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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인들은 최초의 '유령 아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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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인들은 최초의 '유령 아동들'이다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해외입양인이 '보호출산제'를 반대하는 이유

최근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정기감사 과정에서 지난 8년간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는 '유령 아동'이 2236명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출생등록을 부모의 손에 맡겨왔던 한국에서 '유령 아동'의 문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오랫동안 한국 정부에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생지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가 이뤄지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권고해왔지만, '의료기관의 반대' 등을 이유로 미뤄져왔다.

국회에서 다행히 최근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이 통과됐다. 보편적 출생등록을 요구하던 아동, 여성, 시민사회단체들이 오랫동안 싸워온 결과다. 해외입양인들도 이 운동에 함께해 왔다.

그러나 기뻐할 새도 없이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미혼모 등이 병원에서 출산을 꺼릴 위험이 있다며 산모가 신원을 숨기고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며, 최근 제주도의회와 경기도의회에서 베이비박스를 지원하는 조례가 재추진되고 있다.

입양기관에서 친생부모의 존재를 가리기 위해 '고아호적'을 만들어 해외로 입양 보낸 '원조 유령 아동' 격인 해외입양인들은 '보호출산제'를 반대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정체성을 알 권리를 빼앗긴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다음은 해외입양인 한분영(서울대 사회복지 박사 수료)씨가 '보호출산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 글이다. 편집자주

지난해 한국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TRC)가 최초로 34건의 해외입양 사례에 대한 조사를 발표했을 때, 진실화해위는 해외 입양 과정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인권 침해 의혹을 인정한 최초의 한국 정부기관이 됐다.

스웨덴 안나 싱어 보건사회부 입양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류 고아' 관행을 인정했고, 덴마크 보건부 장관은 부패가 만연했던 국가들에서 안전한 입양 시스템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익명성의 폭력

대다수의 입양인들 자신의 출생 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심지어 친생 부모의 이름과 행방에 대해 알고 있는 입양인들조차도 친생부모와의 재회와 지속적인 관계 유지는 그저 머나 먼 꿈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몰랐지만, 해외입양인들은 한국의 최초의 '유령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에 대한 존중이 거의 없던 시기에 '고아호적'을 대량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고아호적은 부모님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우리의 진짜 정체성과 연결을 끊고, 목적지는 있지만 기원은 없는 몸을 위한 포장지 역할을 했다.

현재의 유령 아이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스템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명백한 실종은 아무도 경고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천 명의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공식적인 신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한국 사회에서 실종되고 지워졌다.

한국 사회는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추적 불가능하며, 등록되지 않도록 허용할 것인가?

해결책은 간단하다. 어린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라!

아동들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규약은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이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해 196개국이 UNCRC에 가입되어 있다. 미국은 아직 비준해야 할 유일한 서명국이다.

오늘날 많은 (또는 대부분의) 해외입양인들은 성인이지만, 우리의 권리 침해는 우리가 어렸을 때 일어났다. 어린 시절 우리의 권리가 노골적으로 무시됐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우리가 사라지고, 우리의 이름과 역사를 지우고, 유사한 정체성을 만들고, 개입 없이 반복적인 학대가 허용되는 시스템이 가능했다. 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못해 그들의 존재가 인식되기 전에 사라진 미등록 유령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

이 유령 아이들은 말 그대로 오늘 우리와 함께 있다. 그들이 마땅히 기억될 자격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슬프게도 일부 입양인들이 이 죽은 아이들과 신분(그리고 행정적 입양 서류)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들과 그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의 실질적인 결과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권리에 대한 존중은 법치주의에 대한 정당한 존중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UNCRC를 아직 비준하지 않은 나라들의 롤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 이상적으로 가장 높은 기준을 열망해야만 한다.

진실화해위가 19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어린이들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오늘날 어린이들을 보호할 기회를 놓칠 수도 없고 놓쳐서도 안 된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겠다며 UNCRC를 비준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약속한 것을 이행해야 한다.

더 이상 한국 아이들이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그들의 정체성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한국 아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한국 어린이들이 숲에 묻히거나 미지의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사라져서는 안 된다.

(사진 설명) 위의 편지들은 입양 서류를 준비하던 아동이 사망하자 다른 아동과 바꿔치기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1964년 5월 10일과 6월 9일에 쓰여진 이 편지는 한국의 입양 중개인들이 노르웨이의 양부모들에게 보낸 것이다.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조사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 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6월 8일 추가로 237명에 대한 조사 개시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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