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검찰단이 채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항명' 혐의로 입건한 이후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군사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이에 '외압' 의혹에 대한 규명이 본격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일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국방부 검찰단이 박 전 단장에 대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군 검찰은 박 전 단장에 대해 '항명' 및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적시했는데, 법원은 박 단장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적다며 사전 구속을 허가하지 않았다.
법원은 "1일 18:45경 항명 등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박정훈 대령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며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지금까지의 수사진행경과, 피의자가 향후 군수사절차 내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다짐하는 점, 피의자의 방어권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는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 및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인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박 전 단장은 사전 구속영장 기각 이후 "감사하다. 많은 성원과 응원에 힘입어 버텨온 것 같다"며 "앞으로도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서 꼭 저의 억울함을 잘 규명하고 특히 고(故) 채 상병의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가 잘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단장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어려운 환경속에서 국민 눈높이와 상식에 맞는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며 "(이런 결과를) 판사님이 고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안타까운데, 이런 환경에서 용기를 내주신 판사님께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앞서 8월 31일 <MBC>는 국방부 검찰단이 박 전 단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에 기존에 입건한 혐의인 '항명'외에 이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했다고 보도했다. 군 검찰은 박 전 단장이 기자회견과 방송 출연을 통해 허위 사실을 주장해 명예를 더럽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에 따르면 군 검찰은 구속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박 전 단장이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적시했는데, 사실확인서 작성을 요청해 이를 제출받고 언론에 실명을 공개하면서 증거를 인멸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공공에 수사 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두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한 셈이다.
이에 대통령실이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에 개입했다는 박 전 단장의 진술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 군 검찰이 무리하게 구속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방송에 따르면 군 검찰은 실제 영장에 "언론에 계속 유출되는 것을 신속히 중단시킬 필요성이 있는 바"라며 박 전 단장의 공개 발언이 문제가 됐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8월 29일 방송은 박 전 단장이 군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 대통령실 개입 정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박 전 단장이 지난 7월 31일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보고서에 대해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진술이 등장했다고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김계환 사령관은 박 전 단장에게 국방부가 사건 혐의자와 혐의를 제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 전 단장이 그 이유를 묻자 대통령실 회의에서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윤석열 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뒤 이렇게 됐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박 전 단장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이날 심사에 앞서 "군 검찰은 이미 그 내용(VIP 격노)을 관련자들 진술을 통해 확보했다. 지금 군 검찰은 상당히 정치적으로 오염돼 있다. 권력에 도취된 것 아닌가 싶다"며 "권력에 도취된 이러한 행동에 대해 군 판사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해주실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단장 측 "공수처 고발한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 수사에 적극 협조"
박 전 단장의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둘러싼 '외압' 의혹 규명이 본격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변호사는 구속영장 기각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돼 있는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에 대한 수사 협조에 힘쓰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검찰단장이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기록을 탈취한 부분에 대해 공수처 수사가 진행되는데 박 단장님이 중요한 참고인이다.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며 "저희도 그 부분을 계속 추적하고 기록 폐기 정황, (해병대 수사단의) 이첩 기록이 온전하게 (경북경찰청으로) 간 것이냐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국방부가 아무 이유없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권을 박탈한 것도 온당치 않은 일"이라며 "(채 상병) 사건에 관해 원래대로 돌려 박 단장 지휘 하에 (수사)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할을 다시 가져오면 추가 이첩도 가능하다"라며 "관할을 (해병대 수사단이) 회복해 추가 이첩 통해 채 상병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 전 단장 측은 수원지방법원에 보직해임 처분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4일 해당 사건 심문기일을 진행하는데 이와 관련 김 변호사는 "상대방은 행정소송인데도 이례적으로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며 "주말동안 잘 준비해 좋은 결과를 내서 하루 빨리 수사단장 직에 복귀해 채 상병 사건 수사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박 전 단장의 전 법률대리인 김경호 변호사는 "어려운 상황에서 '군사법원의 독립성과 용기'를 보여준 점에 대해 예비역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로서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며 국방부 검찰단장에 대한 고발을 별도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지난 8월 2일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내용 일체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는데 이를 국방부 검찰단장이 회수했다며, 이 때 국방부 검찰단이 이첩된 서류의 소유자인 경북경찰청에 군사법원법 제170조에 따른 압수목록을 교부해야 하지만 이를 하지 않아 '위법한 압수(임의제출)'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난 8월 3일 14시경 국방부 검찰단장의 지시로 해병대 수사단장실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에 의한 강제수사를 했는데, 이 때 검찰단이 '범죄사실'인 누구의 명령을, 어떠한 내용의 명령을,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복종하지 않았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여야 하지만 이를 전혀 적시하지 않았다며 위법한 압수(압수·수색)를 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압수·수색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고 또 군사법원법 제359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과 군사법원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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