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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교권(敎權)’과 ‘인권(人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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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교권(敎權)’과 ‘인권(人權)’

요즘은 교권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단에 선 지 40년이 넘었는데, 어쩌다가 교권이 이렇게 실추됐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 나이 많은(?) 제자들과 만나서 대화하던 중에 교권과 관련된 주제가 나와 한 시간이 넘도록 토론이 벌어졌다. 제자들 중에는 현직 교사도 있고, 전직 경찰도 있어 대화가 참으로 유익했다. 중학교 2학년 재학생이 전국을 돌며 무인점포를 털어 문제가 되고 있는 이야기는 절정을 이루었다. 전직 경찰들 말로는 그래도 훈방해서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모두 한숨을 쉬었다. 그 아이는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기본이고 부모에게도 “피해자들과 절대로 합의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지능범(?) 수준이었다. 부모에게 폭행을 하는 아이 얘기도 나왔다. 오죽하면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부모가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곳까지 찾아와서 또 폭행을 했다는 얘기다. 하도 기가 막혀서 담당 경찰이 “팀장님은 먼저 퇴근하시지요. 제가 정리 좀 해야겠습니다.”라고 해서 맡기고 퇴근하고, 다음날 출근했더니 그 아이가 유치장 청소를 하면서 엄청 공손해졌다고 한다. 중간의 과정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슬픈 현실이다. 수업 중에 교사의 뒤에서 동영상을 찍는 것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교육은 다양한 방법이 있다. 공자의 개인주의 교수법이 각광을 받는 이유가 학생의 성향에 따라 적절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인(仁)에 대한 정의가 엄청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제자들의 성향에 따라 정의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성향이 모두 다리기 때문에 다양한 교수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 폭력을 일삼는 아이, 철학적인 아이 등 많은 학생들을 동일한 선상에 두고 재단할 수는 없다. 물론 교사의 회초리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교육 방법이 될 수는 있다는 말이다.

인권(人權)이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사도 인간인데 교사에게는 인권이 없는가? 교사에게서 교편(敎鞭)을 빼앗아간 이후로 교사의 인권은 땅에 떨어졌다. 비단 교편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지나친 학부모의 간섭이 교권을 실추시켰고, 눈치만 보는 교육청의 처사가 교사의 권위를 스스로 땅속으로 집어 넣었다. 학생들의 인권만 귀하고 교사의 권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언어의 속성에 상위어와 하위어라는 것이 있다. 고양이나 개는 동물의 하위어가 된다. 이와 같이 교사는 인간의 하위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이의 인권이 중요한 것처럼 교사도 인간으로서의 권위가 있다. 교권(敎權)은 “교육자로서의 권리나 권위”를 말한다. 교육자가 권위를 상실하면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집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데 집안이 편안할 수가 있는가? 언젠가 토론회에서 ‘아버지의 권위’라고 했다고 사과하라고 하는 여성이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다. 꼭 어머니의 권위라고 하지 않아도 이럴 때는 부모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고 단순한 단어 하나만 가지고 떼를 썼는가 궁금하다. 학생으 인권만 중요시하다보니 학교의 교육이 편향되고,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성희롱이니 성차별이니 하면서 교사를 신고하는 것이 학생들의 권리인 양 자랑스럽게 떠벌이고 있으며, 손찌검을 유도하면서 일부에서는 촬영하여 교육청에 보내기도 한다. 이것을 보고 교육청에서는 문제가 될까 두려워 교사들 처벌하기에만 정신이 없다. 교권은 살아야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아픈 역사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명장이 명품을 만든다. 교사들은 명품을 만들기 위한 명장이 되어야 한다. 가슴은 사랑으로 충만하고 머리는 지식으로 충일하여 일사천리로 한마음이 되어 교사와 학생이 하나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나 교사의 권위가 사라진 상태에서 명품교육을 꿈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호 통재라!

이제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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