대해 "국방정책과 작전 분야 모두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췄다"며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안보 역량을 견고히 구축하고 국방 혁신을 완성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했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은 사실상 문책성 교체라는 평가가 많다. 현 이종섭 장관은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도중 숨진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에 외압을 행사한 의심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문책성 인사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이종섭 장관 재임 기간이) 1년 4개월 됐다. 보통 이 정도면 과거에도 교체했다"면서 "채 상병, 해병대 (문제는) 이번 인사에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윤 대통령은 다만 야당의 탄핵소추를 피해 선제적으로 밝힌 이 장관의 사임 의사를 수용하지는 않았다. 이 관계자는 "안보 쪽 공백은 하루라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수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강경파로 알려진 신 후보자를 후임으로 지명함으로써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정면으로 맞대응 하고 대북 강경 노선에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신 후보자는 "대내외 안보 환경, 여러가지 도전이 심각하다"면서 "군인다운 군인,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신 후보자는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합동참모차장 등을 지낸 예비역 중장 출신이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국회 국방위 여당 간사와 국민의힘 제4정조위원장을 맡아왔다.
특히 그는 육사에 배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부터 '홍범도 이력'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신 의원은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나 그 뒤 내용은 자유시에서 거의 1500명 되는 우리 독립군의 씨가 마르는 데 주역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육사 내 공산주의자 홍범도 흉상은 반드시 제거돼야 한다"며 "공산주의자라도 항일운동만 했다면 무조건 순국선열로 모시는 행위는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3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홍 장군을 "'무늬만 공산당원'이 아닌 '뼛속까지 빨간 공산당원'"이라며 "'반공'의 정체성 속에 태동하고 성장·발전해온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와 국군이 '공산당원 홍범도'를 기리고 추앙케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고 주장했다.
신 후보자는 해병대 박정훈 대령에 대해서도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해병대원의 마지막을 정치꾼들의 불쏘시개로 마감하려고 하냐"면서 "3류 정치인 흉내를 멈추라"고 박 대령과 야권 연계설을 주장해왔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 후임으로 지명된 유인촌 후보자는 대표적인 'MB맨'이다. 국정원 '문화계 좌파 인사 찍어내기' 논란이 일었던 이명박 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다. 당시 문체부 2차관이던 김대기 비서실장과 호흡을 맞췄다.
김 실장은 유 후보자에 대해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이해와 식견뿐 아니라 과거 장관직을 수행한 만큼 정책 역량도 충분히 갖췄다"면서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K컬처의 한 단계 높은 도약과 글로벌 확산을 이끌 적임자"라고 했다.
유 후보자는 인사말에서 "요즘 굉장히 빠르게 현장이 변화하고 있다. 현장에 맞게 지원하는 모든 방식도 새롭게 더 빨리 쫓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특히 청년 예술가들이나 창조적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끊임없이 국가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에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신설된 대통령 문화특보에 임명된 지 두 달 만에 그가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주호 교욱부총리,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유 후보자까지 중용돼 'MB맨 복귀'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행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인사다. 언론인 출신인 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여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을 지냈다.
김 실장은 김 후보자에 대해 "언론, 정당, 공공기관에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소통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전환기에 처한 여성가족부 업무를 원활히 추진할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여성부 장관 교체도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파행과 관련해 김현숙 장관을 사실상 문책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윤 대통령이 폐지를 공언한 데다 잼버리 파행 사태를 겪으며 위상이 실추된 여성부에서 김 후보자가 운신의 폭을 확보할지는 미지수다.
김 후보자는 "여성부는 대통령이 폐지를 공약한 부처이지만, 존속하는 기간 동안 고유의 업무가 있다"면서 "생명의 존엄성, 가족 가치,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유일한 부처"라고 했다.
안보, 문화 정책의 강경보수 회귀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올드보이' 귀환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워진 이번 개각을 둘러싸고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여야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서 과거 정부에 한 번 몸을 담았나 안 담았나는 우리 정부에서 큰 기준이 아니다"며 "가장 중요한 건 전문성, 책임성을 가지고 현재 그 자리에서 역사적 소명을 다할 수 있느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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