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일 미국의 정찰기가 경제수역 상공을 "침범"하고 있다며, "단호한 행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서 그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0일 오전에는 북한의 국방성 대변인이, 10일 저녁과 11일 오전에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해 미국을 성토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이 발견된다. 국방성 대변인은 미국의 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가, 김여정은 두 차례 담화에서 "경제수역"으로 표현을 바꿨다. 영공은 영해와 동일하게 해안선으로부터 12해리(약 22km)인 반면에 배타적경제수역(EEZ)은 최대 200해리(약 370km)까지 설정할 수 있다.
EEZ는 통항과 비행의 자유를 방해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곤 해당국의 주권이 미치는 수역이다. 하지만 경제수역상공은 국제법적으로 국제 공역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북한의 주장은 억지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북한이 자신의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 선포를 위한 명분찾기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공식별구역은 자국의 영공을 방위하기 위해 영공 외곽의 일정 지역에 설정한 구역을 의미하는데, 현재 한국·미국·중국·일본 등 20여 개 국가가 선포한 상황이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군사 활동의 투명성 제고 및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방공식별구역은 정해진 거리는 없지만, 여러 나라들은 EEZ 인근 상공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경제수역상공"을 언급한 것도 이를 방공식별구역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북한이 방공식별구역을 공식적으로 선포할 지는 불분명하지만, 경제수역상공을 방공식별구역과 동일시하면서 미국이나 한국 군용기의 진입시 반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시점에 미국 정찰기의 경제수역상공 진입을 문제삼고 있는 것일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와 대북 정찰활동이 잦아지면서 북한도 중국과 흡사하게 '접근 거부' 전략을 강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핵무력 고도화를 통해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뤄냈다며 "전략적 지위"에 걸맞게 상공에서의 군사 활동에도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려되는 점은 한미동맹의 기존 관성과 북한의 새로운 입장이 충돌하는 것이다. 한미는 북한의 주장을 근거 없는 비난에 불과하다며 국제법에 따라 책임 있게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반면 김여정은 "군사경계선수역은 물론 경제수역 상공도 미군 정찰자산들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미국의 군사연습 마당이 아니다"며, "또다시 우리측 경제수역을 침범할시에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행동으로 대응할 것임을 위임에 따라 반복하여 경고한" 상황이다.
한반도는 이미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말폭탄과 무력시위 주고받기로 군사적 위기가 일상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정찰기의 대북 활동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위기 지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각자가 안보라는 이름을 달고 군사 활동과 경고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대화 없는 대결은 안보를 더더욱 위태롭게 할 뿐이다. 자제의 미덕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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