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독립 운동가였던 고 김영식 선생(1899~1930)과 고 김영주 선생(1900~미상)이 올해 광복절에 정부로부터 독립 유공자로 포상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고 김영식 선생의 유족이 목포문화원에 포상 소식과 함께 훈장증 등 사진을 보내옴에 따라 목포문화원이 국가보훈부 누리집에서 확인한 결과 지난 8월 15일 고 김영식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고 김영주 선생은 대통령 표창을 각각 서훈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고 김영식 선생은 1899년 목포 남교동에서 태어나 현 북교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당시 일월회 결성에 참여해 기관지 《사상운동》편집부 위원을 지냈다.
귀국 후 고향 목포에서 전위 동맹, 신간회 등에서 활동하며 목포제유공장파업으로 옥고를 치렀다.
1927년 2월 15일 부터 3월 1일 까지 동아일보 1면에 13회에 걸쳐 <전환기에 직면한 조선신흥운동>을 연재하는 등 이론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이후 제3차 공산당 사건에 연루돼 1928년경 해외로 망명하여 활동 중 급성폐결핵으로 간도 숭례향에서 3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회운동의 거성 김영식 군 장서 / 망명도중에서'(중외일보) '해외에 망명중 김영식 군 장서'(조선일보) 등 제목으로 선생의 부음 소식이 당시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선생의 여동생인 김귀남 지사(1904-1990) 또한 목포정명여학교 재학 당시인 1921년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 1995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 받은 바 있다.
이번에 고 김영식 선생과 함께 독립 유공자 포상을 받은 김영주 선생 역시 목포 남교동 출신으로 북교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19년 목포 4.8독립만세운동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목포문화원이 최근 발굴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분국 대정 8년(1919) 형사사건부에 4,8만세운동 당시 경성휘문의숙 재학생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목포문화원 김정기 원장은 "때마침 목포문화원이 '목포항일독립운동 자료집'을 발간한 뒤에 두 분이 정부로부터 독립 유공자 포상을 받게 돼 더욱 기쁘다"며 "그러나 아직도 미서훈된 분들이 많이 계시므로 앞으로도 미서훈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은 물론 독립유공자에 대한 선양사업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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