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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균형

우리 사회는 처절한 교사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 정부와 정치계, 교육당국을 향한 교사들의 외침은 오랜 시간 축적돼 온 그들의 눈물이자 응어리이기 때문이다. 교권 추락, 교권 보호, 무너진 공교육 등의 표현들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직·간접적으로 교육현장의 실상을 경험한 탓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어떠한 힘도 돼주지 못했다. 이제라도 수 많은 좌절 속에서도 학생과 교단과 교실을,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을 지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일일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현실은 이 시대의 ‘어른’들이 자초한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현 시대에 무너져 있는 것은 비단 교육현장 만이 아니다. 사회 자체가 무너져 있다. 세대별, 성별, 지역별, 정치 성향별로 나뉜 채 벌어지는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그 간극을 좁혀 모두의 통합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어른이 사라진 결과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사회가 무너지는 중에도 이를 책임지려는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입장만을 주장하며 사회의 붕괴를 방조하고 있는 사이 교육현장이 무너졌다.

당장 마을에서 어른이 보이지 않는 점도 원인이다. 어린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싸움을 하거나, 운전면허가 없는 학생들이 도로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는 등의 일탈행위를 할 때 이를 제지하거나 타이르는 어른이 사라졌다. 하도 의견이 분분해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유명한 격언처럼 한 명의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노력 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들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핵가족화로 인해 할아버지·할머니를 뵙는 일 조차 손에 꼽히고,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다른 집 아이를 향한 도움의 손길은 닿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마을 어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사회규범과 예절 및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한 구분 등에 대한 학습 환경도 사라져 버렸다.

뿐만이 아니다. 교육현장에 어른이 없던 점도 현재의 상황이 있게 한 원인 중 하나다. 우리는 불과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좋은 대학’만을 외치며 몽둥이로 교실을 장악하고 학생들 위에 군림한 교사들의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의 ‘존엄성’과 ‘인권’이 보이지 않았고, 군대와 같은 문화 속에서 교사의 말에 상명하복 하는 학교문화를 경험했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고, 패배자라고 교육받았다. 당시의 교사는 ‘권력’이었다. ‘봉투’로 대변되는 마음의 성의를 표시해주길 드러내 놓고 요구하며 여러 이해할 수 없는 기준들로 학생들의 서열을 나눴고, 그 속에서 학생들은 ‘물질 만능주의’와 ‘학벌 만능주의’를 배웠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계급사회도 경험했다.

그렇게 자라난 세대가 어른이 됐다. 타인과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수평적으로 맺는 방법을 모른 채. 이들은 타인과 끊임없이 경쟁을 했고, 소위 승자는 사회 속에서 ‘갑’이 됐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학부모가 됐다. 이들은 과거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학교와 교사를 바라봤다. 학창시절부터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잃은 이들이기에 자녀들이 자신처럼 ‘불의’를 경험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교육현장을 불신하는 이들은 공교육을 외면한 채 사교육 시장으로 몰렸고, 그 사이 공교육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했다.

그러나 다행히 교육현장의 모든 교사가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사명이 무엇이며 역할은 무엇인지,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교육현장에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동료 교사들을 변화시키고, 학생들을 변화시키며 교육의 정상화를 꿈꿨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전국 최초로 경기도교육청에서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교육현장의 변화가 본격화 됐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던 당시 △특정 단체의 정치적 목적 △학습 지도의 어려움 및 그에 따른 교권 침해 등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앞선 세대의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경험했던 그 시대의 대다수 어른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을 반겼고, 동의했다. 그렇게 학생인권조례이 시행된 이후 교육현장은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무차별적인 체벌로 대표되는 강압적인 학교문화와 촌지 문화 등이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학교에서의 의사 결정과정에 직접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었던 것도 학생인권조례 덕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직접 탐구하고 고민하며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른이 요구하는 결과를 위해 강압적으로 요구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꿈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도구가 됐다. 학교는 학생들의 생동감으로 이전보다 더욱 밝아졌고, 스스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 앞장 섰으며, 교사와의 유대감도 더욱 깊어졌다.

문제는 10여 년의 시간이었다. 소위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규정도 변화가 필요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변화하지 않았다. 교권 추락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어른들은 근본적인 해결을 외면했고, 결국 지금의 시대에 와서 ‘교권 추락=학생인권조례’라는 주장마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단연코 교권 추락의 원인은 학생인권조례에 있지 않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을 비롯한 많은 교육계 관계자들의 주장처럼 교권과 학생인권은 별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교권이 추락하게 된 것은 학생인권조례의 운영 때문이 아니라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어른들의 무관심이 원인이다.

교사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교권 문제를 언급하며 해결책 마련을 요구해 왔다. 그들의 호소를 외면했던 건 정부와 교육당국의 어른들이다. 또한 과거의 학교 모습만을 기억하며 달라진 학교의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불신 가득한 시선으로 학교와 교사를 바라봤던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힘겨웠고, 하루하루 삶이 무거웠다. 그랬던 그들이 서울 서이초 교사와 의정부 호원초 교사들의 죽음을 계기로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마다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국의 교사들은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하고 집단 행동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이날 갑작스럽게 이를 취소했다. 집행부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통해 "'9·4 49재 서이초 추모 국회 집회'를 전면 취소하고, 운영팀은 해체한 뒤 하나의 점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전날(27일) "일부 온라인 공동체(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9월4일 집단행동은 관련 법령(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규정한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그동안 교육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는 교사들의 집단 행동 참여 여부를 두고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학생들을 위해 집단 행동은 안된다’는 주장과 ‘이번에도 바뀌지 않으면, 다시는 바뀔 수 없다’는 주장의 충돌이었다. ‘학생들을 위해 공교육은 멈춰서는 안된다’며 교사들의 집단 행동 참여 자제를 호소하는 이들의 설명도, ‘학생들을 위해 교사의 교육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도 모두 틀리지 않았다. 그저 입장이 차이일 뿐이다. 진정으로 교사들의 집단 행동을 저지하고 싶다면, 그동안 말 뿐이었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실천으로 옮기면 된다. 법을 바꾸고, 문화를 바꿔야 한다. 교사들은 오랜 시간을 숨죽여 왔다. 그들이 속에 품고만 있었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와 학생 모두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올해로 10년째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로서의 개인적인 생각의 표현이다. 그렇지만 그저 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한 것만은 아니다. 10년간 현장의 교사들과 교육청의 직원들과 주위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쌓아온 그들의 이야기와 최근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그들과 소통하며 쌓아온 이야기의 전달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각 시대의 어른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어느 특정인의 잘못도, 특정 규정의 탓도 아니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어른들의 잘못이다. 더 이상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교사는 교사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모두가 함께 만들면 된다. '교사와 학생', '학교와 가정', '책임과 권리' 사이의 '균형'을 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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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표

경기인천취재본부 전승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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