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당 혁신안을 놓고 내홍을 이어가고 있다. 친문(親문재인)계를 중심으로 다수 의원들이 혁신안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고 있고,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 사퇴론까지 재점화됐다.
이재명 지도부가 힘을 실어준 '김은경 혁신안'이 도리어 당내 수적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친문계와, 이 대표에 대해 날을 세워온 소수 비주류 간에 연합전선을 형성할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 심지어 친명계 내 일부도 김은경 혁신안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이 없지 않다.
그러자 수세에 몰린 친명(親이재명)계는 지도부 회의에서 김은경 혁신안을 일제히 옹호하며 맞불을 놨다. 지도부 내 과반을 점하고 있다는 강점과 다수 권리당원 지지를 등에 업고 혁신안을 관철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전해철 "대의원 권한 없애는 것, 분명히 반대한다"
민주당 내 다수 의원들은 김은경 혁신안이 △현재 당 위기의 본질과는 무관한 대의원제 개편 등 '여의도 정치'에 천착한 내용이고 △총선을 앞두고 당 내부 계파 갈등을 초래할 소재여서 부적절하며 △김 위원장을 임명한 이재명 지도부가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방향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11일 친문계가 주축이 된 '민주주의 4.0'은 "혁신위가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발표한 혁신안을 민주당의 혁신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이것이 국민 눈높이에서 가장 시급한 혁신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민주주의 4.0 회원은 50여 명에 달한다.
같은날 당내 최대 의원모임 '더좋은미래'도 "(대의원제 문제는) 1년 뒤 개최되는 전당대회 문제로, 국민적 관심 사안도 국민이 바라는 민주당 혁신의 핵심도 아니다"라며 "이 사안에 대해서는 총선 전 더 이상 논의를 진행하지 말 것을 지도부와 의총에 제안한다"고 했다. 더미래에 소속된 의원도 50여 명이다. 일부 중복 인원을 제하더라도 김은경 혁신안 반대가 의원단 내 다수의 의견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지도부 내에서 친문계를 대표하는 고민정 최고위원이 지난 11일 최고위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민생과 관련된 시급성을 다투는 것도 아닌 일로 오로지 민주당 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혁신위는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발표를 한 셈"이라고 공개 반발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관련 기사 : '김은경 혁신안'에 두 쪽 난 민주당…지도부도 공개 설전)
민주주의 4.0 이사장인 전해철 의원은 14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은경 혁신위에서 민주당에 필요한 혁신의 방향과 내용을 충분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며 "혁신위 발족 당시를 보면 돈봉투 사건이라든지 코인 논란 등으로 인해서 민주당의 신뢰가 떨어지고 어떻게 하면 국민적 지지를 회복하느냐라는 것이 혁신위 발족의 이유였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대의원제를 없애면 돈봉투 사건이 없어지느냐"며 "그렇다면 대의원제를 왜 지금 이야기를 하느냐. 특히 대의원 권한은 내년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논의해도 충분한데 지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금 대의원제를 가지고 논란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고, 만약에 그 논의를 한다고 하면 대의원 권한을 없애는 것, 전혀 대의원의 권한을 상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라고 못박아 말했다.
전 의원은 또 이 사태와 관련해 "지도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도덕성을 회복하거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도부의 몫"이라며 "돈봉투 사건 등이 났을 때 철저한 사실규명,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되는데 그걸 혁신위 발족으로 인해서 지도부가 그 역할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혁신위가 여러 논란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지도부가 그 일부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당헌당규에 반영한다든지 하는 등의 모습은 저는 지도부로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비주류인 이상민 의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적 리스크는 민주당하고는 관계가 없고 이 대표의 성남시장 또는 경기도지사일 때와 관련된 건"이라며 "이 대표를 위한 방패 정당으로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차단시키는 방법으로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제가 주장했던 것인데 이 대표는 전혀 그 얘기를 들으려고 안 하니까 굉장히 난감하다"고 이 대표 사퇴 주장을 되풀이했다. 앞서 지난 10일 이원욱 의원도 '용퇴를 결단하라'는 취지의 글을 SNS에 올렸다.
이처럼 김은경 혁신안은 당 내에서 이상민·이원욱·조응천 등 소수 비주류 의원들만이 공개적으로 주장하던 '이재명 지도부 책임론'이 수적 다수에 의해 뒷받침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친문 중진은 홍영표 의원은 지난 11일 SNS에 쓴 글에서 "혁신위는 정치와 당에 대한 이해나 전문성, 아니 기본 인식도 부족해 숱한 설화를 만들고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조기종료를 하면서 생뚱맞은 제안을 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원인이 대의원제 때문이냐"면서 "1년 전 결정된 공천룰을 다시 지도부 입맛대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 혁신이냐"고 했다. 홍 의원은 "지금 안은 '혁신 없는 혁신안'이고 그저 '당권사수안'에 불과하다"면서 "이러다 민주당 큰일난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있고 의견들을 듣고 있다.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
심지어는 친명계 혹은 이재명 지도부, 또는 이들을 옹호해온 이들 일부도 김은경 혁신안을 계기로 이 대표에게서 등을 돌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 원로이면서 외곽에서 이재명 지도부에 대한 지원사격을 적극적으로 해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대의원제? 전당대회가 아직도 얼마나 남았느냐. 왜 이런 불필요한 일을 혁신위에서 해서 당 분열에 구실을 주느냐"며 "지금 이 분란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은 특히 "안 그래도 이재명 대표를 흔들어 대는데, 만약 박지원마저 이재명 대표를 흔들어 대면 견디겠느냐. 혁신위가 백해무익한 일을 해서 이 분란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해 눈길을 끌었다. 내년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박 전 원장은 혁신위가 사실상 자신과 천정배 전 의원 등을 거론하며 이른바 '올드보이' 용퇴론을 편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이재명 지도부 일원인 서영교 최고위원도 지난 11일 "최고위에서는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의) '조금 폭을 줄여나가는 건 괜찮겠다'는 정도였다"며 "완전히 없애는 것까지 가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예를 들면 국민의힘은 대의원의 가중치가 없고 당원 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데, 그러다 보니 전광훈과 같은 사람의 입김이 대표·최고위원을 뽑는 데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혁신안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정청래·박찬대·장경태, 일제히 '김은경 혁신안' 옹호
당 안팎의 여론이 이처럼 불리하게 돌아가자, 친명계는 이날 지도부 회의에서 자파 최고위원 3명이 일제히 김은경 혁신안을 옹호하는 공개 발언을 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김은경 혁신위 안의 전면 수용을 촉구한다"며 "무슨 명분으로 이를 반대한단 말이냐. 이것은 국민의 명령, 당원들의 명령에 (대한) 집단 항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의원 특권은 결국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의 특권"이라며 "더 많은 기득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기득권 내려놓기에 저항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당 소속 의원 다수가 혁신안에 부정적임을 반증하는 말이다.
정 최고위원은 "김은경 혁신위를 반대하는 자, 역사가 기록할 것"이라거나 "대통령 직선제가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서 촉발되었듯 민주당 당원 직선제, 민주당의 8월 민주항쟁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날 오후 민주당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김은경 혁신안을 지지하는 취지의 기자회견이 열릴 것이라고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 대표 궐위시 차기 대표직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일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를 빗대어 "정청래용 혁신안"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박찬대 최고위원도 최고위 공개발언을 통해 "혁신의 핵심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라며 "지난 총선에서 국민께서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주셨음에도 민주당은 당원과 국민이 바라는 개혁을 속시원하게 진행하지 못한 채 실망감만 키웠고 그 결과는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박 최고위원은 대선·지방선거 패배를 "민주당이 어느새 기득권에 안주하며 당원과 국민의 요구를 등한시한 결과"로 해석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최고위원은 "대선 이후 당원들의 요구는 현역의원 중심이 아닌 당원 중심 민주주의를 실현하라는 것"이라며 "이번 혁신안은 민주당의 승리를 바라는 당원들의 절절한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를 포함한 현역의원들부터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당원들의 지지도 국민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같은 회의석상에서 "김은경 혁신안은 갑툭튀가 아니라 당의 역사와 집 지성이 만든 오랜 민주당의 혁신 의지의 결과"라며 "국민과 당원께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혁신 의지가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공개회의에서는 혁신안 관련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회의 후 기자들이 '혁신안에 대한 당내 반발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어디서 반발을 하더나"고 되묻고는 "변화에 대해서는 언제나 여러가지 논쟁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는 "당내 다양한 의견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시간을 두고 여론수렴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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