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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초대석] '포항의 힘 새로운 물결' 최용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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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프레시안 초대석] '포항의 힘 새로운 물결' 최용규 변호사

포항서 36년 만의 검사 출신 내년 총선에 도전장

국민의힘 ‘텃밭’인 경북 포항남·울릉지역에 검사 출신 최용규 변호사가 내년 4월 10일 총선에 출마표를 던졌다.

포항서 법조인(검사) 출신이 총선에 출마하는 것은 11,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진우 국회의원 이후 36년 만이다.

최용규 변호사는 검사 시절 법무·검찰개혁 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울릉군에서 태어나 포항 대동중·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 지난 1997년 사법시험 39회(연수원 29기)에 합격해 2000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 연구관, 광주지검 장흥지청장, 부산지검 동부지청 등에서 근무했다.

이후 2017년 법무부 법무검찰개혁단장을 맡았으며, 대전고검 부장검사, 대구고검 부장검사를 끝으로 지난해 12월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프레시안은 내년 4월 치러지는 포항남·울릉군 총선 출마자들과 만나 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최용규 변호사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살아온 길을 얘기해 준다면.

저는 울릉도 섬소년 출신입니다. 부모님이 결혼한 지 19년 만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모님은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외아들의 교육을 위해 뭍으로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청룡호를 탄 세 식구는 그렇게 포항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생계 대책이 없어 아버지는 막노동판으로, 어머니는 생선 가공공장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당신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부모님은 가난하지만 양심적으로 사셨으며 외아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자상하면서도 때로는 엄하게 키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부모님의 희생 없이는 저의 인생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송도초등학교에 입학한 저는 영흥초등학교를 거쳐 대해초등학교에서 졸업했고, 대동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초·중·고 시절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공부도 곧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덕분에 친구가 많았고 그 친구들이 지금도 든든한 힘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은 법대를 선택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는 무엇인지, 정의로운 세상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고, 이런 고민이 저를 법대로 이끌었습니다.

▲검사 생활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다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가 된 저는 양심에 따라 법률을 해석하고 정의롭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검사가 가야 할 정도(正道)라고 여겼습니다.

인상 깊었던 경험은 2010년부터 3년간 국회 법제사법위원에 파견되었을 때입니다. 이 파견 근무를 통해 입법 과정과 예결산 실무를 충분히 경험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운영 방식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소탈한 성격 덕분에 공직에 있는 동안 중앙정부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정치인의 길을 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막연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를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뜻을 품어왔습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님과 이웃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마음의 씨앗이 싹을 틔운 것 같습니다.

정치의 길을 가야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 겪은 일 때문입니다. 당시 법무부의 법무검찰 개혁단장으로 근무하던 저는 개혁을 표방하면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려는 시도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뜻을 건의했다가 좌천되고 말았습니다.

한직으로 밀려난 저는 진정한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올바른 실현을 위해서는 법치주의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혼란을 바로잡고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며, 지방도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에 품고 있던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가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자 “변호사로서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데 왜 힘든 정치를 하느냐”고 걱정해주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물론 변호사도 공정한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저는 민심이라는 큰 바다에서 “나를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어릴 때부터의 포부를 펼쳐보고 싶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가야 하는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저는 보수주의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버크의 책을 탐독하며 한국 보수가 가야 할 방향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버크는 사회질서와 공공선(公共善)에 해가 되는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시민의 행복과 정의를 실현하며,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정치철학을 펼쳤습니다.

물론 버크가 살았던 18세기 영국과 지금의 한국은 너무나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버크의 통찰에서 한국 보수가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 보수가 국민의 행복과 정의를 위해 계속 변화하고, 더 유연하고, 더 따듯한 길을 간다면 훨씬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조인이 정치를 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며, 법조인은 법치주의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조인은 국가와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화를 도모할 수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조인은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확고한 국가관이 필요합니다. 신냉전 시대에 한미 공조를 통해 중·러에 대한 원칙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북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사회 일각의 북한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역 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방향을 얘기해 준다면.

수도권 집중 때문에 지방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형편입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하루빨리 해소하고 균형 발전을 이루도록 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포항이 더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고 전문가들의 조언도 경청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상하는 미래 포항의 큰 그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첨단전략산업을 중점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포항은 산학연 클러스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큰 강점입니다. 이 클러스터를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차전지, 바이오, 수소,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의 융복합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첨단전략산업을 발굴, 육성해야 합니다.

둘째, 포항의 벤처기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벤처기업은 지금 묘목 단계이지만 잘 성장하면 나무가 되고 숲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작아 보이는 벤처기업이 미래에는 포항의 산업을 이끌어나갈 것입니다. 포항의 미래를 내다보고 벤처기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셋째, 바다에서 포항의 더 큰 미래를 모색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포항에는 204km의 긴 해안선이 있고, 울릉도·독도와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산업과 문화, 관광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다는 무한한 보고입니다. 경상북도에서 가장 긴 해안선, 그리고 울릉도·독도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바라보면 바다에서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16세기 월터 롤리의 명언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포항에 기업과 자본, 인재가 몰려오기 위해서는 정주 여건 개선에 힘써야 합니다. 정주 여건이 좋은 곳에 큰 투자가 가능합니다. 포항의 경우 문화와 의료, 교육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합니다. 포스코와 포스텍의 성공 배경에 국내 최고 수준의 주택단지와 유·초·중·고를 연계한 교육재단, 문화시설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저의 이러한 구상은 계속 다듬어나갈 것입니다. 포항의 더 큰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분과 상의해 나가겠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포항의 어머니 집 문에는 ‘국가 유공자의 집’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습니다. 6·25전쟁 때 신병훈련소에 갔다가 수술받고 귀가한 아버지의 유산입니다. 저의 부모님처럼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반듯하게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이러한 신념을 세상 사람들도 믿어주고 함께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런 낙관으로 울릉도 섬 소년은 정치의 큰 바다에 나섰습니다.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용규가 걸어온 길]

1969년 울릉군에서 태어남

학력 포항 대해초, 대동중·고, 서울대 법대 졸업(87학번)

경력 사법고시(39회)/사법연수원(29기), 초임 서울중앙지검 발령, 대검찰청 연구관, 법무부 법무·검찰개혁단장, 국회 파견검사, 광주지검 장흥지청장,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 부산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현)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현)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최용규 변호사가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잇다.ⓒ최용규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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