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개 역사단체가 윤석열 정부에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을 중단하고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13일 한국역사연구회, 역사학회 등 51개 역사단체는 서울대학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동성명서를 통해 "대통령은 이념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국가안보실장은 홍범도의 후반기 삶이 육사 교육에 맞지 않다고 했다"며 "육사와 국방부의 독립운동 역사 지우기, 독립운동에 대한 색깔론 제기가 윤석열 정부와 공감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명백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육군 장교 양성의 산실인 육사가, 독립운동의 역사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자신들의 편협한 주관에 따라 재단하는 것을 우리 역사·역사교육 연구자들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국방부가 주장한 철거 논거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홍범도 장군이 1921년 자유시참변 당시 독립군 살상에 관여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 "그동안 역사학계는 다양한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자유시참변의 기본 성격이 통합 방법을 둘러싼 독립군 부대들의 내분이었음을 밝혀냈다"며 "사망자를 낳은 무장해제의 책임은 고려혁명군 지휘부에 있었다. 홍범도는 유혈 사태를 우려했고 무장해제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범도 장군이 빨치산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해 "빨치산은 비정규군이라는 뜻으로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나 의병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며 "더욱이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에서 홍범도가 이끈 빨치산 부대는 3‧1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부대였으며, 독립전쟁의 주역이었다"고 지적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에는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는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었고, 좌우를 막론하고 독립운동 세력은 소련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그러기에 이승만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도 외무차장 이희경을 모스크바에 파견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홍범도는 1922년 모스크바의 원동민족혁명단체회의에 참석하면서 '입국신고서'에 직업은 '의병', 입국 목적과 희망은 '고려 독립'이라 썼다. 그는 1927년 59세의 나이에 소련공산당에 입당했으나,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이주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이주지에서 홍범도는 한인 사회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버팀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육사와 국방부, 정부의 왜곡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자랑인 평민 의병장, 대한독립군 대장, 북로정일제일군 사령관 홍범도가, 50만 고려인의 상징인 홍범도가 부관참시당했다"며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 흉상 철거 계획으로 야기된 사회적 논란에 상처를 입고 모욕을 받은 국민과 동포에게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가 돌출된 사태가 아니라 현 정부가 벌인 일련의 '역사 부정'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 깊이 우려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도 문제 삼았다.
이들은 "대통령은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라 강조했으나, 3·1 독립선언과 상해 임시정부 헌장, 국내외 무장투쟁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통령이 힘써 강조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는 말은 국가보훈부의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과 연결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현 정부는 이승만 중심의 건국사만을 대한민국의 정통으로 강조하고 그와 결이 다른, 다양하고 풍부한 독립운동사를 배제하려 한다. 독립운동의 주요 세력이었던 좌익은 퇴행적인 '냉전적 역사인식'으로 몰아내고, 우익 중에서도 이승만을 탄핵했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김구와 임시정부 세력은 떼어낸다"고 진단했다.
이어 "반면에 이승만 정부가 제대로 척결하지 못했던 친일파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가보훈부는 백선엽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항일 독립운동 계승이다. 현 정부에 우리의 정체성이 항일인지 친일인지 묻고 싶다. 일본과 관계 개선을 빌미로 일본제국주의와 싸웠던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남짓에, 우리 역사·역사교육 연구자들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 벌써 두 번째 목소리를 모았다"며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한 반성 없이 독립운동사 왜곡, 민주주의 파괴자 기념, 역사교과서 개악으로 나아간다면, 우리 역사 연구자들은 세 번째, 네 번째 목소리를 더 크게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 참여한 역사단체는 다음과 같다.
강원사학회, 고려사학회, 냉전학회, 대한의사학회, 도시사학회,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명청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백산학회, 백제학회, 부경역사연구소, 부산경남사학회,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웅진사학회, 역사교육연구소, 수선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와교육학회, 역사학연구소, 역사학회, 연세사학연구회, 의료역사연구회, 일본사학회, 전국역사교사모임, 전북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중국근현대사학회, 중국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러시아사학회, 한국미국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한국여성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한국프랑스사학회, 호남사학회, 호서고고학회, 호서사학회(가나다 순, 이상 5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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