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발걸음'은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습니다. 때로는 일터에서 때로는 해고된 상태에서 부당함을 외치는 노동자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노동자들의 삶과 상황을 들으며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
"노동자는 하나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훌쩍 넘었던 지난 주말,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주)(이하 한국옵티칼) 공장에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8월 19일부터 20일까지 열린 '한국옵티칼 1박 2일 연대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투쟁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들과 많은 참가자들이 주고받은 마음은 40도, 50도, 아니 그 이상으로 그야말로 뜨거웠다.
또다시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다
지금도 쓰리기만 한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 등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여러 일들 앞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에게 국가가 있는지' 절규하며 물었다. 공장 폐쇄를 마주한 한국옵티칼 조합원들도 '과연 노동자에게 국가가 있는지' 처절하게 물어야 했다.
한국옵티칼은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업체로, 일본 닛토그룹의 계열사다. 한국옵티칼은 구미와 평택에 각각 공장을 두고 있다. 2003년에 세워진 구미 공장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50년 동안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각종 세제 혜택을 누렸다. 그러면서 한국옵티칼 구미 공장은 연 4000억 원의 매출, 260억 원 정도의 순이익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구미 공장에서 2022년 10월 4일, 생산 설비 스파크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공장 전체에 불길이 번졌다. 한국옵티칼 사측은 약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을 받았다. 그런데 사측은 화재 발생 한 달 후 화재를 이유로 공장 청산을 노동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런 반면 평택 공장에서는 신규 채용을 진행하기도 했다. '먹튀 기업'의 행태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길게는 20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해고자가 되어 버렸다. 공장 청산에 반대하는 조합원 13명은 현재 공장을 지키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사측에 구미 공장 재건과 평택공장 고용승계 의견을 밝히기도 하고, 법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구미시도, 경찰도, 국가도 사측을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자본과 정권은 공장을 사수하며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공권력을 휘두르며 침탈 기회만을 엿보고 있으며 손배가압류로 협박하며 자본의 힘으로 누르려 하고 있다.
노동자의 단물만 빼먹는 자본
이번 한국옵티칼 1박 2일 연대 투쟁 첫 순서는 '단결과 연대의 결의' 시간으로 꾸며졌다. 이 시간은 한국옵티칼 투쟁 상황에 대한 설명과 참가자들이 각각 소개와 한국옵티칼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조합원들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진심이 가득한 응원과 지지의 이야기들을 전했다.
"2차 희망퇴직 때 당연히 회사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회사가 어렵다니 그만두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얼마 있다 재입사하라는 문자가 왔죠. 다시 일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웠어요. 하지만 불이 나고 공장 문을 닫는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회사는 우리를 필요할 땐 쉽게 쓰고 아닐 땐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구나 문자 하나 달랑 보내면서요. 회사는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데 나만 애사심을 갖고 있었다 싶었어요. 투쟁을 이어가는 데에 가족들의 반대가 엄청 심해요. 하지만 저는 회사로부터 꼭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 투쟁을 끝까지 이어가야 (복직을 못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제 마음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희은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화재 이전에 사측은 2018년,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이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동자들에게서 단물만 쏙 빼먹고 '튈' 계획을 진작부터 세우고 실행하고 있었던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불이 나자 마침 잘됐다는 식으로 청산을 시도한 것이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외로움
한국옵티칼이 위치한 곳은 공단 지역이라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공장 주변에서 선전전을 진행해도 내용을 들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넓은 공장을 단 13명이 사수하는 것 또한 녹록치 않다. 그로 인해 조합원들은 고립감과 외로움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조합원 발언 시간에 나형주 조합원은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2003년 가을쯤 공장 부지의 컨테이너에서 면접을 보고 2004년 봄에 입사해 공장에 화재가 나기까지 만 18년 6개월 동안 일했어요. 그런데 화재를 이유로 공장 문을 닫는다니 너무 화가 나서 투쟁을 결심했어요. 투쟁하면서 두려운 것은 회사도, 경찰도, 부지를 사측에 내준 한국산업단지공단도 아니었어요. 바로 외로움이었죠. 조합원 13명만의 힘겨운 싸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조합원들보다 더 강력하게 투쟁하는 연대 노동자들을 보면서, 연대의 힘을 느끼며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마 우리가 승리하면 여기 오신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실 것 같아요. 우리도 앞으로 다른 투쟁에 연대하려 하고 있어요."
연대의 소중함을 또 한 번 품게 한 연대 투쟁
'단결과 연대의 결의' 시간 이후에는 공장을 견학하고 행진하고 선전전을 진행한 후 저녁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연대문화제가 열렸다. 연대문화제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는 대형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연대 메시지를 적고 현수막을 설치했다.
연대문화제 시간 중 한국옵티칼 이지영 조합원은 투쟁 과정 중 겪은 여러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함께해 준 여러 참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같은 지역에서 투쟁 중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과 KEC지회 조합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평생 싸움 한번 해 보지 못한 터라 당혹스럽고 힘들기만 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KEC지회 조합원들은 그동안 여러 싸움에서 힘을 보태왔지만, 한국옵티칼 조합원들의 싸움을 계급투쟁이자 민주노조투쟁으로 설 수 있도록 정말이지 물심양면으로 발 벗고 나섰다. 이지영 조합원뿐 아니라 이번 연대 투쟁에 참가한 많은 참가자들이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KEC지회 조합원들에게 감동을 받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이번 1박 2일 연대 투쟁을 추진한 오지환 '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 소집권자가 발언했다. 오지환 소집권자는 "우리 노동이 연결되어 있듯 우리 투쟁도 모든 사업장에 걸쳐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옵티칼 투쟁의 모습은 20년 전 금강화섬, 한국합섬의 투쟁과 겹쳐 보입니다. 여전히 자본은 책임지지 않고 고통은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폐업하려 하고 있습니다. 공장은 우리의 것입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연대해 싸운다면 위장폐업과 청산에 맞선 투쟁을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도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20년 동안 피땀 흘리며 일한 노동자를 무슨 쓰레기 버리듯 문자로 해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저 역시 이번 투쟁이 구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조를 깨우는 소리 호각에서 활동하는 고태은 활동가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김현제 지회장은 울산에서 이곳 연대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버스를 대절해서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투사로 변하는 한국옵티칼 조합원들을 보면서 경이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옵티칼 조합원들의 투쟁이 전국적인 연대를 불러일으키리라 봅니다. 언젠가부터 노동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내 공장 밖에서 일어나는 소식은 잘 듣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면서 하루 전에 주변 동료들에게 한국옵티칼 상황을 전하자 모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 것이 민주노조운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서로가 서로를 단절시키는 듯합니다. 좀 더 계급의식을 갖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옵티칼 조합원들의 경이로운 투쟁이 계급투쟁, 민주노조투쟁을 깨우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연대 투쟁이 내내 진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연대문화제 시간에는 가수 맥박, 가수 정진석 가수 최도은, 박경화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고 한국옵티칼지회 이열균 조합원의 노래도 함께하며 같이 즐거워했고, 이어진 뒤풀이 시간에는 훈훈한 정을 쌓아 갈 수 있었다.
이튿날에는 약식 결의대회인 '우리의 약속'을 진행하며 1박 2일의 일정을 마쳤다.
자본가가 자본으로 공장 혹은 회사를 만들면 그것은 오롯이 자본가의 것일까? 직접 피땀 흘려 일하며 공장과 회사를 일군 노동자는 어떠한 권리도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 이번 연대 투쟁에서 여러 플래카드나 발언을 통해 많이 이야기된 부분이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연대의 소중함, 연대의 힘’이었다. 각 개인의 노동자나 단사 차원에만 머무르는 노동자들은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대하고 힘을 합하면 그것이 지닌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뿜을 수 있다. 연대는 그 자체로 서로를 더 강하게 단결시키고 자신감을 북돋는다.
한국옵티칼 조합원들은 오늘도 공장을 지키며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옵티칼 구미 공장이 있는 구미시 4공단로 7길 53-29로 연대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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