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갈보’와 문화문법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갈보’와 문화문법

어린 시절에 미군 자동차가 지나가면 친구들과 “쵸코레뜨 기부미!” 하면서 먼지가 풀풀 나는 자동차를 뒤쫓아 갔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부역(?아마도 솔방울 줍던 때였던 것 같다)을 하는데 여전히 미군차는 달려 가고 있었다. 친구들이 달려가 같이 따라 가려고 했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너는 그러면 안 된다. 교사의 아들이 무게가 있어야지……”라고 하셔서 머쓱하게 머뭇거렸던 기억이 있다. 읍내에 들어가면 산꼭대기에 미군부대(레이더 기지였던가?)가 있었고, 읍내 한 켠에 그 미군들을 등쳐먹으려고 앉아 있는 많은 무리의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똥갈보 혹은 양갈보라고 불렀다. 흑인 병사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을 보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놀려대곤 하였다. 참으로 철부지였다. 그때는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로만 생각했다.

한참을 지나서 <계림유사>라는 책을 읽으며 그것이 ‘빈대’를 일컫는 우리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갈보가 “기생충의 일종으로 매미목 빈댓과에 속한 곤충으로 몸은 둥글납작하며, 몸 빛깔은 적갈색이고,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려시대부터 개경에서 주로 쓰던 방언에 갈보라는 말이 많이 쓰였음을 볼 수 있었다. 한자로는 ‘갈보(蝎甫)’라고 쓰기도 한다. 이렇게 한자만 보면 나무좀에 해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로 ‘빈대’를 이르는 말이다. 특히 외국인 남자들에게 몸을 팔며 천하게 노는 여자를 똥갈보라고 불러 왔다.

갈보는 ‘갈 + 보’의 형식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 ‘보’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울보, 먹보, 털보, 곰보, 째보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특징을 지닌 사람을 지칭할 때, 앞에 특징에 해당하는 단어를 놓고 ‘보’를 붙여서 사람을 칭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갈’을 ‘갈다’의 어간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즉 “남자를 자주 갈다(交替)”에서 어근 ‘갈’이 유래했고, 여기에 ‘사람을 의미하는 ’보‘를 붙인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억측이다.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사용하던 단어로 ’간보‘가 유래하기 때문이다. <조선어사전>에서는 ’갈보‘와 ’간나희‘가 같은 말이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비슷한 음을 가지고 유추한 것에 불과하다.

똥갈보 대신 부르던 것 중에 양갈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양’은 서양을 의미한다. ‘양’이 서양을 의미하는 경우는 우리말에 많이 나타난다. 우선 양옥집이라고 할 때 초가집과 구분하여 서양식을 주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외에도 양배추, 양말, 양재기, 양식, 양담배, 양파, 양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것 또한 ‘양키’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서양(西洋)을 줄여서 사용한 것이라고 본다. 즉 접두사로 서양을 의미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양갈보라고 하면 서양인에게 몸을 파는 빈대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말에는 여성을 비하할 때 ‘깔, 깔치, 깔다구’ 등의 비속어를 사용한다. ‘똥까이’라고 하기도 한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그로 인하여 ‘갈’이 여성을 비하하는 어근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갈’이 보이기도 하지만 ‘갈보’라는 말은 고려시대 중부지방에서 흔히 사용하던 단어로 ‘빈대’를 지칭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계림유사>에서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재론은 필요 없다고 본다. 다만 언어(어휘)를 연구함에는 많은 자료와 근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예문을 통해 올바른 근거를 마련하여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어에서 ‘갈’이나 ‘보’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갈보’에 대한 <계림유사>의 풀이가 모두 학문에 기여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글자가 없던 시대에 중국어를 통하여 우리말 발음을 기록한 것에 한계가 있는 것을 인정하고, 필사한 것에 따른 오류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지만 <계림유사>가 우리말의 어원을 잘 표현하고 있음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