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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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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노동하는 자유인의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①

기후위기가 만드는 낯선 신세계

세상은 늘 바뀝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비로소 미국과 유럽의 일반 인민들에게 강한 충격과 함께 인식되기 시작한 기후변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체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문턱을 넘어 그런 세상의 거대한 폭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낯선 세상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경험했던 세상의 모습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세상일 것입니다.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는 적응과 변이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장기비상시대가 되리라 짐작할 뿐입니다.(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장기비상시대, 2011.)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유엔의 전문기관인 세계기상기구(WMO)와 산하기관인 유엔환경계획(UNEP)에 의해 1988년 설립된 조직입니다. IPCC는 2018년 10월 우리나라 인천 송도에서 개최한 제48차 총회에서 전 세계 195개국 합의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채택, 발표한 바 있습니다.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18세기 중반부터 본격화된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을 1.5도 상승 선에서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전세계 국가가 온실가스를 거의 혁명 수준인 절반 정도로 감축해야 한다는 절박하고도 강력한 권고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 국가간 통행과 교류가 중단되고 사람들도 거의 집 안에만 갇혀 지낸 2020년을 제외하고 온실가스는 해마다 큰 폭으로 더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1.5도 상승은 이제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기후학자들 사이에서는 2도 상승도 막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 있습니다.

▲ 2018년 10월 제48차 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최종 승인됐다. ⓒIISD/ENB, Sean Wu

지금도 계속되는 기후변화 중얼중얼

1992년 브라질의 리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185개국 정부 대표단은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협약, 곧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을 맺었습니다. 벌써 31년 전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시행령은 5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교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발효된 것은 1992년으로부터 무려 13년이 지난 2005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미국은 아예 발효되기도 전인 2001년에 탈퇴해버렸습니다. 교토의정서는 2011년 캐나다, 2012년 일본, 러시아가 탈퇴하면서 의정서 자체가 효력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1.5도 특별보고서는 전세계 40개국에서 223명의 과학자가 참가해 6천 건이 넘는 기후과학 논문들을 집대성해 작성되었습니다. 리뷰에 참여한 학자만 해도 1,113명에 이릅니다.

IPCC 보고서는 참여 과학자들 모두의 합의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과학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100% 확신을 하지 않고 대체로 몇 %의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확률을 제시합니다. 때문에 과학자 모두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최저 수준의 내용으로 이른바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990년 1차 보고서에서 참여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인간 영향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기술합니다. 2001년 3차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가 인간 때문일 확률을 66%로 보았습니다. 2013년 5차 보고서에서는 확률이 95%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6차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모두, 그러니까 100% 인간 활동 때문에 초래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보고서는 IPCC 회원국에게 제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각국의 행정관료들이 보고서 속 문장을 확인하고 투표로 공개여부를 결정합니다. 예컨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화석연료 사용 때문이다"라는 초안은 결국 보고서에서는 "온도 상승은 온실가스 증가 때문이다"로 표현됩니다.

"온실가스 상위 배출 당사자가 주요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항공 부문에서 상위 1%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50%를 차지한다"는 문구는 결국 삭제되고 맙니다.

IPCC 총회가 화석연료 업체들의 로비 무대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1992년 리우기후정상회의 이후 30여년 동안 각국의 정치인들은 IPCC 총회에 와서 기후변화 중엉중얼 회의만 끝없이 하고 성명서만 발표했습니다. 과학자들 또한 확률 숫자를 놓고 따지는 논쟁을 끝없이 되풀이해 왔습니다. 그 사이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로 표현이 바뀌었고, 창백하고 푸른 별 지구 행성은 인류를 비롯한 뭇 생명체 전체의 생존이 불가능한 여섯번째대멸종의 세상으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중입니다.

2022년 4월 과학자들의 멸종저항 단체인 과학자반란(Scientist Rebellion)이 길거리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IPCC와 NASA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구호는 "1.5도는 죽었다.(1.5⁰C is Dead)"였습니다.

알로하오에(Aloha Oe), 잘가라 개발과 성장의 세상!

1958년 3월 29일,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 지구시스템연구소(ESRL)는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화산 해발 3,396m 지점에 세계 최초의 온실가스 관측소인 마우나로아관측소(Mauna Loa Observatory)를 세웁니다. 지금도 미국이 운영하는 전세계 90여 개의 관측소 가운데 첨병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초대 소장은 킬링 곡선으로 유명한 찰스 데이비드 킬링이었습니다.

마우나로아 관측소가 최초로 측정한 이산화탄소 농도는 313ppm이었습니다. 250~300년 전인 산업화 이전의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략 280ppm으로 추정합니다.

리우회의가 열린 1992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평균은 357ppm이었습니다. 3백여년 동안 약 30여 ppm이 증가했습니다.

2013년 5월 마우나로아 관측소의 이산화탄소 측정치가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던 마의 400ppm을 넘어섰습니다. 20여년만에 무려 약 50여 ppm이 증가한 것입니다.

2023년 8월의 평균 이산화탄소 측정값은 422.14ppm, 1년 전인 2022년 8월은 418.85 ppm입니다.(www.esrl.noaa.gov)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 오늘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이상기후를 직간접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에 걸쳐 기후재난은 사람들을 종말론의 공포에 휩싸이게 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숲이 갈색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북극과 남극, 히말라야 등의 빙하가 급속하게 녹아가고 있고, 시베리아 툰드라의 영구동토층도 녹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높은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분출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산불과 폭염, 태풍과 폭우 등 기후재난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바다 속은 산호초와 물고기, 조류 등이 죽거나 사라진 바다사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주도 연근해의 1/3이 급속하게 그같은 바다 사막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기후재난이 방아쇠를 당긴다, 문명과 국가의 붕괴

지금으로부터 4천 2백년 전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아카드 제국은 제국을 건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단기간에 무너져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몇 년 간 지속된 대규모의 혹독한 가뭄과 식량부족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4세기부터 1850년대까지 계속된 '소빙하기'의 유럽은 전례없는 강풍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 소빙하기: 기원후 10~14세기 사이에 북대서양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기온이 상승한 시기를 중세 온난기라 하고, 이후 15~19세기까지 낮은 기온으로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에서 빙하가 확장된 시기를 소빙하기라 부릅니다. 영국의 고기후학자 휴버트 램 Hubert Lamb이 1965년에 최초로 제기한 가설로서 지금은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습니다.)

1588년 8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궤멸시킨 것은 영국 전함의 대포가 아니라 그들을 강타한 광풍이었습니다.

악화되는 소빙하기 기후에 프랑스에서는 흉작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1788년 대흉작의 여파로 굶주림에 시달리던 프랑스 농민들과 노동자, 도시 빈민층 등 제3계급이 궐기해 이듬해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브라이언 페이건,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예지)

1845년부터 1849년까지 4년 동안 아일랜드의 대기근 사태와 아메리카 이민 물결도 단일 품종 재배와 소빙하기 기후변화로 인해 감자 줄기가 말라 죽는 늦동고병(胴枯病, late blight)의 창궐 때문이었습니다. 인구 8백만의 작은 섬나라에서 1백만 명 이상의 주민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약 2백만 명이 아메리카로 탈출했습니다. 지금도 미국 전체 인구 가운데 아일랜드계는 10%대에 달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1670년(庚戌年)과 1671년(辛亥年)의 경신대기근 사태는 소빙기의 기후변화로 잦은 홍수가 일어나 흉작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때 수많은 아사자들이 속출했습니다. 20년 뒤인 1695년부터 4년여 계속된 을병대기근 또한 수많은 사람이 죽은 기후재난이었습니다.(박정재, 기후의 힘, 2021).

게르만족의 대이동도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부족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가 멸망했습니다. 몽고의 서진과 유럽 침략도, 훈족의 대이동도 기후변화가 원인이었습니다. 마야문명, 앙코르와트의 몰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제국과 도시국가 등 국가의 멸망은 어떤 한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기후 탓으로 돌리는 기후환원론은 인류의 기후 적응력과 창의력을 고려하지 않고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환경결정론으로서 잘못된 숙명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카드와 이집트 고왕국은 내부의 권력투쟁과 함께 정치 체제,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복합 요인이 뒤엉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붕괴의 방아쇠를 당긴 핵심 원인이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식량위기였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집달리는 오지 않았지만, 기후재난 차압딱지는 이미 붙여졌다

약 3세기 전 영국에서 뿌리내려 확산되기 시작한 자본주의는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결합해 인류의 생활 방식을 그 이전까지와는 백팔십도 다르게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산업화는 더 이상 기후변화와 자연 환경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해방'을 추구했습니다. 자연은 그 속에서 인간이 빚어진 경이롭고 신비로운 생명의 세계에서 인간의 기술과 힘에 의해 조작 가능한 하나의 대상, 유기체 기계로 격하되었습니다.

산업화의 원동력은 석탄, 석유, 가스 등 땅 속에 묻혀 있던 화석연료였습니다. 화석연료를 채굴해 불태워 그 에너지로 기계를 돌리고 배와 기차, 자동차와 비행기를 움직였습니다. 화석연료에서 화학염료와 화학섬유, 플라스틱 등 수많은 탄소 사슬의 화학물질을 추출해 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새로운 상품 시장경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몇몇 자본주의 선발국에 국한돼 있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가 전지구로 확산돼 지구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부터입니다. 산업화 시대를 그래서 지질학계에서는 '인류세'로 명명하자는 제안까지 나와 있는 실정입니다.(클라이브 해밀턴, <인류세>, 이상북스, 2018.)

땅 속에 잠들어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산업혁명 이후 2세기 넘게 단기간에 깨워 공기 중으로 퍼뜨린 결과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지옥 문이 활짝 열리고 만 것입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중동지역과 북아프리카 주민들의 유럽으로의 대량 탈출, 이를 막는 국가들과 이로 인한 유럽 전역의 극우 정치세력 성장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의 내전과 전쟁 등이 주요 요인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과 식량 부족 등 기후재난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그렇게 심각한 기후재난이 몰아닥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기후재난 사태의 집달리가 도착하지 않았을 뿐 차압 딱지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발행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기후재난은 집달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도하고 있을 그런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기후재난은 이미 우리 안에 도착해 있습니다.

상황이 이와 같음에도 기후위기에 대한 한국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대응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부에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구호와 선언을 넘어선 기후행동과 실천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글은 한국ILO협회의 <국제노동> 255호[2023년 여름호]에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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