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서 투자자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버렸다. 밀물이 언제 돌아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평균 제작비로 100억 원이 투입되는 상업영화로서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지난 20년간 한국영화는 호황을 누렸지만 정작 투자 수익률은 대부분 마이너스였다.
정부가 2000년부터 지금까지 조 단위의 세금을 쏟아부어 영화투자용 펀드 결성을 지원했지만, 이런 펀드들은 재무적 투자자를 찾을 수 없었다. 재무적 투자자는 꿀을 따라다니는 벌처럼 수익이 나는 곳이라면 떼로 몰려들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곳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벌이 꼬이지 않는 과수원은 망할 수밖에 없다.
즉 코로나 때문에 우리 영화산업이 붕괴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 민낯이 드러났을 뿐이다.
때문에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저작권법 개정에 있어서, 한국 영화산업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반추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으로 급부상한 OTT 산업에도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은 한국영화 최대 호황기였다. 한 해에 3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고(<극한직업>·<기생충>·<엑시트>), 이 가운데 <기생충>은 이듬해 초 미국 아카데미를 휩쓰는 쾌거를 거뒀다.
이 때엔 수익이 얼마나 났을까? 한국영화 매출은 80%가 극장에서 발생하고 부가판권 매출은 20%다. 그래서 영화가 투자 리스크에 어울리는 수익을 내려면 최소한 극장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영진위 계산에 따르면, 2019년 개봉한 상업영화 45편의 극장매출 기준 수익률은 –21.5%였다. 부가판권 매출을 합치면 수익률은 5.9%다. 한 해에 천만 영화 3편을 낸 최대 호황기 수익률이 이랬다.
코로나를 넘기고 영화산업이 야심차게 다시 시동을 걸었던 2022년, 한국 상업영화 35편의 극장매출 기준 수익률은 –39.2%에 육박했다. 2019년의 두 배 손실로, 4500억 원이 제작비로 투자되어 1800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코로나 동안 OTT가 가정 깊숙이 침투했고, 이는 '관람 습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극장 티켓 가격은 껑충 뛰었는데 나오는 영화의 퀄리티는 머나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2019년에 머물러 있다. 관객은 영화에 관심을 잃었고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때를 놓친 물고기들만 뻘에 몸뚱이를 노출한 채 퍼덕이는 중이다.
화려했던 한국영화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산업에 고착된 구조에 원인이 있다. 창작 생태계가 건강하고 투자가 활발하려면 투자배급사가 영화로 벌어들이는 돈이 커야 한다. 그 돈이 새로운 영화에 재투자되고 창작자들의 보상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시 새로운 자본과 인재를 불러들이고 기업은 더 큰 매출을 일으키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한국영화 매출의 80%가 극장에서 발생하는바, 극장 티켓 매출을 극장과 투자배급사가 몇 대 몇으로 나눌 것인가 하는 부율이 투자배급사 매출의 결정적 요소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구조적 특징은, 극장사업은 오롯이 국내 사업자들만 하는 반면, 배급사업에는 헐리우드 직배사들이 진출해서 대략 50%의 시장점유율을 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영업에서는 CGV, 롯데, 메가박스가 대략 50%, 30%, 15%의 점유율을 확보한 반면, 각 멀티플렉스가 겸영하고 있는 한국영화 투자배급사들은 배급업 파이의 절반을 두고 점유율을 나눠 갖는다. 그렇다 보니 상영업과 배급업을 겸하는 그룹사 입장에서는 극장 체인에 유리한 산업관행이 정착되는 것이 산술적으로 유리하다.
예를 들면, 티켓 매출을 극장이 6, 배급사가 4로 나누다가 배급사들의 협상력이 커져서 5:5로 나누게 되면, 배급업에 늘어나는 매출의 절반은 헐리우드 직배사에게 돌아가고 한국 투자배급사에겐 그 절반만 돌아간다. 반면 거꾸로 7:3으로 상영업자 몫이 더 커지면 그 증가분은 멀티플렉스 3사가 모조리 흡수한다.
그래서 멀티플렉스들은 겸영하는 투자배급사를 극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산업관행이 고착되도록 하는 전위부대로 삼았다. 부율은 디즈니와 같은 헐리우드 영화는 거의 5:5였던 반면, 호황의 절정을 이뤘던 2019년 한국영화로 투자배급사가 가져가는 몫은 40%를 밑돌았다. 한국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와 비슷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부율 역차별은 왜곡된 시장구조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또한 영화 티켓에 고지된 상영시작 시간 이후로 10분간 기업광고가 나온다. 이 광고시장이 펜데믹 전에 약 3000억~4000억 원 규모였다. 정상적인 투자배급사라면 당연히 자신이 100% 투자해서 만든 영화를 보기 위해 착석한 관람자들을 대상으로 극장에게 발생하는 기업광고 매출의 일정 부분을 나눠달라고 요구했어야 한다.
CGV의 영업이익이 꾸준히 700억 원이었을 때 CJ엔터테인먼트의 영업이익은 100억 흑자와 100억 적자 사이를 오갔다. 기업광고 매출을 분배받으면 CJ엔터테인먼트는 적자를 수백억 적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계열기업이 아닌 독자기업이었다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돈이다.
그러나 멀티플렉스와 결합된 투자배급사들은 어느 누구도 이를 요구한 적이 없다. 전술한 산업 구조상, 그런 요구를 하면 그룹 입장에선 역적이 되기 때문이다.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광고 수익을 포기했는데, 중소형 배급사들이 이를 요구할 수는 없다.
만약 한국영화에 대한 부율 역차별을 없애고 상영시간 후 기업광고 매출을 배급사와 나누었다면, 금액으로는 1800억 원이 멀티플렉스 3사가 아닌 투자배급사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45편의 상업영화 제작에 투입된 자금이 약 4500억 원이니 1800억 원은 매우 큰 금액이다. 시장실패가 없었더라면 2019년 상업영화 수익률은 5.9%가 아니라 46.1%가 된다. 2019년 한 해의 문제가 아니라 2000년대 이후로 지속되어온 불공정 관행이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한국영화산업으로 양질의 자본과 인력이 풍부하게 유입되면서 현재의 한국영화는 코로나 쯤은 가볍게 벗어나 세계를 누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나라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독과점을 통해 시장우월적 지위를 점유하고 그 위에 배급업까지 겸함으로써 투자자와 영화제작업으로 돌아가야 할 돈을 부당하게 편취해 왔다. 공정거래법상 불법에 해당하는 '이윤압착'이다.
그 결과,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것은 늘 밑지는 장사였고, 재무적 투자자는 언감생심, 새로운 투자배급사들이 시장에 진출해 뿌리내릴 수도 없는 토양이 되었다. 투자배급업을 하려면 극장업을 반드시 겸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데, 이미 좋은 위치를 기존 극장들이 선점한 상황에서 극장업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독과점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이렇게 한국영화산업 전체를 손아귀에 움켜쥔 채 마음 놓고 불공정 수익을 빨아들였다.
지난 20년의 한국영화 활황기 동안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처럼 한국영화 투자배급사들이 해외에 직배사를 만들어 진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 멀티플렉스들이 해외로 진출했다. 즉 CJ ENM이 해외로 진출한 것이 아니라 CGV가 진출한 것이다. 멀티플렉스는 영화가 상영되는 하드웨어 플랫폼이자 부동산 사업이다. 삼성전자가 핸드폰을 수출하고 한국 쇼핑몰이 해외에 세워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것은 한국 영화인들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소프트한 문화를 다루는 문체부 소관도 아니고, K-콘텐츠 수출도 아니며, '세계일류 문화매력국가'라는 문체부 슬로건과도 무관한 일이다.
CGV의 경우, 잘 알려진 것처럼 2016년 8000억 원을 들여 터키의 멀티플렉스를 인수했다. 2014년부터 하락한 터키 리라화의 가치는 현재 당시의 1/10까지 떨어졌다. 단순하게 말하면, 8년 전 8000만 원 주고 산 주식이 지금은 800만 원이 되어버린 것. 누군가에게 되팔기도 난망한 상황에서 CGV는 지금도 본사가 터키 법인의 수백 억 적자를 메꿔주고 있다.
8000억 이라는 돈은 2년 동안 매해 상업영화를 40편씩 만들어낼 수 있는 돈이다. 화려했던 한국영화 20년 역사는 창작생태계로 순환되었어야 될 돈을 독과점 수직계열화를 통해 하마처럼 빨아들인 멀티플렉스가 터키에 갑부를 탄생시켜주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왜 하필 터키였을까? 여러 의혹들이 머리를 맴돌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는 말이 진리라는 것만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멀티플렉스 체인들과 결합된 투자배급사들은 자신에게 돌아와야 하는 매출을 극장에게 아낌없이 내주고 어떻게 생존했을까? 투자를 잘해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플렉스의 수백억 영업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전위대 역할만으로도 그룹 입장에서 존재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다.
그러니 투자배급사는 투자를 더 잘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투자라는 본업을 못 해도 멀티플렉스가 빨아들인 거대한 자본에 의지해 퇴출당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에게 경쟁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톰슨가젤을 초원에 풀어놓으면 제일 먼저 사자 밥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투자배급사의 무능은 한국영화의 질적 퇴조로 직결되었다. 어떤 대본이 영화로 만들어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은 영화의 본질적 가치를 전문적으로 평가해서 투자하기보다는 유명 감독,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입도선매하고는 한 편의 영화가 전국 스크린의 80%까지 독식하는 '와이드 릴리스' 방식으로 개봉해왔다. 영화가 외형에 비해 형편없다는 구전이 퍼지기 전에 재빨리 치고 빠져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다양한 작은 영화들은 사뿐히 즈려밟혔다. 미래의 봉준호 감독이 영혼을 갈아넣어 만든 데뷔작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2019년에도 '천만 영화' 3편 이외의 나머지 상업영화들에겐 그 잔혹한 전략마저도 먹히지 않았고, 그 결과가 -21.5%라는 처절한 성적표였다. 이때 이미 위기경보가 고막을 때리고 있었지만, 모두가 태평성대가 지속될 걸로 믿었다. 하지만 2022년의 현실은 소행성이 충돌한 듯 냉혹했고, 공룡은 모두 맥없이 쓰러졌다.
돈에는 눈이 없다. 그래서 돈을 탐닉하는 사람도 장님이 된다. 당장 자기 주머니에 돈 한 푼 더 챙기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 심장에 칼날이 박혀들어가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건강한 사람은 정당하게 돈을 버는 것으로 족할 줄 아는데, 기업은 그게 어렵다. 여러 사람의 욕망이 뭉치고 뒤엉켜 비 온 뒤 독버섯처럼 창궐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부가 있고 국회가 있다. 지난 국회에서 도종환·안철수 의원은 배급업과 상영업의 겸업 금지를 포함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독과점 멀티플렉스에 의한 겸업의 폐해는 이미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복불가한 시장실패를 만들어낸 멀티플렉스들은 오히려 해당 법안이 반시장적이고 반헌법적인 과잉 규제라고 주장했다. 강도가 경찰에게 절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과잉 규제라고 주장한 격인데, 대기업의 맹렬한 대관(對官)업무의 힘이었을까? 그 주장이 먹혔다. CJ ENM 사외이사를 한창 맡고 있던 분이 덜컥 문체부 장관이 되더니, 문체부와 국회는 영화산업의 치명적인 시장실패를 모른 척했고 그렇게 골든타임은 지나갔다. 그 위에 팬데믹이 덮쳤고, 한국영화산업은 중증 골다공증 환자가 계단에서 구른 형국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시장 활성화를 원한다. 그런데 '친기업=친시장'이라는 낡은 등식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 기업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친시장인가? 시장은 여러 주체가 모여서 돌아간다. 기업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기업만 놓고 봐도 현재 기업도 있지만, 신규 진입할 잠재적 기업도 있고 미래에 탄생할 기업도 있다. 그렇기에 공정하고 상식적인 규칙이 요구되는 것이다. 격투기 스포츠와 길거리 폭력의 차이가 뭔가? 공정한 규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가 아닌가이다.
정부와 국회가 시장의 수많은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주체들을 제쳐놓고 오로지 현재의 몇몇 플랫폼 기업만을 장님처럼 편애한 결과 한국영화산업은 붕괴했다.
OTT 산업에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②편에 계속)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