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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언제든, 아무 이유 없이, 공짜로 쉴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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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이유 없이, 공짜로 쉴 수 있는 곳

[기고] 사회연대쉼터 10주년 후원의 날

지리산이 좋았다. 70리터 배낭에 이것저것 쑤셔 넣었다.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무작정 내려와 귀농했다.

귀농을 했으니 농사지을 땅도 마련해야겠고, 살 집도 지어야겠고…. 학창시절부터 허구헌날 꽃병 던지고, 파업현장 돌아뎅기고,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그땐 그냥 용감했다.

지금은 지리산이 강남 땅값이 되었지만, 그땐 촌동네 땅값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농사지을 땅을 구입했다. 동무들과 흙집도 지었다. 그게 연이 되어, 한동안 집 짓는 목수일을 했다. 내 인생의 크나큰 실수였다. 젠장.

2013년 7월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리산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싸돌아다니고 있는데, 몹쓸 동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귀정사에 사회연대쉼터를 맹그는데, 쉬러 온 사람들이 묵을 집을 하나 지어야겠으니, 좀 도와달라는, 품삯 준다는 말은 없고, 연장 챙겨서 내일부터 오라는, 부탁인지 명령인지, 헷갈리는 전화였다.

집을 지을 때, 먼저 마주하는 건, 텅 비어 있는 맨땅이다. 그 위에 머리 속에 그려진 집을, 손과 발을 움직여, 땅 위에 옮겨 놓는 게, 집 짓는 일이다. 쉽다.

▲ 2013년 7월부터 짓게 된 사회연대쉼터 내 통나무 귀틀집. ⓒ신강

동무들과 같이, 맨땅에 주저앉아, 머리 속에 집을 그린다. 귀틀집으로 방 두 칸, 툇마루, 구들, 기초와 지붕을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제법 그럴듯한 집이 그려진다. 그래 그러면, 슬슬 몸을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기단은 (귀찮아서) 쌓지 않고, 기초만 벽돌로 야무지게 쌓았다. 귀틀집의 멋은 모퉁이, 벽체목의 결구에 있다. 근데, 이것두 (귀찮아서) 껍딱만 깍고 샌딩은 하지 않았다.

지붕은 천년와(듣기좋고 부르기 좋아 천년와지, 칼라강판이다)로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처마를 길게 빼지 않았다. 105Cm, 그래도 넉넉하다, 툇마루 정도는 가뿐히 가려준다. 벽체에 흙을 채워 넣고, 구들돌을 깔고, 툇마루까지 붙여 놓는다. 제법 그럴싸한 집이 되어간다.

점심은 공양간에서 풀떼기만 가득한 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도, 노가단데, 새참으로 막걸리는 먹어야 하고,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선, 남의 살도 뜯어야 했다. 독일에서 광부일을 했다는 초대 쉼터지기 최정규 형님이 언제나 막걸리와 참을 가져왔다.

세 명이서 방 두 칸 귀틀집을 한 달여 만에 뚝딱 지었으니, 고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침 출근해서 커피 한잔, 컵라면 하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전 참으로 빵 쪼가리에 미지근한 쥬스 한 잔, 풀떼기로 가득한 점심, 막걸리가 곁들어진 오후 새참, 그리고 퇴근하면서 소주 한잔, 일은 언제 했을까?

한 놈은 다까기 마사오다. 나를 새벽 컵라면과 오전 참과 점심, 그리고 오후 참이라는 개미지옥에 끌고 온 동무이다. 혀가 짧은데다 나오는 말의 절반이 욕이다. 학교 댕기면서 데모하고, 노동운동 함께 하고, 같이 붙어 있는 게 귀찮아서 지리산으로 내려왔는데, 어랍쇼, 따라오네, 참내, 지금도, 이 글을 쓰라고 귀찮게 한다. 내려와서도 지 살길은 못 찾으면서 늘 남 생각으로, 제 버릇 남 못 줘 사회연대쉼터 집행위원장을 턱 맡은 장병관이었다.

또 한 놈은, 막내 세득이다. 목수 일을 시작했을 땐,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더니, 이젠 뭘 시키면 뻗댄다, 뻗대봤자 결국엔 다 한다. 사실, 일의 7할은 세득이 혼자 다 한다. 선배 두 놈은, 입으로 일을 한다. 물론, 나머지 3할 중 2할은 다까끼 마사오가 하고, 나는 1할을 담당한다. 그럼, 넌 뭘 하냐고? 난, 결코 지붕에 올라가지 않는다. 밑에서 전기 코드 꼽아 주고, 못이나 연장 올려주고, 가끔 물도 올려준다.

쉬멍놀멍 했지만, 귀틀집은 꼴을 갖추어 가면서, 제법 집다운 면모를 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집이 되었다. 머리 속의 그림을 땅 위로 옮기는 게 집 짓는 일이고, 하루 두 끼의 새참을 먹고, 나무 그늘에 앉아서 지붕 위로 소리만 치는 게 목수의 일이기에, 집 짓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당시 또 한 칸의 흙집은 나처럼 끌려 온 전북 무주의 서창희·임삼례 부부가 와서 지어 주었다.)

▲ 2013년 10월. 통나무 귀틀집 앞에서 창립식을 가졌다.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이 사회를 보고, 김진숙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감회를 이야기했다. ⓒ신강

2013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사회연대쉼터 개소식을 한다고, 절집이 떠들썩하다. 그래도 손님들이 오시는데, 새로 지은 집도 구경하러 온다는데, 아침부터 수선스럽게 준비도 하고 집 주변 단장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귀틀집이 이쁘다고, 어떻게 지었느냐고, 고생했다고 한 말씀씩 던진다. 나는 점잖치만 미소를 가득 머금은 표정을 지으면서, 다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이라고, 별로 고생하지 않았다고, 있는 그대로 대답한다. 사람들은 고마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쪼메 거시기 하지만, 여전히 점잔과 미소를 띨 따름이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우리처럼 잘못 배워 세상 고민 다 떠안고, 민주주의니 평등이니 평화니 인권이니 쫒아다니다 지치거나 쉼이 필요한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이유 없이, 공짜로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그런 연대쉼터 하나쯤 우리나라에 있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귀틀집을 지었다. 10년 동안, 사회적 약자로 버텨온 이들이, 투쟁의 맨 앞줄에서 지친 동지들이,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잠시 쉼이 필요한 동무들이, 쉼터를 찾았다. 그동안 쉼터의 살림살이도 늘어났고, 쉼터를 향하는 사회적 관심도 늘어났다.

두둥, 정태춘 님이 노래를 불러주신다는, 쉼터 10주년 기념잔치가 9월 2일 열린다고 한다. 또한, 쉼터의 살림살이를 좀 더 윤택하게, 쉬러 오시는 동지들이 좀 더 편히 쉬도록, 후원회원도 대대적으로 모집한다고 한다. 혹여, 이 글을 읽으면서,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가서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기를 바란다. 아니, 사실은 둘 다, 바란다.

그럼, 나는 10년 동안 뭘 했냐고? 10년 동안, 지긋지긋한 다까기 마사오의 부름을 수도 없이 받았고, 그럴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귀정사 쉼터로 향했다.

매년, 30톤의 나무를 잘라, 장작을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장작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면서, 소리만 칠 뿐이다.

야! 빨리해!!

나는, 진정한 쉼터의 일꾼이다.

▲ 늦가을이 되면 쉼터의 제일 큰 일은 겨울 내내 쉼터 방들을 지필 장작을 준비해 두는 일이다. 한해 장작값만 근 5백여만 원이 든다. 여전히 일하는 내게는 풀만 준다. ⓒ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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